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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다거
뜰앞의 잣나무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끽다거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인용된 탈무드 이야기를 인용할 수 있다. 두 굴뚝청소부가 굴뚝을 청소하러 들어갔다. 청소를 마치고 나왔는데 한 사람은 얼굴에 검댕이 묻지 않아 얼굴이 희고, 다른 한 사람은 얼굴에 검댕이 묻어 시커맸다. 어느 굴뚝청소부가 먼저 세수를 하러 샘으로 달려갔겠는가? 당연히 얼굴이 시커먼 굴뚝청소부일 것이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굴뚝청소부는 서로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는 관측의 상대성이다. 모든 드라마와 소설과 영화의 반전은 이 하나의 구조를 복제한다. 얼굴이 흰 청소부는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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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옛날 글인데 추가했소. 까뮈의 이방인 인간은 부조리한 존재이다. 어떤 욕망도 희망도 야심도 상심한 한 인간을 설득할 수는 없다. 미래에 대한 찬란한 약속 따위는 무시된다. 본질에서 인간은 무언가를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번 살아봐. 심심하지는 않을 거야. 힘내라구.’ 하고 격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허할 뿐이다. 기어이 맛보게 되는 것은 환멸이다. 삶이 죽음보다 낫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예컨대 ‘부작용이 없는 마약이 발명된다면 그대는 그 약을 먹을 것인가?’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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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고리의 힘
◎세상은 인과다. ◎인과는 시간의 법칙이다. ◎공간의 인과로 보면 상부구조다. ◎상부구조는 관계의 형태로 존재한다. ◎관계를 바꿈으로써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관계는 상부구조이며 하부구조에서 보이지 않는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의할 때 숨겨진 관계가 드러난다. ◎전체를 한 줄에 꿰는 소실점의 포착으로 스타일은 창의된다. ◎하나가 바뀌면 전체가 다 바뀌게 되는 원리의 반영이 스타일이다. ◎계에 강한 긴장이 걸려서 곧바로 반응하는 급소가 그 소실점이다. ◎인과는 사슬이다. ◎사슬은 약한 고리에서 끊어진다. ◎조직의 약한 고리는 적의 집중적인 타격대상이 된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약한 고리를 보호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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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이성
깨달음은 영성계발이다. 영성은 관계를 포착하고 반응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직관력이며 모든 영감과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그것은 천하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고 천하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게 하는 예민한 반응성을 계발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서술을 묘사로, 장편극화를 한컷만화로, 시간 상에 늘어져 있는 인과관계를 공간의 상부구조-하부구조 관계로 집약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을 해서 조금씩 소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물꼬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그것은 친구관계에서 연인관계로 단번에 올라서는 것이다. 그것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작은 행복의 파편들을 모아는 것이 아니라 신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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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뜨다
깨달음은 미학이다. 미학은 스타일의 창의다. 깨달음은 서술이 아닌 묘사다. 깨달음은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소설이다. 깨달음은 극화가 아닌 한 컷 만평이다. 서술은 시간의 인과관계를 따르고 묘사는 공간의 구조를 파헤친다. 봄에 뿌린 씨앗이 원인이면 가을의 수확은 결과다. 이는 시간의 인과관계다. 봄에서 가을까지 가다보면 장편소설이 된다. 묘사는 공간의 상부구조 대 하부구조로 본다. 상부구조에서 하부구조로 넘어갈때 반전이 일어나면 그것이 단편소설이다. 그것은 장편극화를 압축하여 한 컷의 만평에 담아내는 것과 같다. 깨달음은 연속극이 아니라 시트콤이다. 깨달음은 A나 B가 아니라 둘 사이의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