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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시기 전에
부처님 오시기 임박이다. 오시기 전에 뭐라도 하나 깨달아놔야 체면이 선다. 첫째 나를 깨달아야 한다. 배우라면 내가 맡은 배역을 깨달아야 한다. 내 배역이 홍길동인지 일지매인지 헷갈리면 곤란하다. 나의 캐릭터가 무엇이냐다. 둘째는 무대를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내게 에너지를 주는 원천이다. 객석이 들어찬 무대인지 아니면 텅 빈 극장에서의 리허설인지 헷갈리면 안 된다. 내게 힘을 주는 것은 감독님의 격려가 아니라 객석의 함성임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는 대본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맡은 구체적인 미션이다. 다음은 연기를 깨달아야 한다. 관객이 오르가즘을 느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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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을 만만히 보지 말라
**구조론을 만만히 보지 말라** 구조론은 근본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요구한다. ‘입자의 세계관’에서 ‘질의 세계관’으로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세계관만 바꾸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세계관을 바꾸지 않은 사람이다. 그게 바로 입자의 세계관이다. ◎ 입자 세계관 – ‘이것만 선택하면 돼!’ ◎ 질의 세계관 – ‘에너지를 투입하고 이제부터 운영해야 해!’ 선택하려고 하는 자세가 틀려먹었다. 자신을 을의 포지션에 두는 자세다. 갑의 포지션으로 갈아타야 한다. 빨간약과 파란약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든 실패다. 네오의 포지션에 선다면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모피어스가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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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의 출발점
구조론의 출발점 오랫동안 인류는 원자론의 영향을 받아, 세상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알갱이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관점은 잘못된 것이다. 이 방법으로는 세상의 터무니없는 복잡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알갱이에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없다. 새로운 관점이 요구된다. 이에 구조론이 응답한다. 구조론은 세상을 관계의 복제로 본다. 알갱이는 그 하나하나의 개체에 정보가 심어져 있다. 그런데 세상은 복잡하다. 원자론의 알갱이는 표의문자인 한자와 같아서 강희자전의 5만자로도 세상의 정보를 모두 담아낼 수 없다. 게다가 새로운 정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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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선택설의 허구
**자연선택설의 허구** 과학처럼 보이는 비과학이 많다. 아이디어는 과학적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막연한 이야기들이 많다.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에 많고 프로이드나 다윈의 일부 오류들도 마찬가지다. 왜? 방법론의 부재 때문이다. 구조론을 모르면 이렇게 된다. 주술사가 푸닥거리로 환자를 고치겠다고 하면 비과학이다. 한의사가 침구술로 고치겠다면 과학인가? 양의사의 기준으로 보면 한의도 비과학이다. 일부 치료효과는 있지만 부분적 효과를 방패막이로 얼버무리면 곤란하다. 엄격해져야 한다. 인과율이 있다. 언제라도 사건의 원인측을 통제해야 한다. 이게 구조론이다. 자연선택 개념은 결과측 사정이지 원인측 사정이 아니다. 말하자면 침구술 비슷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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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의 관점
일원론과 이원론 일원론은 100만대군을 통제하는 방법이고, 이원론은 서너사람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100만대군을 통제하려면 일일이 명령하면 안 된다. 인간은 원래 청개구리라서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면 기어코 왼쪽으로 간다. 지도자가 대중을 통제하려들때 대중도 지도자를 통제하려 든다. 소대장 길들이기와 같다. 대칭행동을 한다. 대중은 지도자와 대립각을 세울 의도로 어깃장을 놓는다. 노무현을 지지하기 때문에 노무현을 미워한다는 얄궂은 상황이 연출된다. 설렁탕 소동도 다 이 원리의 작동 때문이다. 문재인의 딜레마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당을 장악하고 대중을 장악하는 절차에서 뭐든 반대로 되는 과정이 있다. 정치력으로 극복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