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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앙카레의 추측과 구조진화론
http://gujoron.com/xe/109304자유게시판의 이 동영상은 보셨을 테고.
구조론은 새로운 수학이다. 리만이 리만공간을 토대로 유클리드기하학과 차별화 되는 리만기하학을 만들었듯이, 구조론은 밀도개념에 기반을 둔 새로운 수학을 제시하고 있다. 구조론이 제시하는 공간은 유클리드공간과 다르고, 리만공간과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다른 공간이 발견되었으므로 다른 수학이 나온다.
리만이 계산을 위주로 하는 전통적 수학과 다른 추상적 사고 위주의 새로운 수학 개념을 제시한 사실은 고무적이다. 구조론 역시 지금은 개념화 단계라서 추상적 사고 위주로 기술되고 있지만 장차 계산으로 넘어갈 것이다.
추상(抽象)의 추는 뺄 추다. 뺀다는 것은 겹침과 섞임, 곧 중복과 혼잡을 배제하여 단순화 한다는 것이다. 수학이란게 뭔가? 간단하다. 지름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더 빠른 길이 있는데 먼 길을 둘러간다면 그게 틀린거다.
가장 빠른 형태의 플루차트를 제시해야 한다. 구조론에서 강조하는 극한의 법칙과 유체역학 개념이 구조의 중첩에 따른 추상화를 통하여 에너지의 진행에 있어서의 지름길을 제시하는 바와 통한다.
가장 빠른 길은 무엇인가? 어쨌든 비행기 조종사가 항로를 잡을 때는 유클리드기하학보다 리만기하학을 쓰는 것이 더 빠르게 정답에 도달할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도 어떻게든 뉴욕을 갈 수는 있겠지만 조종사는 중복된 작업을 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예의 동영상에서 푸앙카레는 과연 지름길을 제시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리만은 결정적으로 에너지를 태우지 않았다. 리만 공간은 자연의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불완전한 공간이다. 우리는 눈을 통하여 자연의 사물을 관찰하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을 그림에 반영하지 않는 오류를 저지른다.
중력을 그릴 수 있는 화가는 없지만, 어쨌든 이 그림은 프랑스 혁명의 열기를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확실히 우리는 불완전한 사실을 가지고 수학을 전개하고 있다.
구조공간은 에너지를 태우고 있기 때문에 더 빠른 길이 된다. 동영상 서두에 지구둘레 이야기와 우주형태 이야기가 나오는데 뻘소리로 본다. 그것은 본질과 무관한 것이며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곁가지 이야기가 되겠다.
원구라는 개념 자체가 틀렸다. 구조론은 심과 날로 모두 설명한다. 콤파스 안에 이미 심과 날이 있다. 원은 콤파스를 회전시켜야 탄생하는데 이건 이미 일이 투입된 거다. 즉 중복된 거다. 지름길을 제시한다는 수학원리에 맞지 않다. 더 빠른 길이 분명히 있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원이 없고 따라서 원구도 없다. 밀도가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말을 고지식하게 듣고 원이 종이에 원을 그려대며 원이 있다고 부득부득 우긴다면 그건 대화가 안 되는 경우다.
그것은 위상기하에서 평행선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유클리드의 평면에서는 있던 평행선이 리만의 구면에서는 없어지는 이유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다른 공간으로 차원을 이동하여 갔기 때문에 원이 없고 따라서 구도 없는 것이다. 구조공간에는 원이 없지만 에너지의 밀도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그러하고 리만공간에는 원이 있다. 그러니 걱정마시라.
왜 굳이 다른 공간으로 차원을 이동해 갔느냐고 따지면, 그것이 더 지름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원이 있다고 치는 리만공간보다 원이 없다고 치는 구조공간이 더 정답에 도달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달나라에 우주선을 보내려면 위상기하를 쓰는 것이 유클리드 기하보다 더 실용적이듯이 생명의 진화와 같이 변화하는 것을 설명할 때는 구조공간을 쓰는 것이 더 실용적이다. 더 적은 노력으로 더 정확한 답을 얻는다. 왜냐하면 구조론의 질 개념이 구조의 중첩에 따라 가장 집적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즉 가장 집적된 상태에서 계산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예컨대 병사를 이동시키되 한 명씩 한줄로 세워서 행군하여 이동하는 것보다 100명씩 트럭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빠르다. 100명이 탑승한 트럭이 더 집적도가 높기 때문에 더 빠른 것이다. 구조론이 가장 집적도가 높은 공간의 기술형태를 제시한다. 계에 에너지를 태웠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기술하면 지구가 왜 태양 주위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허벌나게 뛰어다니는지 제 2의 설명이 추가되어야 하므로 지름길이 아니다. 지구와 태양 사이를 붙들어매고 있는 보이지 않는 끈을 설명해야 한다. 곤란하다. 구조의 관점에서 ‘지구는 태양 주위의 원형궤도상에 존재한다’고 말하면 더 압축된 설명이 된다. 중력에 따른 태양과 지구의 밸런스만 설명하면 되기 때문이다. 더 합리적인 기술형태가 된다.
‘왜 사과가 떨어지느냐’고 물으면 ‘사과가 무겁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되지만 왜 사과가 무거운지를 또 설명해야 하므로 번잡하다. 만유인력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 단축된 설명이 된다.
