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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입자와 구조론
힉스입자 이후의 세계 이런 이야기는 사실 해당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하고 말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구조론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구조론이라는게 원래 모르고 아는 척 해도 아는 사람보다 더 맞더라는 거다. 구조론은 덧입혀진 살을 배제하고 건조한 뼈대만을 본다. 그것은 게임의 규칙이다. ‘이게 이러면 저게 저렇다’는 거다. 전제와 진술 사이의 관계만 본다. 전제가 모호하면 진술도 모호해진다. 물리학은 전제가 모호하다. 뉴턴시절만 해도 그림이 분명했는데, 상대성으로 뒤집어놓더니 양자시대에 와서는 온통 휘저어 놓았다. 그러므로 구조론으로도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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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편인가?
타자성의 문제 철학자들이 어려운 단어로 말하고 있지만 인생의 문제는 한 마디로 피아구분의 문제이다. 피아를 가르는 것은 의사결정이다. 결정하는 쪽이 나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의사결정영역이다. 의사결정의 권(權)은 상호작용의 갑을관계를 반영한다. 관계를 설계하는 쪽이 갑이다. 갑은 행복하고 을은 불행하다. 어떻든 갑이 되어야 한다. 갑이 되려면 에너지와 속도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물리적으로 주어진다. 돈이 많거나 힘이 세거나다. 속도는 의사결정속도다. 판단이 빨라도 갑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제 발로 을의 포지션으로 걸어들어가는데 있다. 전체로는 을이지만 부분은 갑이기 때문이다. 쇠꼬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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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믿음의 문제
주체성이냐 타자성이냐. 필자는 관객이 되지 말고 감독이 되라고 했다. 영화감독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일상성 속에서도 얼마든지 권(權)의 문제는 작동한다. 말하자면 생활의 발견이다. 주체성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판을 설계하고 일의 전체과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건 눈빛에 반영된다. 그 눈빛을 읽힌다. 포지션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삶이 송두리째 달라진다. 예컨대 집에 하수도 배관을 고치러 온 노동자가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을 내집을 방문한 손님으로 보는가 아니면 그냥 일꾼으로 보는가다. 여기서 지배하려고 하는가 상대하려고 하는가다. 여기서 말하는 ‘지배’는 긍정적 의미에서의 지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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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청산절차
http://media.daum.net/politics/newsview?newsid=20130313134007173 이 기사를 참고해도 좋다. 내용은 볼거없다. 농축산물 유통구조 문제는 한 두 해 거론된게 아니다. 말 나온지 20년도 더 됐다. 필자의 기억이 20년이고 실제로는 백년이 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해결이 안 될까? 위 기사에 대한 필자의 시사 리트윗 평은 이러하다. http://gujoron.com/xe/332403 근혜야! 근혜야! 박근혜야. 너한텐 그게 제일 만만하지. 그치? 그건 니가 자본주의를 이해 못했다는 증거란다. 그건 니가 시장원리를 이해 못했다는 증거란다. 그건 니가 사회생활 경험이 일천하다는 증거란다. 혁명가들이 만만히 보고 덤볐다가 골로가는 단골코스다. 같은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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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을 기르는 훈련
통찰력을 기르는 훈련 정신차려! 존재가 아니라 사건이다. 존재는 반드시 관측자가 있다. 관측자와 일대일로 맞서는 것이 존재다. 사건은 별도의 관측자가 없다. 관측자가 없어야 진짜다. 보이는대로 보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허상이다. 범소유상 개시허망이다. 그렇다면?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몸에서 빛을 내야 한다.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그것이 사건이다. 관객이 아닌 감독이어야 한다. ◎ 감독의 사건 – 스스로 빛을 낸다. ◎ 관객의 존재 – 보이는 것을 본다. 통찰한다는 것은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본다는 것이며, 존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