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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은 자기다움이다
보호되어야 할 ‘약한 고리’는 한 마디로 민감한 지점이다.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아니 건드리려면 아는 사람이 제대로 건드려줘야 하는, 모르는 사람이 건드리면 망치게 되지만, 임자 만나면 제대로 폭발해주는 그런 곳이다. 누구에게나 그것은 있다. 그것이 소통의 무기다. 거기서 포지션이 나온다. 그것으로 팀플레이는 가능하다. 관계를 맺고 관계를 바꾸며 더욱 높은 단계로 올라선다. 도공의 손과 도자기의 흙이 수평으로 만날 때 작품은 이루어진다. 세상 모든 관계가 그러하다. 수직으로 만나도 수평으로 겹치는 부분이 조금은 있다. 그 겹쳐진 크기 만큼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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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인과법칙은 있다
삶의 인과법칙은 무엇인가? 누군가 길에서 금덩이를 한 조각 주웠다면 어떨까? 그 주변 어딘가에 금광이 있다. 반드시 있다. 찾지 못했을 뿐 그것은 있다. 금광이 없어도 금맥은 있다. 파묻혀 있다. 그것을 찾아내면 된다. 과학의 시대에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종교는 삶의 정답을 말하고 있지만 틀린 답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아야 할 삶의 금맥은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여 있는 것이다. 과학은 외면하고 있다. 답하기를 포기했다. 구조론은 답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 있다. 단지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다. 왜인가? 인과법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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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답은 있다
삶의 정답은 있다 필자가 ‘인생의 정답은 있다’고 말하면 반사적으로 ‘아냐. 그럴 리 없잖아’ 하고 대드는 사람 꼭 있다. 중요한건 이게 포지셔닝 게임이라는 거다. 이성의 판단이 아니라 본능의 명령이라는 거다. 보통은 어떤 주장이든 기존의 견해에 각을 세우는 식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이거 or 저거’ 중에 고르면 된다. 이게 맞으면 저게 틀리는 구조다. 눈 감고 찍어도 일단 50퍼센트는 먹고 들어간다. 안철수 놀이다. 출마선언만 하면 50퍼센트 확보다. 문재인을 통제하려면 51 대 49로 만들어놓고 협상이다. 30퍼센트면 묵살되고 60퍼센트면 역으로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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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정답은 스타일이다
깨달음은 정답이 있다. 깨달음의 정답은 스타일이다. 스타일은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다. 그 첫 번째 조건은 독립성이다. 독립되어 있어야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만약 다른 어떤 것에 빌붙어 있다면 관계맺기는 불능이다. 이성에게 프로포즈를 했는데 ‘엄마한테 물어볼께!’ 하면 곤란하다. 독립되어 있어야 하며 그 독립은 전방위적인 독립이어야 한다. 식물처럼 붙박혀 있어도 곤란하고, 강물에 떠내려가도 곤란하다. 고착되지도 말고 배회하지도 말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상태라야 한다. 그 조건의 갖춤이 완전성이다. 깨달음은 관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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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 정답은 있다
깨달음에 정답은 있다 누구나 ‘피에타’에서 ‘뫼르쏘’를 떠올렸을 것이다. ‘뫼르쏘’는 무심한 사람이다. 이강도와 같다. 감정이 없다.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인생의 의미 따위는 원래 없다. 그것이 실존주의가 말하는 부조리다. 대신 ‘관계’가 있다. 인생에 의미 따위는 없으므로 살인에 이유 따위는 없다. 그런데 말이다. 재판과정이 우스꽝스럽다. 재판은 한 편의 연극이다. 재판장이든 증인이든 경찰이든 모두 정해진 배역따라 행동한다. 재판부는 뫼르쏘 역시 ‘대본을 암기한 배우’였음을 입증하려 든다. 중요한 것은 관계다. 그 와중에 관계가 폭로된다. 준비된 각본이 폭로된다. 의미 따위는 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