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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통제훈련
권투선수가 일초 안에 몇 번의 주먹을 내밀지만, 그 순간순간에도 뇌는 분명하게 판단하고 있다. 상대의 주먹을 피하고 나의 주먹을 휘두르며 근육에 수백가지의 명령을 내려보낸다. 학계에서는 ‘자동적 사고’라 해서 무의식 상태에서 생각이 진행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생각을 읽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의식의 작동을 모르는 이유는 의식은 한번 바운더리를 정해놓고 의도나 생각이나 감정이 그 바깥으로 빠져나가는지만을 감시하기 때문이다. 선을 넘었을 때만 브레이크를 걸기 때문에, 선을 넘기 전까지는 의식이라는 감시자가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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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그릇
그릇에 물이 담겨있다. 그릇의 물을 비우는 것이 무(無)다. 그러나 물을 비우는 일에 집착한다면 그 또한 곤란하다. 물을 비우려는 마음조차 비워버려야 한다. 그래야 그 물을 담고 있는 그릇이 발견된다. 동양철학에서 강조하는 공(空)과 무(無)와 허(虛)는 그릇에 담겨있는 내용물을 비우는 것이다. 다 비우고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릇을 발견하는 것이 진짜다. 감정은 생각이라는 그릇에 담겨지고, 생각은 의도라는 그릇에 담겨지고, 의도는 의식이라는 그릇에 담겨지고, 의식은 정신이라는 그릇에 담겨진다. 그릇의 내용물을 모두 비워야 그릇들을 포갤 수 있다. 중간에서 개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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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의 의미
자신이 상황을 결정지을 수 있느냐가 정신이다. 호랑이를 만나고서야 살고싶은 욕망이 출현하는 것은 아니다. 살고 싶은 것은 항상 그러하다. 그러나 호랑이를 만나고서야 인간은 살고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달리던 자동차를 갑자기 멈춰세우면 관성의 법칙이 드러난다. 승객들의 몸이 일제히 앞으로 쏠리는 것이다. 그러나 관성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관성은 원래부터 그 버스에 있었다. 버스가 달리는 속도와 관성이 같았기 때문에 상쇄되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호랑이를 만난 사람에게 갑작스레 생존욕망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삶의 일관성과 항상성이라는 관성의 법칙이 이전부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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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의미
(위 사진은 편집을 위한 링크용, 아래 본문은 관련없음) 어린이는 운동장이 있어야 마음대로 놀 수 있고, 밥을 든든히 먹어야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다. 축구선수는 축구경기가 열려야 마음껏 공을 찰 수 있고, 만족할만한 연봉을 받아야 즐기는 축구를 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공동체 안에서 일정한 자기 영역을 확보해야 가능하다. 막연한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자유의 크기는 의식의 크기에 비례한다. 자의식, 국가의식, 시민의식, 민족의식, 역사의식, 공동체의식을 막론하고 모든 의식이 그러하다. 의식이 없는 자에게는 자유도 없다. 왜냐하면 의식되어야 공동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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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와 갤럭시탭
아이패드와 갤럭시탭의 대결 구조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자는 거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보나마나 아이패드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겠지만 그건 그거고, 필자는 구조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이 글이 ‘갤럭시탭’이 더 낫다고 독자를 설득하려는 글은 전혀 아니다. 당장은 아이패드가 압도할 것으로 필자는 전망한다. 그러나 길게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갤럭시탭이나 아이패드를 써본 것도 아니고, 이 글은 두 제품의 실제적인 상품가치와는 상관없는 거다. 다만 필자는 ‘교과서가 틀렸고 내가 옳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한 것이 3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수 십여 가지나 되고, 대부분 상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