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로 본 남녀탐구생활”
무릇 군자는.. 아랫동네 소인배들의.. 왁자지끌한 논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대범해야 한다. 지식인 특유의 가르치려드는 태도라면 옳지 않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저쪽동네 소인배는 소인배고.
“내버려 두라. 걔네들은 그렇게 살다가 죽도록.”
내려다보니.. 가관이다. 동네가 시끌시끌. 장마당이 들썩들썩. 누가 벌집이라도 건드린 모양. 꽁지가 빠지게 내빼는 자 있고, 파리 먹은 두꺼비 마냥 눈만 꿈벅 하는 자 있고, 길길이 날뛰는 자도 있다.
“우습다. 그래도 웃어줄만은 하다. 까짓거.”
그렇다. 이것이 인간들 사는 모양이렸다! 인간들 사는게 다 그렇지 뭐! 말실수 따위 사소한거 걸고자빠지며 삐쳐서 꼬라지 부리기. 좀팽이들 하고는! 하기사 오바마조차 왜왕에게 반절하고 티벳이 중국이라는 세상이니.
다들 제 정신이 아니어도 잘만 돌아간다. 그게 세상이다. 난세도 아니고 태평시절도 아니고. 위아래 없이 어설프게 돌아가는 혼돈세상. 인걸은 없고, 영웅은 없고, 소인배들만 제세상 만난듯 떠들썩. 유치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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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라는 표현은 확실히 문제가 된다. 그 안에 이중꽈배기 나선구조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여자가 심판관 역할을 맡았다는 거다. 이게 핵심! 그런거 있다. 여자든 남자든.. 두 사람의 호상간 묵시적 신사협정이 있는 법인데.
실제로는 어떤가? 한 사람은 욜라리 삽질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가만이 앉아서 평가만 한다. “불합격! 넌 불합격이야.” 그렇다. 사람들이 화내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문제의 그 사람이 뭘 말해서 문제가 아니고.
이면의 감추어진 문제. 이중 나선구조로 꼬인 문제. 그 문제를 들추어내기 위하여 그 사람을 희생시키기로 묵시적 담합. 일벌백계가 아니고 일인희생으로 이 참에 꼬여버린 사회구조 근본 뜯어고치기.
그러나 본질을 모르고 헛다리 짚어서 실패.
언제나 그렇듯이 구조가 문제다. 사회가 남녀를 차별하고, 성역할이 나눠지고, 그렇게 되면 결국 한쪽은 욜라리 삽질만 하게 되고.. 한쪽은 가만이 앉아서 점수만 매기는 불합리한 구조가 된다.
평가자 역할 맡은 남자 거동보소. 가만이 앉아서.. 저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아니하고.. “이거 밥이 왜 이모양이야. 이걸 반찬이라고 했니?”.. 이러면? 일찍 일어나서 욜라리 요리한 여자 입장은.. 정말 밥상 엎어버리고 싶지 않겠나?
반대경우도 마찬가지. 남자가 욜라리 일해서 돈 가져오면.. 평가자 역할 맡은 여자 거동보소. 가만이 앉아서 봉투만 딱 뜯어보고.. “넌 이걸 벌이라고 해왔니? 너 능력이 이것밖에 안돼?” 이렇게 되면 그 남자 참지 못하지.
무엇인가? 성역할을 나눈 결과 서로 피해자가 된 거다. ‘루저’라는 표현의 숨겨진 의미.. 성역할 나누고, 동물들의 짝짓기가 그러하듯이 암컷은 가만있고.. 여러 수컷들이 경쟁하면서 구애의 춤을 추는데.
“불합격이다. 무조건 불합격이다.”
합격 시켜주면 안 된다. 왜? 합격시켜 주는 순간 그 남자 태도 백팔십도 전환. 합격도장 찍어주는 순간 상황역전. 도장 받았으니 수능시험 치른 고3학생들처럼 놀러나 다닌다. “극장에 걸린 영화 다 봐야지.” 게을러 진다.
여자가 남자를 합격시켜주는 순간.. 남자는 여자를 하인취급. 연애시절 재롱도 잘 부리던 남자. 여자를 공주 모시듯 섬기던 남자. 그 귀엽던 남자. 그렇게 떠받들던 남자. 신혼여행 끝나기 무섭게 마초 가부장으로 돌변.
“넌 이제 끝났어. 너의 전성기는 끝. 잔치는 끝. 시집살이 각오해!”
