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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습격사건과 괴물
괴물.. 한국영화의 본질이라 할 ‘개김의 미학’에 충실한 영화다. 한국에서 뜨려면 일단 개김성이 좋아야 한다. 왕의 남자에서 장생도 그렇지만 괴물에서 송강호도 일단 개김성이 좋다. 하여간 한국에서는 일단 개기면 뜬다. 명언도 있다. “개겨라 그러면 대박을 맞을 것이니라.”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그 어떤 잘난 평론가도 이 영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점이 섭섭했다. 나의 영화평론가 때리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상당히 시간이 흐른 후 이 영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평론들이 제법 나왔지만 그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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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룰
(달마실에 쓴 글입니다.) 여기서 예의 차려봤자 도무지 소용이 없다. 그런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건 말이 통하느냐다. 대화가 되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그 부분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미학으로 판단한다. 깨달음은 미학이다. 미학적 소양이 보이지 않으면 깨달음이 없는 것이다. 왜 미학이어야 하는가? 이곳은 질서가 없는 곳이다. 기존의 질서를 존중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어떤 식으로 말하든 자유다. 그러나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제거된다. 미학은 질서가 없는 곳에서 질서를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그 질서의 씨앗은 자기 내부에서 가져와야 한다. 기존의 질서-실제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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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의 죽음과 그 건너편
실존주의.. 이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나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 말은 본래 뜻이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냥 존재라고 해도 충분한데.. 굳이 실존이라고 하니 뭔가 멋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굳이 그렇게 표현해야 하는 근거는? 그렇지만 이 말은 용도가 다양하니 생명력이 길 것이다. 생각하자. 실존이란 무엇인가? 아니 그 이전에.. 실존이 아닌 것은 또한 무엇인가? 인간은 시스템 속에 갇혀 있다. 그 시스템은 1차적으로 사회다. 사회 이전에 2차적으로 자연이다. 자연 이전에 3차적으로 신이다. 인간은 신과 신의 진리로부터 일차적으로 보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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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환멸
내가 환멸을 느꼈다면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다. 대중이 아니라. 대중은.. 가공되지 않은 보석의 원석과도 같다. 아주 뛰어난 장인만이 깎을 수 있다는. 그래서 나는 다만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다. 누가 과연 저 다이아몬드를 깎아낼 수 있는가? 누가 과연 저 사납고 힘센 말을 길들일 수 있겠는가? 대중은 거친 황야와도 같다. 모험가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황야의 거칠음을 탓하는 바보는 없다. 황야는 매력적인 곳이다. 오르고 싶은 봉우리, 건너고 싶은 바다… 대중을 두려워 하는 자는 바보다. 그들이 대중을 두려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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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그룹의 한계와 의사소통의 실패
2003년 초 정권출범 직전 인수위원회가 참여정부 이름을 짓는 과정 일부를 훔쳐본 일이 있는데.. 그때부터 불길한 조짐이 있었다. 세상에 말 안통하기로 소문난 책상물림 대학교수들이 중심이 된 인수위.. 문득 스쳐가는 불안한 조짐.. 오호통재라! 야전에서 닳고 닳은 즉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베테랑 민주당 재사들은 어디가고.. 꽉 막힌 꽁생원들이 참여정부의 주류가 되어버렸다냐. 이건 안 되는 컨셉이다. 원래 교수들 끼면 뭔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일이 잘 안되는 것이다. 참여정부.. 이름부터 불길하다. 엘리트 교수들이 주류를 먹은 가운데.. 대중 니들을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