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조직이란 무엇인가?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라는 책을 접하고 있다. 번역의 박철현은 서프라이즈와 오마이뉴스에서 활동했던 그 박철현님으로 짐작된다. 참조할만한 링크는 - http://blog.daum.net/chamkkaegoon/7924179

일본인 전문가 6명이 2차대전의 패인을 현대 기업경쟁에서도 중요한 ‘조직론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양차세계대전은 물량 위주의 소모전으로 진행되었다.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의 패배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단지 물량이 부족해서 진 것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미군에 비해서 일본군은 조직이 약했다. 말단 병사와 하사관, 초급장교는 강했는데 윗대가리 간부들은 대체로 썩어 있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연이은 승리에 도취된 일본군이 1차대전에 참여하지 않아서 시류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일본군 조직 내부에서 스스로 자기혁신을 이루지 못한 것이 패전의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피상적 관찰이다. 근본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견해로 보면 일본은 여전히 근대성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대’라는 개념을 이해하지도, 거기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있다.

미국에 비해 일본은 조직이 약하니까 조직을 강화하면 된다? 천만에! 일본조직은 세계최강이다. 전후일본경제의 급속한 발전은 조직의 힘에 기댄 것이다. 일본이 망하는 이유는 오히려 지나친 조직의존에 있다.

###

한 가지 주목할만한 대목은 미국의 군사조직, 기업조직은 연역적 구조인 반면 일본의 군사조직, 기업조직은 귀납적 구조라는 대목이다. 연역논리 예찬이라 하겠다. 문제는 이 책이 철저한 귀납관찰 위주라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자기네의 단점을 정확히 알아냈지만 그 단점을 스스로 시정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연역논리 하면 구조론이다. 구조론을 모르면 결코 연역할 수 없다. 하려해도 안 된다.

###

재미있는 책이기는 하나.. 이 책을 본 필자의 소감은.. 여전히 일본인들은 패전의 원인을 모르며 자기부정에 약하다는 점이다. 책 내용에 일본인들이 자기부정에 약하다는 말이 수도 없이 반복되지만.

반성한다며 쓴 책에 제대로 된 반성이 없다. 패전의 원인으로 내놓는 것이 대부분 과도한 정신주의(과학적 군사운용없이 정신력만으로 이긴다는), 내부에서 반목하고 젊은 지휘관이 수시로 항명하는 맹랑한 지휘체계,

어처구니없는 작전지시(구체적인 작전지시 없이 황군의 사명이라거나, 건곤일척의 승부라거나, 천우신조 어쩌고, 성패초월 따위 추상적인 단어만 나열.) 임무도 알려주지 않은채 후퇴는 없다, 무조건 돌격.

육군의 19세기식 총검돌격전술 집착과 해군의 거함거포주의, 조직 내의 보수적인 연공서열문화, 공격력만 극대화한 제로센의 방어력취약 등 한가지 장점만 극대화하는 전술 따위다. 개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건 잡다한 것이다. 총검돌격전술은 초반에 약한 중국군을 상대로 재미를 봤고, 거함거포주의는 어차피 미국과 물량위주의 소모전으로 가면 승산이 없으니.. 거포 한 방으로 끝내는 단기결전을 꾀할 수 밖에 없다.

당시 일본의 입장은 일격으로 충격을 준 후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를 맺는 것이었다. 거함거포에 의한 단기결전은 한번 해볼만한 도박이었다. 어차피 일본 단독으로 미국을 이길 수 없으니..

기적이 일어나서 독일이 러시아군 섬멸하고 대서양에서 미군을 붙잡아 주든가.. 혹은 어수룩한 미군이 공중정찰을 전혀 안하고 있다가 함포대결에 유인되어 몰살되어 주든가 등으로 기적을 바란 것이다.

판돈이 적은 도박꾼은 모험할 수 밖에 없다. 판돈이 없는데 조금씩 잃어주면서 상대방의 허실을 엿본다든가 따위 여유부리기는 상상할 수는 없다. 무조건 블러핑해서 올인해놓고 상대가 낚이기를 기대할 밖에.

애초에 잘못된 전쟁이고 이기는 방법은 기적 밖에 없으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서 진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기적은 거의 일어날 뻔 했다. 러시아가 초반 6개월에 500만 병력을 잃었는데 그대로 항복했다면?

유럽은 독일이 석권이다. 미국은 대서양에서 발목이 잡혀 일본과 휴전을 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작전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이 비판한대로 일본이 조직의 단점을 시정하고 잘했다면 이겼을까?

천만에! 단지 패배의 시점을 앞당겼을 뿐이다. 일본식이 틀렸고 미국식이 옳다는건 미국이 하는대로 일본도 따라하면 된다는건데, 일본과 미국과 똑같은 전술로 가서는 어차피 생산력 경쟁에서 게임이 안 된다.

