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다 베라씨와 한국사람들
‘애국질 하지마라는 잔소리가 애국질이다’

‘애국질 하지 마라!’ ≪- 이 말이 진보 쪽에서 나온지도 제법 오래되었을 터이다. 그런데 말이다. ‘애국질 좀 하지 마라’고 꾸지람하는 그 자들이 내게는 너무나 대단한 애국자처럼 보인다. 이건 아이러니다.

진지하게 말하고 싶다. ‘자칭 진보 애국자들이여. 그 요상한 애국질 좀 하지 마시라.’ 이렇게 써놓으면 독자여러분도 뇌가 꼬일 것이다. ‘김동렬 이 인간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설레발이 치나.’

어느 네티즌이 엉터리 번역을 근거로, 독일에서 책을 낸 ‘미수다’의 베라씨를 공격했고, 또 한국의 냄비언론들이 내막을 알아보지도 않고 카더라식 보도를 일삼았고, 그 엉터리 보도를 보고 격분한 한국의 냄비네티즌들이 베라씨의 블로그를 찾아서 악플을 남겼다는데 그런 저질행태를 보니 ‘창피해서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는둥 혹은 ‘그런 저질스런 행태가 도리어 한국의 이미지만 깎아먹는다’는둥 꾸지람 하는 그 대단히 훌륭한 애국자님들이 3류 애국질을 반대하는 바로 그 분들이라는게 문제다.

이상하지 않나? 애국질을 반대한다면 일관되게 애국질을 반대해야지 왜 참 애국자가 되어서, 저질 애국질을 반대하는 방법으로 참 애국질을 하느냐 말이다. 나는 진보 참 애국 아저씨들의 ‘3류 애국질을 반대하는 방법을 사용한’ 참 애국질을 반대한다. 왜? 촌스러우니까.

*** 일본의 침략과 미국의 압박, 중국의 위압감에 저항하는 의미에서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옹호한다. 그 관점에서의 애국주의는 정당하다. 그러나 골목 애들이 꼬맹이 친구를 왕따시키며 ‘용용 죽겠지’ 하는 수준의 저렴한 애국주의, 외국인 노동자 학대 등의 저질행동은 확실히 버려야 한다. ***

‘예컨대 김장훈이 미국신문에 독도광고를 낸건 솔직히 오바가 아닌가? 그게 오히려 한국망신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이런 식의 염려라면 그또한 애국질이 아닐까? 김장훈이 오바하면 오바하게 놔두는게 맞다.(이 비유가 적절한지는 필자도 의문이나 맥락을 접수하기 바란다.)

왜 우리가 외국눈치를 봐야하지? 한국인들이 과잉 애국질로 추태를 부려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눈쌀을 찌푸릴 것을 걱정하며, 그렇게 외국눈치를 보는 것 자체가 진정으로 한국의 위신을 걱정한다는 점에서 빌어먹을 애국질이다. 진정으로 애국주의를 반대한다면 나라망신시키는 냄비네티즌들이 애국한다면서 도리어 한국이미지를 깎아먹든 말든 놔둬야 한다.

솔직히 그렇다. 나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우습게 보든 말든 염려하지 않는다. 대범하게 가야한다. 왜? 그깟 일로 한국을 우습게 보는 쪼잔한 인간이라면 외국인 중에서도 생각있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한 사람을 보고 판단한다.

설사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떤 못난 짓을 저지른다 해도, 내가 이미 만델라를 알고 킹목사를 아는 이상, 그 영웅들과 마음의 친구가 된 이상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내 입장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아닌 아저씨들 백명이 나라망신 시켜도 문제 아니다. 괜찮은 사람 한 명이 충분히 극복해낸다. 내가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평균이하 한국인 만명이 외국에 나가서 어쨌는가가 아니라 최고의 한국인 한 명이 어떻게 했는가이다.

독자여러분은 아마 필자의 말이 잘 이해가 안될 것이다. 필자가 써놓고 다시 읽어봐도 좀 그렇다. 내 생각의 중핵이 전달되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덧붙인다. 지난번 글에서 말했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가치’라고.

