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정체성
- 부분적으로 지난 글 재탕입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 (반칠환의 노랑제비꽃)
자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온 우주가 긴밀히 관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정체성이다. 정체성을 얻어야 긴장하고 집중할 수 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돌멩이 하나에 우주 하나가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 세상과 내가 긴밀한 관계를 믿고 있는 것, 세상과 친하기, 바로 그것이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자신의 주소지를 찾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가 명백해져야 한다. ‘너는 누구냐?’ ‘너는 왜 사느냐?’ 하는 질문에 똑바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뿌리없는 부평초처럼 떠서 흘러다니게 된다. 이것과 저것 중에서 하나를 골라잡아 선택하는게 아니라, 내 인생에 이 길 밖에는 길이 없어야 한다. 다른 길도 많은데 내가 왜 하필 이 길을 가는지 그 필연성을 찾아야 한다. 정체성을 얻을 때 마음은 태산처럼 의연해지고 당당해진다.
당신은 세상과 친한가? 당신은 세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과연 21세기는 당신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왜 사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세상의 진보하여 나아가는 방향성을 알고, 그 에너지의 흐름에 자신을 올려태워야 한다. 세상과 내가 상관없는 존재가 된다면, 세상이 진보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세상과 내가 다른 길로 간다면 실패다.
5년간 우울증 약을 먹었다는 HOT 출신 토니안의 예를 참고할 수 있다. 얼마전 MBC 황금어장 강호동의 무르팍도사에 출연하여 고백한 바에 의하면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조기유학하며 자기 정체성을 잃고 자존감을 잃어버린 것이 우울증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울증과 조울증 등 여러 증세가 나타나고 두통이 심해져서 잠을 이룰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그는 어른처럼 행동해야 했다. 미국에 들른 이수만과 만나 단숨에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린 것이다. 겨우 잡은 끈을 놓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오디션 중에 닳아버린 건전지 하나를 사기 위해 30분 동안 공원을 가로질러 뛰어갔다고 한다. 그는 많은 일을 해냈고 사업에도 성공하여 부자가 되었지만 오랫동안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빠져 있었다. 그것이 이방인의 마음이다.
이방인은 근거지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주인의 눈에 들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이방인은 언제라도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곳이 자기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독점적인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의 공격에 대응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의지하고 자신을 도와줄 주변이 없기 때문이다. 무리가 크게 세력을 이루어 함께 나아가는 방향성 안에서의 자기 포지션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떠나버려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탠포드졸업 학력을 의심받은 타블로의 예도 비슷하다.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떠돌면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자존감을 잃어버렸다. 그 때문에 안티세력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타블로의 소극적인 대응 때문에 사건은 더욱 확대되었다. 문제는 오래 전에 쓴 타블로의 소설 ‘당신의 조각들’에 이미 이와 유사한 내용이 나와있다는 거다. 뿌리 내리지 못하고 파편화된, 음울하고 허망한, 신통한 일은 어디에도 없는,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을씨년스런 뉴욕의 풍경들, 소년 타블로는 자신의 운명을 어느 정도 예감한 것이다. 타블로는 자신이 한 방에 훅 갈 수 있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파도에 떠밀려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그에게 일어난 일들은 미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무수히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온 우주가 당신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고 말했지만 타블로의 입장에서는 온 우주가 자신에게 차가운 냉소를 퍼붓는 것처럼 보여졌던 것이다.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다는 거다. 세상과 자신의 존재가 톱니바퀴처럼 긴밀히 맞물려 있지 않고 반쯤 발이 허공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렇게 하면 세상이 저렇게 반응을 해야 자기 포지션을 찾고 거기에 맞추어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맞아떨어지지 않고 계속 빗나가기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데 왜 반드시 이 길을 가야하는지가 명백하지 않은 것이다.
토니안은 군대를 갔다와서 우울증이 치료되었다고 한다. 군대를 가서 한국과 밀접해지고, 한국과 친해지고, 인간과 친해지고, 온 우주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나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가? 타블로의 소극적 대응은 바로 그 점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토니안이나 타블로나 대개 부모의 욕심 때문에 어린 나이에 외국에 가서 자기 정체성 잃고, 자존감 잃고, 그것이 우울증으로 연결된 거다. 여전히 병역문제가 걸려 있는 타블로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이라는 본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안티세력을 설득한다고 해도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으로는 낙담이 크다. 좌절은 여전하다.
조기유학이 자식을 망치는 길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군대가기 싫으면 미국시민권 따면 되고♪, 영어공부 힘들면 조기유학 가면 되고♪’ 하는 식의 요리 빠지고 조리 빠지는 편법으로는 대한민국호 안에서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얻을 수 없다. 적절한 자기 포지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그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승준은 한국 국적을 포기했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유승준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다. 이건 낭패다. 내가 있을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으면 자존감을 얻을 수 없다. 세상 앞에서 떳떳해지지 않는다. 그럴 때는 우울증이 찾아온다. 문제를 당하여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과감하게 돌파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주저하게 된다. 문제는 더욱 장기화 된다. 어떻게든 영어만 배우면 된다고 믿거나 어떻게든 학벌만 따면 된다고 믿고 편법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정체성 잃고, 자존감 잃고, 포지션 잃고, 이것저것 다 어색해져서 영혼이 망가지는 잘못된 교육이 지금 한국에 횡행하고 있다. 타블로도 토니안도 그 피해자다. 지금 미국에 수만 명의 피해자가 대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호는 지금도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의 한국은 오늘의 한국과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그 진보하는 에너지의 흐름에 박자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스탠포드를 졸업한 타블로가 유명한 학자로 성공하여 현지에서 크게 유명세를 떨쳤다면 어떨까? 노벨상 수상은 못해도 그 언저리까지 갔다면? 한국은 그를 환영했을 것이고, 그를 한국으로 불러들여 방송카메라 앞에 세우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타블로는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경우는 대한민국호의 진보하여 나아가는 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예인이 되어로 돌아온 타블로는 여전히 연예인을 ‘딴따라’로 비하하는 한국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대중은 대한민국호의 나아가는 방향과 그의 활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외부인이 끼어들어 내부의 밥그릇을 빼앗아 간다고 여긴 것이다. 침략당했다고 여긴 것이다.
교포들을 말을 들어보면 이민한 시점에 의식이 멈추어 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60년대 이민간 사람은 625직후의 싸늘한 공기가 지배하던 60년대의 극단적으로 보수의식을 가지고 있고, 80년대 이민간 사람은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80년대의 의식을 지니고 있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교포사회에서는 ‘서울며느리’ 이야기가 회자되곤 한다고. 서울며느리가 가장 진보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보수적인 교포사회와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미국에 살면서도 진보적인 미국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날로 혁신하는 한국의 발전에 박자를 맞추지도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허공에 발이 떠버리는 것이다. 알아야 한다. 세상은 진보하는 것이며 그 진보의 흐름을 탈 때, 그 진보의 방향성과 자신의 의식을 일치시킬 때 밸런스를 맞출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평안해진다. 노련한 사공이 파도를 겁내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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