말하자면 구조론은 에너지를 태우고, 에너지의 밸런스 개념으로 더 압축된 형태의 고밀도화 된 정보를 제공한다. 그것은 마치 홍길동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헐레벌떡 뛰어가서 소식을 전하는 것보다, 그냥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쉬운 이치와 같다. 둘 다 소식을 전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전화선이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공간의 차원이 다른 것이다. 에너지를 태운다는 개념은 미리 전화케이블을 가설해두는 것과 같다.
가운데 사람이 하나 서고 기준을 삼는다. 같은 거리의 둘레에 360도로 360명이 양팔간격으로 늘어선다면 축구장 두배 크기의 원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앞쪽에 또 같은 방식으로 늘어선다면 양팔간격으로 설 수 없을 것이다.
기준에 가까이 갈수록 간격은 점점 좁혀진다. 조금 와서는 반팔간격이 되고 더 와서는 어깨가 부딪히는 간격이 되다가 마침내 짜부가 나고 말 것이다. 그것이 밀도다. 즉 기준점에 가까울수록 조밀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조밀해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눈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눈을 뭉친다면 눈덩이의 무게에 의하여 눈은 압착된다. 그 힘은 눈뭉치의 중심에 가장 세게 전달된다. 지렛대의 원리에 따라 바퀴축에는 큰 힘이 도달한다. 힘의 밀도가 높은 것이다. 구조는 에너지를 태웠기 때문에 밀도가 있다. 유클리드든 리만이든 기존의 공간은 밀도가 없고 에너지가 없는 공간이다.
푸앙카레의 추측은 원구를 만드는 문제이지만 구조론의 관점은 그 반대로 그 중심점에서 사방으로 전개해 가는 문제다. 가운데의 한 점에서 출발하여 사방으로 전개해 간다면 모든 모양이 그 안에 들어간다.
도넛 이야기는 쓸데없는 소리가 된다. 위상이 같으냐는 것은 결국 한 점에서 출발할 수 있느냐다. 정육면체든 뭐든 한 점에서 출발하여 사방으로 균일하게 전개하면 그 안에 들어간다. 밀도 개념을 적용하면 한 점에서 출발하여 모든 형태에 도달할 수 있다.
구조진화론의 생장구조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원구의 바깥을 굴껍질이라 보고 내부의 굴이 성장할수록 굴껍질을 밖으로 밀어낸다. 정육면체든 어떤 형태는 그 성장의 방해물로 볼 수 있다. 굴이 성장해 가며 껍질을 밖으로 밀어내다가 바위나 돌을 만나 그 방향에서 멈추게 되면 정육면체가 되든 정사면체가 되든 쐐기모양이 되든 다양한 모양이 된다.
나무가 성장하는 것은 껍질을 밖으로 밀어내는 형태이다. 나무는 연리지가 되어 가지가 붙어버리는 수가 있지만 그건 나무라서 그렇고 공간의 개념으로 볼 때 연리지는 허용되지 않으므로 껍질이 막혀서 붙을 수 없으므로 같은 위상에서 도넛공간은 구조적으로 불능이다.
결론적으로 구조론의 밀도개념은 한 점에서 출발해야 하며, 한 지점에서 성장을 시작하여 밀도가 높은 지점에서 낮은 방향으로 전개하여, 모든 형태를 만들 수 있지만 도넛은 그 접점에서 껍질과 껍질이 만나 벽을 만들므로 불능이다.
이를테면 쇠뿔 둘이 자라다가 하트모양으로 동그랗게 말려서 가운데서 쇠뿔이 붙어버리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아직 지구상에서 그런 얄궂은 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인간들은 이 문제를 용접의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공간의 위상에서는 선을 그을 때 종이에서 볼펜을 떼지 말아야 하므로, 즉 하나의 심을 가져야 하므로 그렇다. 볼펜을 종이에서 떼면 두개의 심, 두 사건이며 이는 구조론의 닫힌계 개념에서 배척하는 바다.
나무나 굴은 껍질을 밖으로 밀어내는 형태로 자란다. 귤이나 호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식물의 꽃가루받이는 명백히 도넛형으로 일어난다. 즉 생물의 진화는 원구형으로 자라던 세포가 외부의 공격을 받아 도넛형을 이루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말미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생명체는 입에서 항문까지 하나의 파이프가 된다.
이때 심은 1이 아니므로 위상이 다르다. 즉 정자가 난자속을 침투하면서 단 한번 원구가 도넛으로 변하며 그 결과 인류가 지구에 탄생한 것이다. 종유석이나 별사탕이 자라는 원리도 비슷하다. 어쨌든 푸앙카레의 추측은 구조진화론의 생장구조이론에 모두 반영되어 있다.
푸앙카레는 고리가 축소하여 원구에 도달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구조론은 점에서 밀도로 전개하여 고리가 아닌 모든 형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단 위상의 변화는 없다. 구조진화론의 생장구조이론은 원구형의 세포가 뚫려 도넛형을 이룸으로써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로의 진화가 일어나고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어 오늘날의 포유류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푸앙카레가 100년 전에 묻고 페렐만이 10년 전에 답한 것을 구조론은 30년 전에 생장구조 이론에 적용하여 이미 응용하고 있었다. 물론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만. 공학분야에 이미 적용되고 있지만 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난제들은 더 있다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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