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실패이유

‘일본이 실패했다’고 말하면 오버고, ‘일본모델이 실패했다’고 말해도 역시 오버가 되겠지만, 일본주식회사가 어떤 정점을 지난 것은 분명하다. 일본이 ‘기우는 달’이면 한국은 ‘차오르는 달’이라 하겠다.

일본은 기업문화라든가 여러가지로 제도화, 시스템화, 매뉴얼화 된 면에서 잘 정비되어 있고 한국은 아직 주먹구구식이다. 한 마디로 허접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몇몇 대기업은 양호한 실적을 올리고 있고, 다수의 한국인들은 조만간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구조론으로 보면 역시 중핵은 의사결정이다. 좋은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나라, 좋은 의사결정시스템을 가진 기업이 성공한다. 일본의 문제는 한 마디로 하극상이다. 일본사에는 아주 ‘하극상 시대’가 존재한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하극상이 만연해서 그 시대의 특징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일본에서 하극상이 시스템화 되었다는 거다. ‘천황’이라 불리는 명목상의 통치자를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그 아래에 쇼군이라 불리는 실세가 따로 있다. 배후에서 은밀히 이런 짓을 자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공공연하게 이렇게 하는 것이다. 중앙에서 막부가 이런 짓을 하는게 아니라 지방의 작은 봉건영주나 기업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야꾸자 집단에도 이러한 문화가 아주 제도적으로 정착이 되어 있다. 오야붕은 허수아비고 중간보스가 실세로 되어 있는 예는 흔히 있다.

한국에도 하극상은 있어왔다. 그러나 쉬쉬하는 판이었다. 고려시대 무신의 난때 하극상이 있었고 조선시대 말기의 세도정치나 박정희, 전두환 역적의 군사반란 역시 하극상에 속한다. 그러나 내놓고 하는 일은 아니고 스스로 챙피해 하면서 어떻게든 정통성을 얻으려고 노력해 왔다. 반면 일본은 위에 허수아비를 올려놓고 아주 노골적으로 하극상을 할 뿐 아니라, 위에 있는 허수아비도 알아서 기며 충실히 가케뮤샤 역할을 해낸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일본은 하극상 뿐 아니라 배신도 제도화 되어 있고, 패자의 복종도 제도화되다시피 하다. 도쿠가와 막부를 완성한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패도 배신으로 대세가 결정이 되었다. 배신이 당연시 되어 ‘배신할 수 있는데 왜 배신을 안해?’ 하고 되물을 태세다. 그러니 일본의 전쟁에 ‘전진은 있어도 후퇴는 없다’는 말이 있다. 쇼군으로 인정받기 위해 교토로 나아갈 때는 기세좋게 가지만, 한번 패배하여 말머리를 돌리면 관망하던 자들이 일제히 물어뜯으려고 달려드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싸움에 져서 대세가 결정되면 무조건 항복하는게 제일이라, 강자의 힘 앞에 약자가 굴복하는 것도 당연시 되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한 쪽의 사무라이들은 신분이 강등되어 굴욕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수치를 또 군말없이 받아들인다. 2차대전 후 맥아더에게 나라를 바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엎드릴 때는 아주 납작 엎드린다.

왜 일본에만 유독 이런 현상이 제도화 되어 있을까?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구조의 문제다. 유럽이라면 군왕들의 임무는 외교다. 문제가 일어나면 외국군대를 끌어와서 진압하는 것이며, 귀족 역시 대개 다른나라 왕들과 인척으로 엮여서 유사시 외국군대를 끌어오는 역할이 있었다. 일본은? 끌어올 외국군대가 없다. 식민지 침략을 주도한 조슈의 군벌이 정한론의 구실로 내세운 것이 조선의 조공을 받아야 ‘천황’으로 불리는 자의 체면이 서기 때문이라고 했다는데 역시 그러한 관점이 된다. 일본은 섬이라서 상대적으로 머리의 역할이 약하다. 머리는 눈이나 코나 귀나 입이나 다 밖을 내다보는 것인데 바깥이 바다라서 역할이 없는 것이다. 물론 개화기 때는 서구의 기술을 받아들여야 했으므로, 갑자기 머리의 역할이 대두되어 졸지에 히로히또가 실세로 되었다. 이는 영국, 프랑스 등과 외교를 하려면 걸맞는 머리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영제국 왕과 급을 맞추려니 일본제국 왕이 필요했던 거고 2차대전 후에는 그마저 용도가 없어졌다.

예부터 그런 말이 있었다. 일본군은 하사관이 강하고 독일군은 장교가 강하고 미국은 장군이 강하다고. 사실이었다. 일본군은 위로 갈수록 러일전쟁의 영웅이라는 노인들만 있어서 형식적으로 자리만 지킬 뿐, 주요한 결정은 아래에서 실세들간에 세력대결로 이루어졌고 그마저 초슈와 사츠마의 군벌들이 나눠먹고 있어서 하극상이 만연했다. 부하들이 먼저 일을 저지르면 60살 먹은 할아버지 장군들이 수염만 만지면서 무마하는 식이었다. 부하의 배신이 두려워서 알아서 기는 거다. 이런 전통이 현대의 기업문화에도 반영되어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이 책임있는 자에게 있지 않고 그 밑에서 나오며,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은 골프나 치러 다니다가 뭐가 잘못되면 방송에 나와서 고개나 조아리며 사죄하곤 하는 것이며, 사죄문화 또한 숙달되어 있어서 아주 머리를 땅에 박으며 넙죽넙죽 잘 한다. 한국에는 사죄하지 않지만.