민주주의는 직선제, 대의제, 다수결 이런게 아니라 세계의 중심, 세상의 중심과 내가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직선제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세상의 중심과 내가 직접 연결된다’는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본질이다. 왜 이 말을 하는가? ‘세상의 중심’이 한국이라는 국가 울타리 안에만 있느냐다.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국경마저 넘어야 한다. 왜 김대중을 지지하는가? 김영삼은 국내용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세계사 기준으로 판단된다. 세계사의 흐름을 쫓아가는 것이다. 세계의 지성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세계’라는 개념부터 바로세워야 한다. 아기때는 가족이 세계다. 꼬맹이때는 골목패거리가 세계다.

인격이 성숙한다는 것, 자아를 발견한다는 것은 그 ‘세계’의 범위가 점점 커져가는 것이다. 마침내 보편적 인류 양심의 편, 역사의 편, 진리의 편, 사회적 약자의 편, 진보의 편, 신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 제대로 된 세계의 발견이다.

참된 민주주의 역시 그러하다. 그 세계의 중심으로 치고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공정함 게임 뿐 아니라 지극히 아름다운 게임을 추구해야 한다. 줄건 주고 받을건 받고 뒤끝없는 거래로 깨끗하게 끝내고 마는게 아니어야 한다. 거래 끝내고 돌아서서 각자 제 갈길로 떠나가는게 아니어야 한다.

친구가 되어야 하고, 관계를 맺어야 하고, 낳음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이어야 한다. 이상적인 미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참된 민주주의다. 그 길로 가야 한다. 가서 세계를 만나야 한다.

그 관점으로 볼때 3류애국질을 비난하며 은근히 1류 애국질을 하는 그 태도 버려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우리 스스로가 외국인도 탐낼 정도로 빛나는 보석이 되는 것이다. 인류를 위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세계의 중심과바로 연결되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바른 중심을 찾아낼 때 진리의 보편성 원리에 따라 저절로 세계의 중심과 공명한다.

그것은 한국을 떠나 세계로 뻗어가는 김영삼식 무단가출 세계화가 아니고, 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정복한다는 수구꼴통의 몽상도 아니다. 세계 앞에서 촌스럽게 우쭐대는 것도 아니요, 세계로부터 겸손하고 예의바르다는 칭찬을 듣는 것도 아니요, 한 차원 위에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 당당해지는 것이다.

외국인 앞에서 으시대며 꼴값떠는 저질애국도, 비위맞춰주며 외국인이 한국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즉 체신머리없는 참 애국도 좋지 않다. 그 국경마저도 넘어서야 한다. 둘 다 쪼잔한 거다. 대범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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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안 보지만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이 교양인의 상식으로 볼때 문제가 있는 방송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은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 저속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외국인이라면 뭐 보나마나 좀 아닌 언니들이 아니겠는가?

젊은 여성만 출연하는 사실 자체로 이미 평등원리가 깨졌다. 나이들면 안되고 남자면 안되나? 그런 불평등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자체로 문제가 있다. 그런걸 만드는 방송국도 확실히 문제지만.

돈이 궁해서 나온게 아닐테고, 선입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생각있는 외국인이라면 그런 좀 아닌 프로그램에는 출연을 거부하는 것이 맞다.

‘베라씨’의 글이 한국을 비하했다는 주장이 잘못된 번역을 토대로 한 오보임은 확실한 것 같고, 그 베라씨의 글을 제대로 번역했다는 블로그를 몇 훑어본 바로 말하면, 역시 베라씨가 지성인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교양인끼리의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는 않는다.

보통 한국사람이 독일을 여행해도 소감은 베라씨의 잡다한 불평과 비슷할 것이다. 솔직하게 쓴 글은 맞지만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가 서양에 대해 아는 정도와 비교해서 훨씬 미치지 못한다.

신체접촉을 혐오하는 것은 유럽 중에서도 독일인이 유난스럽다. 미국과 일본도 심하고 프랑스나 이탈리아라면 덜하다. 독일에서나 통하는 자기식 논리를 내세우며 ‘쥐’ 운운한 것은 경솔하다. 자기나라에서는 편하게 할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적어도 지성인의 표현은 아니다.

한국에서 대학교육 받은 사람이 서구사회에 대해 100의 정보를 가진다면 베라씨가 동양에 대해 가지는 정보는 10에 미치지 못한다. 당연하다. 한국사람은 서구문화를 배울 필요가 있지만 그들은 동양정신을 배울 필요가 없으니까.

