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지성의 의미

‘지성’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은자가 산 속에서 혼자 득도했다고 만세 불러봤자 의미없다. 혼자 좀 안다고 깝치는 것은 참된 지성이 아니다. 소승적인 태도 버리고 대승적인 마인드 얻어야 한다.

거리로 나와서 검증받아야 한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집단지성이 진짜다. 볼테르는 그 점을 파악하지 못했다.

‘개혁? 간단하지. 헌법만 만들면 돼. 헌법을 어떻게 만드느냐고? 간단해. 내가 불러줄께. 받아쓰기만 해.’

고작 이 정도의 인식으로 러시아를 개혁하려 했던 것이다. 초딩스럽기는. 그때 그시절 계몽사상의 한계다.

지식이라는 도구를 발견하고, 새로 선물받은 장난감을 손에 쥔 아이마냥 흥분해서 그 도구를 사용하려고만 했지, 그 도구를 사용하는 주체인 인간을 향상시킬 생각은 못했던 거다.

그렇다. 도구를 이룩할 때는, 그 도구를 다룰 주체인 인간도 함께 양성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이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봉건인과 근대인를 구분하는 기준선이다.

한비 역시 세력을 만들지 못했다. 그가 쓸어버리려 했던 유세가들이야말로 실로 그가 의지할만한 원군이었다. 위기때 지켜줄 생명줄이었다. 그 점을 몰랐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빗자루질 당한 것이다.

유세가들 사이에서 공론과 평판으로 이루어진 무형의 공동체야말로 그가 주장하는 법이라는 도구를 다룰 주체가 될 자격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 인간이 없어서 망가진 거다.

한비는 이사가 죽였다. 같은 법가끼리 서로 죽인 것이다. 왜? 외국인 출신 재상이라 지위가 불안해서다. 왜 불안했을까? 사람이 사람을 믿는 것은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는 것이 아니라 출신배경을 보고 믿는 것이다.

그 바닥에 기반을 다지지 못한 외국인 출신 이사에게는 그게 없었다. 그가 널리 공론을 일으켜 세력을 일구었다면, 국경을 초월한 유세가 집단의 공론과 평판과 문화가 감시하는 시스템이 존재했다면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비를 죽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공동체의 룰을 만들어 갔어야 했던 것이다. 이 시대의 논객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옳다’며 고함지를 줄 아는 자 많아도 공론의 문화를 이끌고, 대중을 중심으로 집단지성을 일구며 내부구심점 만들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때 그시절 ‘내가 옳아’ 하고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었던 것도 노무현 대통령과 그 세력이 뒤에서 받쳐준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세력을 일구지 못하면 지식도 일회성 소모품에 불과하다.

토사구팽의 법칙. 자신을 소모품으로 만들지 말란 말이다. 세력을 일구어야 비로소 지식이 주인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어떤가? 대중들이 보기에는 지식인이 여전히 타자일 뿐이다. 외국물 먹었다고 깝치는 정도.

근대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합리적 인간을 양성하고 세력화 하는 것이 진정한 근대다. 대개 시스템을 도구로 사용하려 할 뿐 그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세력을 형성하려고 시도하지는 않는다.

근대인 수준에서 머물러도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현대성은 시스템을 초월하는 미학적 인간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근대의 합리적 인간에도 도달하지 못한 주제에 현대의 미학적 인간으로 거듭나기란 불능이다.

합리적 인간은 시스템 안에서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이다. 미학적 인간은 시스템 없이 창의의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포지션 조합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는 농경민의 상비군이냐 아니면 유목민 방식의 소집된 군대냐의 차이와 같다.

농경민은 미리 리더와 깃발을 정해놓고 북이 울리면 그 리더를 찾아 모여든다. 유목민은 쿠릴타이를 거쳐 즉석에서 리더를 선출한다. 이 수준에 도달해야 진정한 현대인이다. 군대에서는 짬밥순으로 리더가 정해져 있지만 인터넷은 다르다.

노래부를 때는 노래잘하는 이가 리더고, 운동할 때는 공 잘 차는 이가 리더다. 인터넷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든 창의하는 현장에서 그것은 가능하다. 우일신 함으로써 가능하다. 모든 정지된 곳에서는 불가능하다.

http://gujor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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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09-12-1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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