구조론으로 보면 머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머리의 역할이 중요하게 되는 것이 합리주의다. 손발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이 실용주의다. 일본은 극단적인 실용주의라서 칼자루를 쥔 쪽이 실세가 된다. 일본 드라마라면 젊은이들이 눈치나 보는 비굴한 노인들에게 호통을 쳐서 꾸짖는 장면이 흔하다. 또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젊은이들이 칼자루를 쥐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총을 쥔 쪽은 국방부의 참모들이 아니라 일선의 사단장들이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쿠데타군이 실세인 것이다. 일본이라면 아주 공식화 되어 있다.

왜 손발의 역할이 강조되고, 실용주의가 강조되는가 하면 그렇게 해도 시스템이 잘만 돌아가기 때문이다. 고립된 지역에서는 그렇게 된다. 여러 나라가 경쟁하는 대륙에서는 그게 안 된다. 유럽의 경우 외국의 간섭은 늘 있는 일이어서 명분을 얻는 쪽이 이기게 되어 있다. 책임자가 실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대륙이라고 다 그런건 아니고 중국과 러시아처럼 너무 덩치가 커져버리면 그 간섭할 외국의 존재가 무의미해져서 일본화현상이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일시적으로, 혹은 국소적으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오은선 의혹을 터뜨린 한겨레 박수진 기자는 이를 ‘독점주의’라고 표현했는데 기자들이 의문을 가지고 취재를 하려면 산악인들은 ‘니들이 칸첸중가에 가보기나 했나?’는 식으로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기 일쑤다.(미디어 오늘 참고) 고질적인 비리를 알면서 덮어주고 쉬쉬하는데 ‘여기는 우리들의 세계’라는 의식이 있다는 거다. 외부인이 넘보는걸 싫어하는 거다. 자기들만의 성역이고 섬이다.

합리주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실용주의는 오류가 있을 때 오류시정을 못한다. 잘못된게 있어도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어쩔줄몰라하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왜? 책임자가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일전쟁에 참전한 노인장군들이 뭘 아는게 있나? 그저 젊은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일이 시끄럽게 되지 않도록 무마하고, 다툼이 있으면 중재했을 뿐이다. 젊은 야심가 실세들은 형식적으로는 노인장군들 잘 떠받든다. 아주 깎듯하게 모신다. 정작 결정은 내부에 무슨무슨 라인이 있어서 자기들이 밀실에서 쑥덕쑥덕 하고, 선참후계 식으로 나중 통보한다. 이게 전두환 공식이다. 노인장군들은 잘못인줄 뻔히 알면서 최규하처럼 ‘대중의 뜻이 그렇다면’ 하고 물러선다. 이게 잘 될 때는 쾌속진군을 하게 되는데 나쁠 때는 최악이 된다. 그래서 전쟁에 지면? 맥아더한테 복종하듯이 납작 엎드리면 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드라마를 봐도 한국의 이순신은 혼자 고독하게 결정하는데 일본은 빙 둘러앉아서 회의로 결정하니 한국은 잘못되면 이순신이 혼자 책임져야 하는데 일본은 그 책임자가 없다. 그러니 가토와 고니시도 토요토미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위로 보고를 못하고 영감쟁이 죽을날만 기다리며 7년을 조선에서 깔아뭉개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실용주의 방식은 아래를 쥐어짜서 효율을 내는 하부구조의 최적화 방식이다. 하부구조의 에너지 효율 증대방식은 구조적 한계가 있다. 상부구조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외부에서 에너지 자원을 끌어와야 하며, 이 때는 책임자의 권한이 중요하고 합리주의가 소용된다. 실세가 뒤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자가 실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래야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가 있다. 명분이 중요하고 배신은 없어야 하며 하극상은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 대충 덮고 대충 무마하고 대충 넘어갈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합리적인 문제해결의 기준을 정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의사결정을 잘 하는 데가 반도국가다. 영불의 100년전쟁이나 독일에서의 30년 전쟁에서 보듯이 대륙은 의사결정을 잘 못하는 현상이 있다. 너무 많은 국가들이 감놔라 밤놔라 참견하고 나서기 때문이다. EU라면 신속한 의사결정은 기대할 수 없다. 섬나라들은 어떨 때 매우 빨리 결정하지만 ‘이산이 아닌게벼’ 하고 확인을 하고도 절벽을 향해 달리는 레밍처럼 돌이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반도는 중간이다. 이탈리아라면 북으로는 알프스로 막히고 남으로는 바닷길이 있으니 유리한 지점에 가서 싸울 수 있다. 대개 문명이 반도에서 반도로 옮겨가는 것은(그리스 반도>이탈리아 반도>이베리아 밭도>네덜란드 반도>스칸디나비아반도)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스위치가 있어서 원하는 때 열고 원하는때 닫을 수 있다.

