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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난
“세난” 일찍이 논객의 전성시대가 있었다고. 때는 노무현 논객의 집권시절. 사방에서 논객이라는 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저마다 세치 혓바닥을 놀려 짓까불며 함부로 떠들어대기를 마치 타작마당에 참새떼 달려들듯 하였다고. 그 대강은 대논객 노무현을 씹는 것이었다. 논객이라고 이름은 그럴듯 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의미없는 증오의 배설에 다름 아니었다. 노무현 대논객에 대한 질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그들의 뜻대로 되었다. 그들이 증오하던 노무현은 죽었다. 숙주가 사라지자 기생충들도 죽었다. 노무현을 씹어서 하루를 연명하던 그들, 노무현이 죽자 덩달아 죽어갔다. 자신이 왜 죽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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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거 다 알기
‘알거 다 알기’ 세상 이치를 다 알고자 한다면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인간의 인식은 자연에서의 경험으로 얻은 단서에 논리적인 추론을 가하여 얻어진다. 여기서 논리전개의 출발점을 잘 찍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서부터 추론을 시작할 것인가? 근원의 논리는 ‘인과율’이다. 근대과학의 성과는 인과율의 퍼즐맞추기에 의해 일어났다. 구조론은 인과율을 확대, 발전시키고 있다. 모든 것은 오직 인과율에서 시작된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법칙이 인과율이다. 인과율은 원인과 결과 ‘한 쌍’으로 조직된다. 한 쌍, 곧 하나의 세트 단위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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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와 오메가
[알파와 오메가] 한강은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서해바다로 흘러가고, 낙동강은 황지에서 발원하여 남해로 흘러든다. 우리네 인생길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여기서 살펴야 할 점은 ‘온 곳’이 ‘가는 데’를 결정한다는 점. 연동되어 있다. ‘이것이 이렇게’ 되면 ‘저것은 저렇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고 저것을 안다. 윗물을 보고 아랫물을 안다. 이를 ‘A면 B다’의 논리칙으로 나타낼 수 있다. 만유를 풀어내는 근원의 열쇠다. 인생에서 풀어야 할 근본적인 질문 둘이 있다. 하나는 ‘나는 누구인가?’, 둘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두 질문은 연동되어 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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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근성으로 본 남녀탐구생활
‘남녀탐구생활 그리고’ ‘깨닫는다’는 것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관습적인 역할극에 중독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주변의 기대에 맞추다보면 ‘주변이 잘 알아먹는’ 행동만을 하게 된다. 한 눈에 딱 봐도 알도록 단순한 행동만 한다. 그것은 여자답게, 남자답게, 엄마답게, 아빠답게, 신사답게, 뭐뭐답게 하는 것이다. 점점 우스꽝스럽게 과장하여 자신이 속한 그룹의 티를 낸다. 심해지면 기괴한 연극이 된다. 사회가 통째로 연극무대다. 다들 가면을 쓰고 대본을 읽는다. 심해져서 묵시적으로 합의된 선을 넘어버리면 ‘미수다 사태’처럼 웃기고 자빠진 소동이 일어난다. *** ‘뭐뭐답게’란 결국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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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두 가지 질문
인생에서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근원의 질문 두 가지 있다. 두 질문은 전제와 진술,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짝을 짓고 팀을 이루어 서로 호응하니, 다시 하나가 된다. 하나는 노가리 까는 사람을 당황케 하는 ‘누가 물어봤냐고?’응수다. 이 말대꾸는 모든 예술가, 문학가, 철학가, 정치가들에게 해당된다. 소설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누가 그거 하래?’시비를 피해갈 수 없다. 예술가든 정치가든 목에 힘주려다 실패한다. 길거리에서 말 붙이는 ‘도를 아십니까?’처럼 뻘쭘하게 된다. 누가 네게 마이크 줬지? 누가 네게 발언권 줬지? 니가 뭔데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