여자는 어떤 경우에도 남자에게 합격을 인정해줘서 안 되며.. 합격통보를 할 일이란 아예 없어야 하는 거다. 그래야 자기 가치가 상승한다. 이걸 본능적으로 안다. 말 안해도 다 안다.
고시의 관문이 좁을수록 법관의 권위는 서고. 아무런 하자가 없어도 민원서류 기본 세 번은 빠꾸 시켜야 공무원 권위가 서고. 멀쩡한 사윗감이라도 두 번은 퇴짜를 놓아야 삼고초려에 장인어른 체면이 서고.
어디를 가나 퇴짜다 퇴짜. 대한민국이 퇴짜민국. 불합격! 너희는 천상 불합격이야. 왜? 아무 이유 없어. 은행문턱은 높을수록 은행권위가 서고. 하다 못해 수위복에 금단추라도 달아야 관리아저씨 위신이 서고.
세상 이치가 다 그렇지. 점차 정글을 닮아간다. 불합격 수컷들 자기네들끼리 치고받고 싸운다. 바보다. 한심하다. 원래 그렇지 뭐. 제갈량은 알고 있었지. 유비를 따라나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래도 두 번은 일단 퇴짜.
2천년 전에도 퇴짜. 아직도 퇴짜. 앞으로도 퇴짜. 이래서 잘 될 턱이 있나?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렇다. 뭐뭐‘만’ 하면 돼. ‘만’이 만병의 근원이다. 여자는 ‘난 얼굴만 예쁘면 돼. 다 돼. 화장만 열심히. 점슴값은 당연히 남자가.’ 남자는 ‘난 서울대만 붙으면 돼. 다 돼. 신부감이 대문 앞에 줄을 서.’
명박은 ‘다 필요없어. 재벌만 밀어주면 다 돼. 삽질만 하면 다 돼.’ 신림동 고시생들. ‘고시만 붙으면 다 돼. 행복도, 반려자도, 출세도, 성공도, 인생도 다 해결 끝 끝 끝. 더 없어. 완전 끝.’
강남 기득권들. ‘집값만 오르면 돼. 다 돼.’ 좌파들 ‘혁명만 하면 돼. 다돼. 올인이야 올인.’ 수구들 ‘시장원리면 다돼! 올인이야 올인.’ 그러다가 오링되어 개털신세. 모든 국민들이 다 그러고 있다. 놀고 있다.
세상은 복잡하고, 역사는 진보하고, 문명은 날로 깨어나는데 한국인들 노는 꼬라지 보라지. 너도 나도 ‘만’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요고만! 조고만! 하나만! 만! 만! 만! 이 어찌 가관이 아닌가?
“나는 달리기 싫어서 달렸다” - 황영조. 이거 진짜다. 얼마전 뉴스에 나왔더라. 달리기를 그만두는 방법은 금메달 밖에 없어서 죽자고 달렸노라고. 오직 메달만. 만만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텐가?
각성이 있어야 한다. 김연아는 다르다. 오서 코치는 즐기면서 타는 방법을 가르쳤다. 표정에 다 드러난다. 김연아의 연기와 다른 선수의 연기. 김연아 표정을 보라. 얼굴에 다 씌어져 있다.
“이 빌어먹을 생고생 피겨스케이팅을 그만하는 방법은 금메달 밖에 없어.” 하는 다른 나라 선수와 ‘예술적 성취의 초극’을 꿈 꾸는 김연아의 여유만만은 다르다. 보는 시선이 다르다. 보라! 그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
여자들은 ‘좋은 남자만 꿰차면 끝. 인생 끝.’ 긴장 풀려서 바로 아줌마 스타일로 변신. 아줌마 파마에, 아줌마 패션에, 아줌마부대 이끌고, 아줌마 수다로, 하루를 아줌마스럽게 말아먹세.
남자들은 ‘결혼식만 하면 고생 끝.’ 바로 태도 바꾸어 마초 가부장으로 돌변. 이런 식이니 발전이 없다. 경쟁은 인격의 경쟁이어야 하며, 전방위적이어야 하며, 우일신해야 하며 그 모드로영원해야 한다.
경쟁지상주의처럼 들었다면 번짓수 오류다. 끝없는 인격의 경쟁을 위해서는 단 한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위너와 루저를 결정짓는 한국 특유의 폐쇄형 라이선스 시스템을 깨부수어야 한다. 그것이 개혁이다.