지금 한국은 대륙의 공산주의 바람에 시달리다가, 해양의 자본주의 바람을 받아들였는데, 다시 떠오르는 중국의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다. 한국은 일본과 통하지만 적당히 개방하고 있고, 여전히 반일의식이 높으며(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은 한국 좋다 7 싫다 3, 한국은 일본 좋다 3 싫다 7.. 이 뉴스가 일본에서 화제가 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함. 일본은 최근 미국과 긴장하며 외교고립 위기로 한국에 슬며시 추파를 던지는 상황. 버블위기 이후 탈아입구 이데올로기가 허상임을 대략 감잡은듯. 그런 면에서 일본의 한류는 본질에서 대세임.) 미국에 의지하지만 친미찌꺼기들만 그렇고 젊은이들은 자주적이며, 중국과 손을 잡지만 아주 잡은 것은 아니고, 러시아와 친하려 하지만 실제로 친해진 것은 아니며, 북한과도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애매한 상황이 되어 있다. 이는 반도국가의 특징이다. 반도는 대륙이든 해양이든 어느 한쪽에 완전히 치우치지 않음으로써 주도권을 장악한다. 이를 위해서는 극심한 눈치보기가 소용되며 빠른 정보판단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수적이다. 즉 머리의 역할이 중요한 거다. 따라서 판 전체를 조망하는 합리주의가 소용된다. 일본이라면? 그들은 자신을 아시아의 일원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아시아에 대해서는 ‘꼬우면 관둬!’ 식으로 퉁명하게 대하다가 최근 버블위기를 만나 외교고립을 깨닫게 되어 양순해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일본의 실질적인 위협이다.

합리주의(상부구조의 에너지유도)- 정확한 정보판단, 신속한 의사결정, 돌아가는 판 전체를 조망, 뛰어난 균형감각, 불가근 불가원의 밸런스, 끝까지 책임 완수, 합리적인 기준의 제시, 강한 리더십 탄생.

실용주의(하부구조의 에너지 최적화)- 싫음말고식 단절, 한번 결정하면 잘 밀어붙임, 자기가 원하는 부분만 바라봄, 좋으면 달라붙고 싫으면 이별, 대충 덮어놓고 무마함, 치고빠지기식 편의주의, 명목상의 군주와 실세의 이중구조, 약한 리더십 악순환.

물론 일본이 항상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개화기 대정봉환을 주도한 일군의 선각자들은 퇴계유교를 공부해서 합리주의로 무장하고 시스템을 정비하는데 신경을 썼다. 그러나 곧 군부의 젊은 야심가들에 밀려서 그들은 나이들어 허수아비가 되었고, 무개념 젊은이들에 의해 정한론이 일어나고, 그들은 섬나라의 잇점을 살려 멋대로 치고빠지기 했다. 섬이니까 치고 빠지면 그만이다. 책임질 이유없다.

반도라도 항상 반도의 특징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규모와 방향성에 따라 다르다. 조선왕조는 대륙에 종속되어 해양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반도의 특징을 잃어버렸다. 이성계와 이방원, 수양대군의 행적은 명나라에서 주원장과 영락제로 이어지는 정치흐름과 흡사한 데가 있다. 중국에서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잘 나갈 때는 조선 역시 숙종, 영조, 정조가 태평성대를 열었고, 이후 서태후가 매관매직으로 나라를 통째로 들어먹을 때는 조선 역시 정순왕후, 명성황후가 세도정치를 하며 매관매직으로 말아먹었다. 일정한 패턴이 있다. 구조분석을 해보면 다 나온다. 지금 한국은 해양의 기운이 대륙으로 옮아가는 절묘한 타이밍에 그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

대중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오직 의사결정의 편의를 따라간다. 대중이 잘못된 길로 가는 이유는 그래야 의사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옳은 길로 가고자 하면 아주 가지를 못하고 어리둥절해하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멍청하게 서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못된길로 가자고 하면 나중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 가기는 간다.리더가 대중이 잘못된 길로 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이를 방치하는 이유는 대중이 가는 방향을 바꾸려다가는 대오가 무너져서 더 최악의 상황에 빠지기 때문이다. 양치기 개가 양떼를 몰려면 자신의 포지션을 바깥에 두어야 하는데, 이미 안에 갇혀서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해결하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그것은 미리 훈련을 해두는 것이다. 훈련된 정예병사는 리더의 깃발신호 하나로 백만대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순식간에 선회를 할 수 있다. 이렇듯 미리 훈련해 두는 것이 합리주의다. 훈련하지 않고 일단 가보다가 문제 생기면 그때가서 어떻게 대충 무마하는건 실용주의다. 일본은 300여개 소국으로 잘게 쪼개져서 백만대군이 출동할 일이 거의 없으니 실용주의가 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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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0-09-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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