일본은 독일이 항복한 시점에서 전쟁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 일본해군의 작전은 미끼함대를 풀어서 적의 대함대를 필리핀 레이테만 안쪽으로 살살 유인한 다음 거함거포로 몰살시켜서 한 방에 끝내는 거다.

이게 이순신 전법이다. 일부 성공할 뻔 했다. 구리타함대가 막판에 머뭇거려서 완패한 것인데, 그때 돌격하여 부분성공을 거두었다면? 그게 더 위험하다. 그런 식의 우연한 승리는 착시를 심화시킬 뿐이다.

일본군은 어차피 도박이었고 거함거포주의는 잘못된 전략이지만 그래도 그게 도박이므로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을 주어서 전쟁을 오래 끈 것이다. 초장에 다걸기 했다면 초장에 박살나고 44년에 항복했을 것이다.

###

일본이 패전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일본은 근대국가가 아니라 봉건국가였기 때문이다. 껍데기만 서구의 기술을 빌려왔을 뿐 내용은 빌려오지 않았다. 이 책은 조직의 관점, 경영의 관점에서 쓴 것이다.

거품경제 몰락으로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에서 다시 ‘미국을 배우자’ 하는 바람이 불 때가 되었다. 결국 미국의 조직이 일본의 조직보다 뛰어나다는 결론. 그러나 그게 될까? 천만에!

봉건국가와 근대국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강한 개인’에서 찾는다.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개인의 경쟁력이다. 서구의 농부라면 ‘우리집 치즈는 이렇다’인데 한국농부는 아직도 ‘나도 치즈 만들줄 안다’이다.

그 차이다. 개인의 경쟁력이 상승해야 한다. 이 책은 일본인의 조직이 서구의 조직에 비해 열등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조직집착을 보이고 있다. 나는 말한다. 일본인 개인이 열등하다고.

개인기가 안되는 일본팀이 조직력만 가지고 월드컵 16강 못가듯이 -조직력 하나는 일본팀이 20년 전부터 최고- 개인의 약점을 조직의 힘으로 커버하려 하는 한 일본은 절대 서구를 따라잡을 수 없다.

지금 일본의 위치 - 그게 조직력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한계다. 결국 개인이 강해야 한다. 물론 한국인들은 ‘개인 대 개인’으로 붙으면 일본보다 낫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개인이 강하다는 것은 개인이 자기 신뢰를 가진다는 것이다. 자기 신용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미학적 관점에서 자기스타일을 꾸려간다는 것이다. 이건 결국 문화의 문제다. 문화의 나무는 서서히 자란다.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사람들은 절대 말로 설득하려 해서 안 된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배웠다는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과학계 내부의 경쟁에서 진실이 승리하는게 아니라.

대결하고 있는 두 그룹 중에서 어느 한쪽이 다 늙어죽으면 대가 끊어져서 상대방 그룹이 승리한다. 많은 과학적 성과들이 과학계 내부에서 공격받고 좌절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진실을 밝히면 많은 제자들이 모여든다.

결국 새로운 쪽은 제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데 비해 반대쪽은 전부 늙어죽어서 겨우 게임이 끝나는 것이다. 이 정도로 인간은 말을 안듣는 존재이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한쪽이 늙어죽어야 문화가 바뀐다.

필자가 밝히려는 핵심은 근원의 경쟁력은 문화이며 문화는 개인의 신뢰를 축적하는 것이며 교육이나 조직은 그 문화의 일부인 거다. 한 집단의 문화수준은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이 가진 신뢰의 총합이다.

일본군이 패전한 진짜 이유는 계속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우선 노몬한 전투에서의 패전을 감추었다. 일본인들은 원자폭탄 맞고 전쟁이 끝나고서야 1939년에 2만명 이상이 만주에서 몰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드웨이 패전도 승전으로 둔갑했다. 그 이외에도 무수한 거짓보고가 있었다. 국민 개개인을 바보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래서는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 문제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이다.

중국도 거짓공화국이다. 모택동의 대약진운동 때 농촌에서는 수천만명이 굶어죽었는데도 정작 모택동은 모르고 있었다. 거짓보고가 일상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국인구도 몇억인지 정확하지 않다.

중국관료의 거짓말관습은 오래되었다. 청나라 때 복건성이나 광동성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이것이 북경까지 전해지는데 최소 3개월이 걸린다. 한족관리들이 만주족 병사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제가 알고 군대를 보낼때쯤은 이미 전투가 종결되어 있다. 그래서 만사 늦을수록 좋다는 만만디철학이 생겨난 거다. ‘늦을수록 좋다’는 논리가 ‘속일수록 좋다’는 논리로 발전한다. 청나라는 거대한 거짓의 성을 쌓다가 붕괴했다.

