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는 생김새가 파이프와 같다. 구조는 에너지가 가는 길이다. 에너지가 드나드는 입구와 출구가 있고 그 안에 에너지를 처리하는 제어부가 있다. 인간의 정신 역시 파이프와 같다. 외부의 것을 내부로 흡수하여 내부에서 이를 처리하고 다시 외부로 흘려보낸다. 그것은 하나의 독립된 사건이며 일(work)이다.
하나의 사건을 처리함으로써 마음의 일이 끝날때 행동과 욕망을 남긴다. 행동은 그 일의 물리적인 결과이며, 욕망은 그 일의 성과를 평가하고 다음번 일을 기약하는 것이다. 여기서 각별한 점은 인과논리로 엄정하게 규명할 때 욕망은 그 일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일이 반복될 때 욕망은 다음번 일과의 연결고리가 되지만 다음번 일의 직접 원인은 아니다. 욕망은 사슬처럼 연쇄고리로 이어지며 같은 일을 반복하게 한다.
하나의 사건이 또다른 사건을 불러 일으킨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같은 사건이 반복될 때 앞의 사건의 결과가 다음 사건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구조에서 뒷사건의 원인이 앞사건의 결과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순환의 오류다.
‘오늘 아침에 등교하는 이유는?’ ‘어제 저녁에 하교했기 때문이지.’ ‘어제 저녁에 하교한 이유는?’ ‘어제 아침에 등교했기 때문이지.’ ‘어제 아침에 등교한 이유는?’ ‘그저께 저녁에 하교했기 때문이지.’ 이렇게 등교와 하교를 반복하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여, 같은 패턴을 밑도끝도 없이 무한반복하는 것이 순환의 오류다. 이는 논리학에 대한 무지에 따른 현상으로 지극히 어리석은 판단이다. 논리의 절대적인 법칙은 중복배제의 원칙에 따라 같은 패턴을 결코 2회 이상 반복할 수 없다는 거다.
계주의 주자가 바톤을 이어받는 이유는 앞 주자 때문이 아니다. 경기의 주최측 때문이다. 4번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는 이유는 3번타자 때문이 아니고 야구시합 때문이다. 같은 사건이 반복될 때 원인은 반드시 둘을 통일하는 제 3의 것이어야 하며, 그 제 3의 원인은 항상 바깥에 있어야 한다. 밥을 먹는 원인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고, 배가 고픈 원인은 배설했기 때문이고, 배설한 원인은 밥을 먹었기 때문이고, 밥을 먹는 원인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고……. 이건 말장난이다. 이런 말장난을 굉장한 논리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는게 문제다.
1번 사건의 결과가 감정이다. 그 욕망이 다시 똑같은 2번 사건의 원인이 되어 똑 같은 감정의 도출이 반복될 때 진정한 원인은 생각에 있다. 같은 감정이 2회 반복되면 생각에 원인이 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되풀이 한다면 정말 생각이 없는 거다. 같은 생각이 2회 반복되면 의도가 원인이며, 같은 의도가 2회 반복되면 의식이 원인이며, 같은 의식이 2회 반복되면 정신이 원인이다.
같은 감정을 2회 반복하여 느끼려고 하는 것이 행복욕구다. 같은 생각을 2회 반복하려 하는 것이 성취욕구다. 같은 의도를 두 번 반복하려 하는 것은 사랑욕구다. 같은 의식을 두 번 반복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욕구다. 같은 정신을 반복하려는 것은 존엄욕구다. 이렇듯 같은 것이 한번씩 반복될 때 마다 한 단계 위로 상향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불가에서 노상 공(空)을 말하고, 무(無)를 말하고, 또 평상심을 말하고, 또 내려놓으라 하고, 또 비우라고 하는 것은, 그 단계에서 같은 패턴을 반복하지 말고 한 단계 위로 비약하여 올라가라는 것이다. ‘감정의 행복’과, ‘생각의 성취’와, ‘의도의 사랑’과, ‘의식의 자유’를 넘어 최종단계인 ‘정신의 존엄’에 이르면 그 정신은 바깥 환경과의 정직한 대면이다. 나의 바깥으로 성큼 걸어 나갔으므로 내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리하여 의식과, 의도와, 생각과, 감정이 내게서 비워졌으므로 공(空)이고 무(無)인 것이다.
모든 사건의 진정한 원인은 욕망이 아니라 정신이다. 욕망은 같은 사건이 2회 이상 허무하게 반복된다는 의미이며 이는 실패다. 게이머가 같은 스테이지를 반복하고 있다면 실패다. 학생이 같은 과목을 반복하여 수업하고 있다면 낙제다. 1학년이 끝나면 2학년으로 올라가야 한다. 내년에도 또 2학년이 반복되는 것이 욕망이며 그것은 이미 실패인 것이다.
욕망은 반복된다. 아침에 밥을 먹었는데 저녁에 또 먹고 싶다. 구조로 보면 중복배제의 원칙에 따라 이는 소거된다. 즉 인과구조에서 배제되고 무시되는 것이다. 숟가락질을 한번 했어도 한 끼를 먹은 것이고 숟가락질을 백 번 했어도 한 끼를 먹은 것이다. 반복되는 것은 논리규칙에 의해 배척된다.
밥을 먹고 싶기 때문에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에너지를 조달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며, 밥을 먹고 싶은 욕망은 그저 밥먹는 타이밍과 먹어치우는 분량을 조절하기 위한 설정일 뿐이다. 인간은 욕망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라는 수단으로 분량과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이다. 자동차는 엑셀레이터 페달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의 의도 때문에 가는 것이다. 엑셀레이터 페달은 가는 속도를 조절할 뿐이다. 자동차는 달리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달리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가 시동을 걸었기 때문에 달리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바로 알아야 한다. 항상 높은 단계가 낮은 단계의 원인이다. 4차원이 3차원의 원인이다. 3차원은 2차원의 원인이다. 3차원은 3차원의 원인이 될 수 없고, 2차원은 2차원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같은 차원에서는 인과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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