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노무현 그리고 서프라이즈
지혜로운 아버지는 아들이 여자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있어도 구태여 그 속사정을 캐묻지 않는다. 스스로 극복할 때 까지 내버려둔다.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이 승진문제로 좌절하여 어깨가 축 처져 있어도 그 내막을 시시콜콜 따져묻지 않는다.
아내 혹은 남편의 멋지고 자랑스런 모습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내 혹은 남편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것이다. 그게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강준만 이 소심한 인간은.. 옛날부터 호남 일각의 보수성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어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잘 모르면서 함부로 ‘호남을 믿고’ 막나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강준만의 본심..
“이 보시오. 노무현 대통령! 그게 아니란 말이오. 호남사람들 알고보면 의외로 보수적인 면이 있다구요. 그런 식으로 막 나가면 다들 돌아섭니다. 어? 아니 이 양반이 내가 이렇게 경고를 하는데도.”
강준만 혼자서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구른다.
필자가 노상 강조하는 것은 이심전심이다. 이심전심이란 무엇일까? 구태여 말이 필요없는 것이다. 아니 알고도 일부러 모른척 하는 것이다.
상대가 실수로 미끄러져 자빠졌을 때는 다가와서 일으켜주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딴전을 피면서 그 창피한 장면을 못본척 해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이 있고 과가 있다. 호남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을 취하고 과는 버린다. 노무현 이후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되도록 거리를 벌려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에 밀착하면 어떻게 되나? 호남이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까지 덤태기를 쓴다.
무엇인가? 정계개편을 앞두고 호남은 독자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킹이 되거나 혹은 킹 메이커가 되려는 것이다. 무시 당하지 않고 자존심 다치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당 지도부의 호남 밀착은? 정동영 김근태의 일편단심 구애행각은? 호남 입장에서 반갑지 않다. 주도권을 뺏긴다. 자존심 다친다. 덥썩 받아들였다가는 무시 당하기 딱 좋다. 손해보는 장사가 아닌가.
일편단심 개혁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다가.. 마침내 한나라당에 박살이 나려는 순간.. 절체절명의 순간에 호남이 구원의 손길을 뻗쳐.. 99프로 다 죽게 된 우리당을 살려주는 시나리오가.. 호남도 살고 우리당도 사는 것이다.
DJ도 마찬가지다. DJ 뒤에 숨고 매달려서 DJ 입장 곤란하게 하지 말고.. 제 힘으로 싸워서 99프로 이루어놓고.. 마지막 1프로만 도와달라고 해야한다.
DJ 발언을 우리편에 유리하도록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자신은 1프로만 하고 99프로 DJ가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을 믿고 막 진도를 나가버리듯이 DJ가 우리를 믿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매를 들도록.. DJ가 ‘철 없이 구는’ 개혁세력을 혼내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게 짜고 치는 거다.
하여간 영리한 손자는 못말리는 개구쟁이 짓으로 할아버지가 자신을 혼낼 찬스를 만들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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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가 한 마디 하면 그걸 이렇게도 가져다 붙이고 저렇게도 가져다 붙이고.. 참 그렇게도 모르는지 원.
DJ는 다만 무대를 가설할 뿐이다. 그 선에서 손 뗀다. 노무현 대통령은 판을 짜고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여 링에 올려보낸다. 우리는 그 링에서 원초적 아님 김근태, 정동영, 고건들을 싹 쓸어버린다. 그렇게 가는 것이 손발이 맞는 거다.
중요한 것은 그 투쟁의 과정에서 대안세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세력’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