한국 사회를 보라. 고3 교실에 버젓이 써붙어져 있다. “성적표에 따라 미래의 아내가 달라진다.” 고3 때에 딱 한번 경쟁해서 인생이 통째로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런 사회에 미래가 있나?
입시만 끝나면 공부 끝. 인생 끝. 모든게 끝. 서울대만 붙으면 그때부터 전혀 노력할 이유가 없는 사회. 이런 사회에 미래가 있나? 좋은 사회라면 끝없는 패자부활전이 있어야 한다.
패자에게는 지속적인 재도전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장벽이 없어야 한다. 경쟁은 우일신의 인격경쟁이어야 한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진보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을 경쟁해야 한다.
세상은 무섭게 변한다. 단 한번의 시험으로 모든게 결정되는 사회가 그 무서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나? 얼마전만 해도 한의사만 붙으면 인생 다 해결인줄 아는 유행이 있었다. 심지어 김용옥도 한의사 시험보고 그랬다.
근데 지금은? 여전히 한의사가 최고 유망직종인가?
무섭게 변한다. 오늘의 절대진리가 내일은 똥이다. 한국인들 죄다 ‘만’ 사상에 중독되어 있다. ‘난 얼굴만 예쁘면 돼.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 ‘난 서울대만 붙으면 돼. 마초짓 해도 여자인 니가 참어.’
한국이라는 나라. 바닥이 좁아서 그럴 거다. 유럽은 크다. 15억 백인사회 전체가 하나의 경쟁무대가 되니. 그러니 뭐뭐만 잘해서 인생문제 해결 그런거 없다. 지속적인 긴장. 지속적인 깨어있기.
인격에 따라 평가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일신 할 수 있는 능력이 인격이다. 평가는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어제 별을 땄어도 오늘 잘못하면 징벌되어야 한다. 왜 이 나라에서 강남이 설치고 조중동이 설치는가?
그들은 ‘만’ 세상을 원한다. 경쟁만능사회를 만들어놓자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경쟁을 회피한다. 그들이 말하는 경쟁은 일생에 딱 한번만 경쟁이다. 입시경쟁만. 강남진입경쟁만. 결혼경쟁만. 그것만 하면 인생 끝. 만사 끝.
진입장벽 세우고, 기득권 철옹성 만들고. 인맥으로 성을 쌓고, 연고로 성을 쌓고, 학벌로 성을 쌓고, 돈으로 성을 쌓고. “너희 루저들은 성밖에 살어라. 더 이상 경쟁은 없다. 끝. 두번 말하기 없다. 끝. 끝. 끝.”
이런 사회에 미래가 있나?
하여간 아랫동네 인간들 참 잘 논다. 이러구러 잘 논다. 비명 지르고 잘 논다. 악을 써대고 잘 논다. 유유상종으로 잘 논다. 잘했다는 인간이나 잘못했다는 인간이나 잘논다. 여자나 남자나 잘논다. 젊은이나 노친네나 잘 논다.
너희들은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갈 것이다.
깨어있는 자는 깨어서 간다. 새벽길로 간다. 희망 찾아 간다. 너희들 그러고 노는 시간에 간다. 쉬지도 않고 잘 간다. 빠이빠이다.
PS.. 글이 길다 싶은 독자를 위해 요약하면 ‘얼떨결에 대한민국의 치부를 들켜버려서 너나없이 당황해 하며 서로 책임전가에 정신이 없는 미수다 사태’의 본질은.. 한국특유의 ‘뭐뭐만 하면 돼’ 풍습에 따라.. ‘얼굴만 예쁘면 돼’ 라이선스를 따고 의기양양해 하는 그 사람이.. 자격증 내보이며, 완장 차고, 목에 힘주고.. 경쟁의 정글에서 벗어난안도의 한숨과함께..’난 합격했으니 이제 너희들끼리 치고받고 경쟁해서 이기는 넘이 내남자, 지는 넘은 루저’..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아니하고.. 심판 역할만 맡겠다는, 가만앉아서 점수만 매기겠다는 소극적 태도..인생 다 살았다는 듯.. 화류계 짬밥 20년 왕언니 표정으로.. 문제는 한국인들이 다 이런 거지같은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으니 말 안해도 그 본질을 알고 있다는 거.난 서울대 땄으니, 난 고시붙었으니, 난 토익점수 나왔으니, 난 강남입성 했으니, 난 재벌회사 취업했으니.. 나머지 니들끼리 물고뜯고 죽도록 경쟁해 바. 용용 약오르지..하다가 단체컨닝 들켜버린 애들처럼 씨근벌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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