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람과의 대화를 예로 들수 있다. 모든 중국인이 그렇다는게 아니고 어떤 책에 이와 비슷한 장면이 있더라. 하여간 중국사람과의 대화는 좀 깊이 속뜻을 헤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있는 사람이 어떤 가난뱅이에게 충고했다. “당신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해.” 가난뱅이가 말했다. “전 한가한 사람인데요?” “그러니까 일을 해야지. 한가하니까 일할 시간이 많잖아.” “아 참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전 아주 나태한 사람이라고요.” “참 내 말이 그말이야. 당신은 아주 나태해. 그러니까 열심히 일을 해야지. “허허 이 양반 뭘 모르시네. 제가 누굽니까? 김나태 하면 사방 백리에서 다 알아요. 어릴때부터 유명한 게으럼뱅이였다구요. 지금까지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자랐어요. 모르시겠어요?” “????” 전형적으로 대화가 안 되는 장면이다.
어문 수구꼴통 아저씨와 대화가 불능이었듯이 대화 안 되는 일은 흔히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도 이런 식의 소통불능 상태가 있고 남녀사이에도 있다. 대부분 보면 대화가 전혀 안 되는데 열심히 기를 쓰고 말을 뱉어낸다. 불행이다.
대화가 안 될 때는 대화가 안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해야 대화가 된다. 그러므로 대화 안 되는 먹통이 나타나면 그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확실히 잘라내야 한다. 언어를 통일하기 까지.
중국인들은 의미를 중요시한다. 의미는 본질이자 컨셉이다. 예의 가난뱅이가 한가하다는 말은 지금 할일이 없어서 논다는 뜻이 아니고 자신은 원래 인생을 한가하게 사는 컨셉을 가졌다는 말이다.
일본사람과의 대화도 그런 것이 있다. YES라고 하면 NO인 경우가 많다. YES라 했지 않느냐고 따지면 그건 상대방 말을 성의있게 들어준다는 뜻인데, 들어준 것만도 고맙게 여겨야지 무신 소리 하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남녀간에도 그런거 있다. 자신은 표면을 진술하는데 상대방은 컨셉을 들고 나온다. 지식인과 대중의 대화도 그런거 있다. 지식인은 상대방의 액면을 꺾으려고 하는데 대중은 팩트와 상관없이 포지셔닝 게임을 하고 있다.
말이 액면에서 맞느냐 틀렸느냐와 상관없이 누가 갑이고 을이냐를 따지는 것이다. 부하가 ‘제 말이 맞습니다’ 하고 말했을 때 보스가 ‘아니야’ 라고 말하면 팩트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고 ‘넌 해고야’ 라는 뜻인 경우가 많다.
대중은 자신이 주인이고 지식인은 피고용인이라고 여긴다. 거기서부터 엇나가기 시작한다. 그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한 모든 문제가 그렇다. 다시 한번 자세히 음미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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