사실이지 나는 아직 동양정신의 정수를 꿰뚫어보고 아는 제대로 된 서구인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박노자씨도 무식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모르는 전문지식까지 시시콜콜 들추어 아는체 하지만 안쳐주는 거고, 깨달음이라는 동양정신의 본질로 본다면 아주 멀었다.

뭔가 한수 배워가겠다거나 혹은 뭔가 한수 가르쳐주겠다거나 하는 장사꾼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서구인이 아는 동양이래야 기껏해야 달라이라마 흉내를 내는 정도 혹은 엉터리 일본의 젠 스타일을 흉내내는 정도다.(젠 스타일은 불개입을 미덕으로 치는 선종불교 미학의 본질과 멀다.) 동양을 참되게 이해하는 서구인은 지구에 없다.

‘절에 가서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는 식의 겉핥기로 동양에 대해서 아는척 하면 안 된다. 하기사 그건 한국인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만. 그나마 아는 것도 유홍준이 근래에 눈을 좀 틔워준거고.

베라씨의 글이 한국에 대한 편견과 백인우월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베라씨가 유난한 ‘백인우월주의자’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서양을 아는 것이 100이라면 그가 동양을 아는 것은 10이며 거기에 이미 원초적인 불공정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제대로 뭔가를 보여주기 전에 서구인이 그들의 뒤떨어진 교양으로 동양정신의 본질을 올곧게 이해해주기를 기대한다면 넌센스다. 그쪽에 말이 통하는 사람은 없다. 전혀 없다.

물론 그들 평균은 한국평균보다 낫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는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이보다 못하다. 훨씬 미치지 못한다. 베라가 지성인이 아닌 이유는 그들 평균과 한국 평균을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치 눈높이가 낮은 거다. 한국에서 땅만보고 다닌 거다.

한국의 아줌마옷 스타일은 필자도 여러번 비판한 바 있지만, 베라씨가 먼 한국까지 와서 겨우 그 정도가 눈에 띄었다면 문제 있다. ‘무엇을 볼것인가?’ 그 지점에서 미처 눈이 트이지 않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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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 수준이 딱 드러나는 지점이 있다. 한국의 포털사이트에 흔한 외국여행기 말이다.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것을 보고 와서 말해주는게 맞다. (대략 ‘우와! 좋다’ 하고 서푼짜리 감탄사나 써놓을 뿐 유홍준이 답사기 쓰듯 제대로 쓴 글은 없다. ‘뭐가 좋다’는 식의 표현이면 자기 자신에게 좋다는거 아닌가? 그게 무슨 의미? 여전히 ‘에고’를 버리지 못한 수준. ‘좋다’를 넘어선 답사기 하나라도 있나? 글 내부에 ‘A면 B다’의 논리칙이 들어가야 비로소 이야기가 되는 거. 이건 대략 한 단락만 읽어도 견적 나온다.)

그 나라에서 가장 못한 것을 보고 와서 꼭 그걸 한국과 비교하며 수다떠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래봤자 실은 불과 몇 십년 전까지 한국에도 있던 거 가지고 놀란 척들은.

비교의 관점 자체로 틀려먹었다. 참된 것은 비교분별이 아니라 통합관점에서 포지션을 맞추는 것이다. 비교우위, 비교열위를 논할 일이 아니라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또 한국과 그 나라 사이에서 인류문명의 전파와 그 변화의 흐름을 짚어내고 세계문명사 안에서 옳게 좌표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논리칙이 들어가야 진짜배기 글이 된다. 그런 글을 쓰려면 문명사 안에서 흐름을 짚어야 한다.

누가 21세기 신문명에 걸맞는 인류문화를, 그 문화양식을, 트렌드와 스타일을 이끌어갈 것인가? 서구의 아이디어는 고갈된지 오래이다. 일본이나 아프리카, 인도 등에서 아이디어를 조달하기 시작한지도 오래다.

PS.. 이 글은 ‘아는 사람들’끼리나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른들 이야기’란 말이지요. 좀 아닌 초딩분들이 와서 읽고 헛갈려 하는 일 없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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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09-08-2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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