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준 문제
토론 중에 나온 말인데.. 병역을 기피한 유승준을 사회가 용서하도록.. 용기있는 누군가가 나서서 청원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승준은 용서될 수 없다.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안되게 되어 있다. 그건 인정의 문제가 아니고, 제도의 문제가 아니고, 물리의 문제다. 물론 억지로 하면 될 수도 있지만 이치로 보면 안 된다. 안되는게 이치에 맞다.
###
경찰이 강도를 연행해 가다가 사막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숙을 하게 되었다.그러다가 실수로 경찰이 강도에게 총을 빼앗겨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룰은 그 상황에 만들어진다. 이건 계약이 아니다.
이런 문제는 소집논리로 풀어야 한다. 군은 원래 소집된 것이기 때문이다. 소집논리는 상황논리다. 그것은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대응한다’는 규칙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응수논리다.
원래 민주주의는 소집논리에 의해 성립했다. 우리는 모르고 민주주의가 사회계약에 의해서 제도화 되었다고 믿지만 천만에! 그렇지 않다. 원래 민주주의는 계약된 것이 아니다. 소집된 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국민이 주인이다. 그게 계약된 것일까? 누구와 계약했지? 천만에! 민주주의는 계약이 아니다. 소집이다. 민주주의란 간단히 말해서 강도와 경찰 사이에 총이 지금 누구 손에 있느냐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은 지금 국민의 손에 총이 쥐어져 있다는 논리다. 강도의 손에 총이 쥐어져 있으면 강도의 말이 룰이다. 박정희 강도, 전두환 강도 말이다. 지금은 국민의 손에 총이 쥐어져 있으므로 국민이 룰러다.
이러한 개념은 시민혁명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외국에서 수입하다 보니까 시민들이 그러한 본질을 모르고 있다. 총이 자기 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군대도 소집된 것이다. 내각도 소집된 것이고, 의회도 소집된 것이고, 대통령도 소집된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직업은 원래 없다.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은 원래 없다. 민주주의 원리로 보면 없다.
모든 사회, 법률, 제도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계약이 아니라 소집이다. 그것은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한다’는 상황논리다. 누구 손에 총이 쥐어져 있느냐를 따진다는 점에서 물리학이다.
민주주의 최종근거는 물리학이다. 미국이라면 시민이 총을 들고 일어나서 독립을 쟁취했고, 프랑스라면 시민들이 왕조를 타도하고 국가를 건설했다. 어느 나라든 최초 국가의 탄생시점을 추적해보면 그런 거 있다.
우리는 우리가 제도 속에 갇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제도의 장벽을 허물수록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제도의 희생자(?)인 유승준 역시 봐주는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군은 원래 소집된 거다. 계약이 아니다. 계약제 군대라면 모병제로 가야 한다. 징병제는 소집이다. 소집은 제도가 아니다. 소집은 그 상황에 순간적으로 룰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전장에서 총탄이 비오듯 쏟아진다. 대장이 병사 1인에게 수류탄을 들고 가서 적의 토치카를 까부수라고 명령하면 그 병사는 곧 죽은 목숨이다. 병사는 ‘왜 하필 나야?’ 하고 항의할 수 없다.
총알은 원래 재수없는 자가 맞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병사는 이미 총알을 맞은 셈이다. 이미 전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명령에 따라야 한다. 마찬가지다. 소집논리에 의하면 전투는 지금도 계속된다.
군 복무 중에 팔 다친 사람, 다리다친 사람, 전사한 사람 있다. 그들은 억울하다. 그 억울함은 구제되지 않는다. 나는 26개월을 복무하였으므로 최저임금으로 따져도 2천만원을 국가에 청구할 자격이 있다.
적당한 임금으로 계산하면 최소 5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을 국가에 청구할 자격이 있다. 한국의 모든 예비역들에게 5천만원 혹은 1억원씩 지불하고 난 다음에 유승준의 사면을 논해야 할 것이다.
유승준을 사면하면 그 청구권이 말소된다. 논리가 그렇다는 말이다. 군대는 제도이고, 사회는 계약이고, 병사는 계약대로 군복무 했으므로 뒤에 군말이 있을 수가 없다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천만에!
군인들은 계약한 바 없다. 계약에 의하여 임금받고 군복무한 것이 아니라 소집에 응했으므로 국가에 대한 청구권은 여전히 존재한다. 1억원씩 받아갈 논리적 근거가 있다. 소집은 그 상황에서 결정할 수 있다.
말하자면 국군이 전부 한 자리에 모여서 국가를 대상으로 1억원씩 청구하기로 결정해 버리면 그것이 곧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총을 가졌으므로 그 사람들이 곧 룰러가 된다.
무엇인가? 전투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소집논리로 보면 여성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여성은 군복무를 하지 않는게 아니라 여성도 이미 복무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서 총알을 맞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은 병사다.
군이 여성을 징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장의 판단이다. 소집논리는 법률 위에 있기 때문에 이는 법제도로 논할 사항이 아니다. 여성은 병역을 면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장의 판단으로 징집을 유보하는 것이다.
논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승준의 일탈은 법률위반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에서의 탈영과 같은 것이며, 전투행위의 연장선 상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승준을 사면해서 군의 사기가 올라가고 국군의 전투력이 상승한다면 대장의 판단으로 사면할 수도 있다. 그 반대라면 유승준은 전사한 셈으로 쳐야 한다. 전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복무 중에 신체적, 정신적, 물질적 손실을 당하고 있으며 그 손실은 보상되지 않고 있고, 그 손실에 대한 청구권은 그대로 존재한다. 즉 권리가 있는 것이다.
권리는 실제로 존재한다. 국가는 그러한 권리들의 집합에 의해 만들어졌다. 국가의 건설과정에 참여한 자의 권리가 모여 국가가 탄생한다. 국가건설 과정을 보지 않고 국가는 원래부터 있다고 믿으면 아둔한 거다.
오판하기 쉽다. 국가는 소집된다. 사회는 소집된다. 이명박이나 오세훈이 광장을 개방하지 않고 시민을 폭도로 몰아가는 것은 소집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계약이 아니다. 제도는 계약이 아니다.
사회는 계약제가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을 때 자식과 계약하고 낳은 것은 아니다. 효도하면 유산주고 불효하면 상속 안하고? 그런 계약 아니다. 소집논리로 보면 자식이 불효하면 부모는 자식을 낳지 않는 방법으로 응수한다.
응수논리에 의해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도록 되어 있다. 물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이는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물리학이다. 소집은 개인을 모아서 거대한 힘을 형성하는 것이다.
힘을 형성한 다음에는 물리학 원칙대로 힘의 논리를 따라간다. 거기에는 계약도 없고 도덕도 없고 윤리도 없다. 그것은 소집이며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응수논리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마을에 무법자가 나타나면 발빠른 젊은이가 집집마다 대문을 두들겨서 소식을 전한다. 마을 장정들이 총을 들고 광장으로 모여든다. 그러한 소집행위 그 자체가 법률 이상의 효력을 가진다.
그 시간에 소집에 응하지 않고 잠을 잔 사람은 자동으로 공민권이 박탈된다. 소집논리로 보면 6월항쟁에 참여하지 않고 방관한 자는 공민권이 깎였다. 그들은 덜 한국인들이다. 논리가 그렇다는 말이다.
http://gujoron.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