왜 아시아에 연고주의, 정실주의, 학벌주의, 지역차별, 성별차별 이런게 있을까? 거짓 때문이다. 서로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가족 뿐이다. 중국은 아직도 회사는 가족이 하는 걸로 되어 있다.

세계로 뻗어나간 차이나타운도 가족공동체 위주로 조직되어 있다. 중국음식점이라도 열려면 장로들의 회의를 통과해야 하고, 그러려면 유력한 장로의 사위가 되어야 한다. 정략결혼을 해야 점포라도 구한다.

대만에 대재벌이 없는 이유는 역시 가족주의경영 때문이다. 중국의 향진기업도 역시 가족개념이다. 중국당국에서 재벌을 키우려고 독려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믿을건 가족밖에 없다는 한계를 넘으려면 재벌을 키워야 한다.

일본은 일찍부터 재벌을 키웠지만 역시 봉건영주가 그 자산을 가지고 그대로 재벌로 변한 것이므로 여전히 가족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족은 믿는다. 가족이 아니면 배척한다. 그럴때 유사가족이 발생한다.

학벌가족, 연고가족, 지연가족, 혈연가족, 교회가족. 이러다가 망하는게 아시아다. 이명박 역시 교회가족 수준으로 정부를 꾸리고 있다. 이건 코드정치도 아니고 그 이하의 패거리정치다. 한 줌도 안 되는 패거리.

조직의 문제에서 가장 큰 본질은 좋은 인적자원의 확보다. 그 다음이 내부소통을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 획득이며 그 다음은 외부와의 개방이다. 우선 인적자원이 우수해야 한다.

일본군은 사병이 강했지만 이는 반복훈련으로 교육시켜서 그런 것이다. 즉 조직된 사병이 강한 것이지 사병 개개인의 의식수준은 미군보다 훨씬 낮았다. 이건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다.

히딩크의 정신력과 한국의 정신력은 개념이 달랐다. 히딩크가 말한 정신력은 개인이 멀티플레이어가 되어 종합적으로 상황을 처리하는 여유인데 한국의 정신력은 독기품고 죽고살기로 달려드는 거다.

결국 일본군의 조직정신력은 강했지만 개인정신력은 약했다. 우선 신뢰가 없었다. 그들은 조직된 패거리로 기능할 때만 강했고 이 경우 조직을 통제할수 있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관성의 법칙이 생겨난다.

일본군이 진 이유는 후퇴할 경우에 대비한 전술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후퇴하는 군대는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을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만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후퇴는 그 자체로 내부분란의 소지가 된다. 책임소재 때문에. 그러므로 무조건 돌격하는 수 밖에 없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의 폭이 극도로 좁아진다. 일본이 패한 원인은 인적자원이 함량미달이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돌파하려 했지만 말단병사나 하사관 교육만 열심히 했을 뿐 우수한 장교를 양성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불신에 따른 연고주의, 가족주의다. 국가를 거대한 가족공동체로 본 것이다.

가족들에게 애정과 신뢰를 보내고 가족이 아닌 이방인에 대해서는 배척과 차별로 나타난다. 결국 가족처럼 행동하다보니 공과 사의 기준이 무너졌다. 가족 안에서는 철저한 신뢰 가족 밖에서는 철저한 불신.

결국 속임수와 거짓이 만연했다. 조직을 살리는 방법은 조직을 귀납적 구조가 아니라 연역적 구조로 꾸리는 것이며 이것을 가능케 하려면 우수한 자원을 양성해야 한다. 개인이 신뢰가 있어야 한다.

우수한 인재를 모으면 되는데 신뢰가 없으므로 믿을만한 가족, 믿을만한 후배, 믿을만한 지역연고 안에서 자원을 구하다보니 결국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조직이 약해서 진 것이 아니라 조직에 의존하다가 졌다.

열등한 자원을 매우 교육시키고 밤낮으로 훈련시켜서 이길 수 있다는 망상은 버려야 한다. 타고난 천재를 발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의 문화, 신뢰의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개인의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처음보는, 언어도 문화도 성별도 지역도 다른, 일체의 연고가 없는 사람을 완벽하게 믿을 수 있을 때 진짜 조직은 탄생한다. 그것은 이심전심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되지 않은 조직이다.

개개인이 신뢰를 축적하고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합리적인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강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 하여간 이 책은 중요한 대목을 짚고 있으나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여전히 조직의존이다.

http://gujoron.com** **

drkim's profile image

drkim

2009-06-26 15:24

Read more posts by thi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