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난 2”
‘근대인도 못 되는 주제에’

앞의 글 ‘세난’에서 필자가 말하려던 바 중핵이 잘 전달되었을지 모르겠다. 힘들다. 이 글 역시 오해되기 딱좋다 싶지만..없는 글재주에..까짓거 다 감수하고 실없는 몇 마디 더 보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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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하듯이, 마키아벨리가 최초로 ‘근대’를 사유한 르네상스인이라면, 어느 면에서 한비 역시 최초의 근대인이라 할만하다.(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여간 근대의 어떤 요소가 조금 숨어있긴 하다.)

마키아벨리와 한비들.. 제 무덤을 팠다. 이 시대의 잘난 논객들 역시 부지런히 제 무덤을 판다. 결과는 뻔한 공식대로. 명박골 이시황에게 싹쓸이로 ‘갱유’ 당했다. 이건 수 없이 반복되는 역사의 패턴.

우습다. 한비가 ‘입으로 떠드는 유세가’들은 단 칼에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던 딱 그대로 실천되었으니. 유세가였던 한비 자신의 목부터 시범으로 달아났으니.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겠는가?

그것이 역사의 필연이라면, 수없이 반복되는 패턴, 뻔한 공식일진대, 지성인이라면 마땅히 이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했어야 했던 거.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왜? 그 지성이 ‘설익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목에 힘줘봤자 3류였던 거. 그렇다. 마키아벨리는 근대를 사유했으나 진정한 근대인이 아니었다. 한비 역시 근대인은 아니다. 무엇이 잘못인가? 한비의 ‘법치’든, 마키아벨리의 ‘정치’든 실로 근대의 산물이다.

그들은 근대를 폭로했다. ‘권력은 신이 하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작당한 것’이라고. 그러므로 권력의 주체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어야 한다고. 문제는 그 시절에 ‘인간’이 없었다는 거다. 슬프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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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건 합리주의다. 과연 합리적인가? 한비 씨는, 마키아벨리 씨는, 이 나라의 잘난 논객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합리적인가? 흥부 씨는 선하다. 그러나 비합리적이다. 나라면 흥부 씨와 거래하지 않겠다.

언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전형적으로 리스크 관리가 안 되는 사람이다. 조직에 해를 끼치는 위험인물이다. 합리주의란 자신에게 이득이 되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만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제것을 함부로 남에게 퍼주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 줄 것이 바닥나는 때 죽기 때문이다. 거래는 실패다. 이 나라 논객들이 과연 합리주의를 실천하고 있는가?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다들 제 무덤을 팠다. 입을 모아 세력의 구심점 될 ‘제 1 논객 노무현’을 죽였고, 다음은 제 발로 관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한비가 그랬고 마키아벨리가 그랬듯이. 역사에 수없이 되풀이된 패턴대로. 멍청하게 말이다.

설사 선의에 의한 것이라도, ‘난 바른말 했으니 되었다’는 순진한 태도라면 흥부 씨의 비합리적 태도이다. 최장집스러운 바른말이란 것이 결국 명성에 집착한 ‘입바른 말’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아마추어 같으니라고! 그렇다. 한비도 마키아벨리도 아마추어였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근대란 본래 ‘신의 것을 인간의 품으로’ 전하는 것일진대.. 중간에서 가로챘다.

어리버리 한비 아저씨, 아마추어 마키아벨리 아저씨, 신의 것을 뺏어와서 인간에게 주려 했는데.. 의도는 좋았는데.. 중간에서 독재자가 가로챘다. 무엇인가? 신권에 의존하던 통치로는 원래 한계가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중국의 르네상스라 할 춘추전국 시대.. 사악한 군주들이 신권에 의존하던 봉건의 수법이 더 이상 먹히지 않음을 알고, 새로운 수단을 모색하던 때, 딱좋은 먹잇감 한비와 마키아벨리가 걸려들었다.

그들은 논객의 방법을 구사하여 권력을 취하고, 그 사실(신의 것을 인간의 품으로)을 폭로한 논객부터 죽였다. 지금 이 정권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신문이 죽고, 방송이 죽고, 미네르바가 달려들어가고 연예인이 다쳤다. 젠장!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신의 이름을 빙자한 군주의 것을 인간에게 돌려주는 것인데 중간에서 독재자가 가로챘다. 순진한 한비 아저씨, 민중들에게 권력을 돌려주려 했는데 명박류들이, 조중동들이 중간에서 가로챘다.

