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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문자
어떤 사람이 깨달음을 얻었다. 신을 찾아가서 자랑한다. “저기요. 제가 깨달음을 얻었는데요.” ‘어이구 내새끼. 잘했군. 잘했어!’ 하고 신이 그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라도 할까?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몽둥이를 휘둘러 쫓아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의 관심사이지 신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의 면회신청은 문간에서 거절될 것이 뻔하다. 당신이 외판원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신이라는 고객을 유혹하겠는가? 신을 설득하는 화술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먼저 그대 자신의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멋지게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이 흥미를 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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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 고독한 군중들
“최진실의 죽음 - 고독한 군중들” ‘우리는 중도가 아니라 또다른 극이다’ (어제 글에 이어서).. 좌파나 수구나 권위주의 집단주의다. 좌파는 먹물로 권위를 닦고 수구는 폭력으로 권위를 닦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 인맥 따르고 서열 따르고 연고 따르고 보스와 졸개로 역할 나누어 조폭처럼 행동한다. 노무현이 특별히 탈권위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중도라서가 아니다. 그곳이 또다른 극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그 점에서 누구보다도 강경하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다. 필자가 강조하려는 것이 이 부분이다. 우리는 좌파와 수구떼 중간에 끼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의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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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노무현인가?
**“왜 노무현인가?” ** ‘민주주의 2.0 출범에 부쳐’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이 공간(원문은 민주주의 2.0 연구마당 가칭 시민민주주의 연구회)은 노무현의 사상을 정립하고 계승하기 위한 공간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봉하 오리쌀이 노무현 농부의 농사대박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것 만큼이나 명백하다. 설마 노무현이 농민의 소득 몇 푼을 가로채기 위해 전업농을 택했겠는가? 농삿일은 상징이다. 마찬가지로 이곳은 무대다. 극장이름은 민주주의 2.0극장이라고 써붙였지만 그 무대에서 공연하려는 극은 노무현주의다. 노무현주의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극은 아직 무대에 올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노무현주의라 앞세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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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나
신과 나 깨닫는다는 것은 나의 경계를 깨닫는다는 것이며, 그 경계는 넓혀갈 수 있다. 처음에는 내 몸뚱이 하나가 내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고유한 나의 영역에 속하지만, 내가 성장함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점차 확대된다.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몸뚱이 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 사상, 소유, 친구, 가족 그리고 나에 대한 사회의 신뢰, 타인의 마음 속으로 침투한 나에 대한 기억들이 모두 나의 통제권에 속하게 된다. 결국 너와 나의 경계도, 세상과 나의 경계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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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석과 최진실
강의석과 최진실 누가 연예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일까? ‘누구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최진실 ‘때문에’ 안재환이 죽었다고 말한 증권사 직원이 있었다더라. 빌어먹을 바로 그 ‘때문에’가 그 사람을 죽인 것이다. 안재환의 죽음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과민반응이 나를 슬프게 한다. 왜들 그렇게 오버하는지 원! 그게 과연 그렇게 떠들 이슈였는가다. 왜 남의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을 시시콜콜 들추어서 난리를 피우는가다. 대중의 노예근성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들은 자신을 노예로 규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자신을 이끌어줄 ‘주인님’을 기다린다. 별 것 아닌 연예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