그 방법으로 권력을 민중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고 믿었던 아마추어 한비가, 순진한 마키아벨리가 멍청했던 거다. 더 영리했어야 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어리석은 이 시대의 마키아벨리들 보라!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계몽을 앞세워 대중을 조롱한다. 대중을 경멸하고 모욕하다니 제 무덤을 파는 짓이다. 세력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논객은죽는다. 세력은 대중의 지지에서 나온다. 대중의 품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또 논객이라는 자들이 실로 자객이 되어서 다들 ‘한 방에 보낸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까불다가 한 방에 가는건 논객 뿐. 세력을 업은 자는 어떤 경우에도 한 방에 보낼 수 없다. 만방 맞고도 버티는 전여옥처럼.

권력자를 등에 엎고 어떻게 해보겠다는 계몽군주 시대의 발상, 예카테리나 여제를 꼬셔서 러시아를 계몽하려 했던 바보 볼테르들. 노무현 한 사람을 압박하여 어떻게 해보려 했던 그 수작들. 소아병적 태도이다.

아마추어 볼테르 아저씨 독재자 예카테리나에게 철저히 이용당했던 거다. 뒤늦게 이명박에게 알랑거린 어리보기 황석영처럼. 남산골 샌님처럼 순진하기는. 자신이 갑인지 을인지 똥오줌 못가리고 말이다.

대중 속으로 들지 않으면 안 된다. 군주 한 사람을 조종하여 수를 내보려는 생각이 벗어야 할 봉건주의다. 한비든, 마키아벨리든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근대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시스템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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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근대는 수평적 소통의 수단을 획득하고, 그 수단으로 무장한 깨어있는 시민세력의 결집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근대의 산물인 정치나 법치를 운용하면서 전근대의 산물인 군주에게 의존한다면 자기모순이다.

공자가 옳았다. 왜? 세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은 공자 아저씨도 세상물정 모르는 샌님이었다. 왕도를 편다며 어설프게 계몽군주를 찾아다녔던 것이다. 한심하기 이를데 없는 짓이다. 바보같으니라구. 실패했다.

설사 비담이 선덕에 충성한다 해도, 그 밑에 한 번 세력이 형성되고 나면 그때부터 ‘조직의 생리’에 지배되므로 비담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유신이 선덕에게 잘도 충고했던 그것을, 순진한 시골 서생 공자는 몰랐다.

공자는 어떤 군주도 계몽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패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성공했다. 학문을 일구어 세력을 만들었다. 이는 결과론이고 실상 그는 아마추어 한비가 그러했듯이 벼슬쪼가리나 탐했던 유치한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역사의 호흡 안에서 살아남았다. 그래서 공자가 옳다. 공자 유교가 옳은 것이 아니라 ‘물러나 세력을 기르는 노선’이 옳다. 공자가 선택한게 아니라 실패하고 떠돌다가 역사의 흐름을 타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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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중속으로 뛰어들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세력을 키워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대중을 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군림하고 계몽하려 해서 안 된다. 대중속에서 세력의구심점을 만들어야 한다.

구심점이 노무현이었다. 노무현 없으니 논객들이 도매금으로 ‘갱유’되고 있다. 근대는 시스템이다. 한탕주의 노선 버리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 백년 가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시민의 지배를 달성해야 한다.

근대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부터 촉발되었다.(한국의 직지가 오타방지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구텐베르크 인쇄술은 서적의 대량보급이라는 상업적 목적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방향이 다르다. 수평적 소통에 방점.)

미디어의 보급, 대중문화의 등장, 민족국가의 출현에 의해 근대국가 형태로 시민의 권력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전개에서 필연성을 읽어야 한다. 역사의 무대에서 비로소 대중의 전면등장이다.

오늘날 입으로는 논객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자객이 되어서 ‘한 방에 보낸다’는 환상을 품고 펜 끝에 독이나 바르며.. 버거운 이명박 못건드리고 만만한 노무현에게만 엉기며.. 여전히 구시대 계몽의 때를 벗지 못한 3류들이 설친다.

근대인도 못 되는 주제에 탈근대를 논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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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09-12-0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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