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김태원
연기를 잘 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감정을 실어 연기하면 된다. 약간 화가 나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다. 연기 못하기로 유명한 정우성이 곽경택 감독의 똥개에서는 그나마 호평을 받은 이유는 -경상도 사투리가 엉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경상도 이외의 지역 사람들에게는 명연기로 보였을듯- 화가 나 있는 것처럼 연기했기 때문이다. 화가 날 만도 했다. 하긴 멀쩡한 녀석이 똥개 취급을 받았는데 어찌 화가 안 나겠는가?
역시 연기 못하기로 유명한 장동건도 곽경택의 친구에서는 호평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극 중에서 유오성에 밀리는 2인자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좀 망가지고 억울한 캐릭터를 받으면 바보도 연기를 제법 하게 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는 대개 연기를 잘 하는데 그 이유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대개 밑바닥의 망가진 인간, 세상 앞에서 크게 화가 나 있는 인간들을 위주로 인간유형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파 배우인 최민식, 송강호, 유해진 등이 명성을 떨치는 이유도 얼굴 생긴 것 부터 상당히 억울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민식은 올드보이에서 오대수 역을 맡아 무려 15년간 만두만 먹고 갇혀 있었는데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건 진짜 억울한 거다. 바보도 오대수 역을 맡으면 명연기를 하게 되어 있다.
연기 잘 하는 송강호도 쉬리에서는 연기를 못했는데 그 이유는 전혀 억울하지 않은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얼굴 생긴 것 부터 한대 때려주고 싶도록 얄밉게 생긴 송강호는 사실 극중에서 숱하게 맞았는데 쉬리에서는 반대였다. 싸대기 한 대 때려주고 싶게 생긴 인물이라면 오달수와 이문식인데 역시 연기파다.
각설하고.. 감정을 실어야 연기가 산다는 말이다. 밑바닥에서 에너지를 끌어내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계속 이어진다. 극 초반에 발생한 분노를 막판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영화 타짜라면 초반에 사기도박꾼에게 걸려 돈 잃고 집안까지 거덜나서 일어난 분노를 막판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만약 중간에 분노가 사그라져 버린다면 말하자면 김이 빠진 것이다. 그 분노를 계속 붙들고 가야 한다. 김 새지 않게, 김 빠지지 않게, 김 빠진 콜라처럼 싱거워져 버리면 그것도 곤란이다.
풍선과 같다. 분노가 풍선을 팽팽하게 일으켜 세운다. 그 풍선이 한껏 부풀어 올랐을 때 그 인물 캐릭터의 일관성을 형성하는 스타일은 만들어진다. 이 법칙은 만화에도 적용되는데, 필자는 만화를 선택할때 그림체를 보고 1초만에 판단한다. 이 방법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80프로 정도의 확률로 맞다.
선이 굵은 만화는 대개 재미가 있다. 선이 굵다는 것은 바람이 팽팽하게 들어가 있다는 말이다. 김명국의 달마도와 땡중들이 그리는 엉터리 달마도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김명국의 달마도는 선의 굵기가 일정하다. 땡중들의 가짜 달마도는 굵은 선과 가는 선이 공존한다. 이게 바람이 빠진 것이다. 스타일이란 원래 철필을 뜻한다. 쇠처럼 단단해야 한다.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면 쇠가 아니라 고무다. 에너지가 다 새어나가 버린다. 이건 뭐 옷입는 것과도 비슷하다. 옷 색깔이 매치가 되어야 한다. 피부색깔과도 조화되어야 한다. 하나의 톤으로 일관되게 밀어붙여야 한다.
만화든 연기든 먼저 큰 분노를 얻어 바람을 빵빵하게 집어넣고, 김을 팽팽하게 채워서, 김 빠진 콜라나 사이다가 되지 않게 해놓고, 초밥에다 고추냉이를 왕창 발라놓고, 극의 흐름에 따라 그 김의 강약을 조절하며 거기서 온갖 고저장단의 리듬과 멜로디와 화음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김을 집어넣지 않으면 만사휴의다. 애초에 강렬하게 가지 않으면 강약을 조절할 수가 없다. 이건 뭐 이야기가 안 되는 거다.
김용옥 강의하듯 감정을 실어야 명강의가 된다. 김용옥 표정으로 말하자면 자신만이 아는 도(道)를 대중이 몰라주니 화가 나고 부아가 치밀어 미치고 폴짝 뛰겠다는 얼굴표정이다. 김어준이 말끝마다 ‘졸라~ 씨바~’ 하는 것도 감정을 실어야 말이 술술 나와주기 때문이고, 김병만이 류담과 댓거리하며 구수한 전주사투리로 능청떠는 것도 그렇다. 판소리의 소리꾼과 고수가 추임새를 주고받는 것과 같다. 그 안에 팽팽한 긴장이 있다.
서태지는 언제인가부터 김이 빠져버렸다. 분노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매운탕이 되어버렸다. 교실이데아를 부를 때는 분명히 김이 가득차 있었다. 분기탱천해 있었다. 에너지가 가득차 있었다. 세상을 한 바탕 뒤집어 엎을 기세였다. 철원 노동당사에서 발해를 꿈꾸며를 부를 때가 아마 인간 서태지 드라마의 정점이 아니었나 싶다. 컴백홈을 부르면서 슬슬 약해지더니.. 그러나 큰 돈을 벌고 배가 불렀는지, 외계인 타령 하면서 스스로 지구를 떠나 있었다. 환상 속의 그대는 현실 속으로 떠나버렸다. 삼베 바지 방귀 새듯 슬그머니 사그라져 버렸다.
비틀즈가 let it be를 내놓았을 때 폴 매카트니는 앨범 이름을 ‘Get Back’으로 하자고 했는데 존 레넌이 맹렬히 반대했다고 한다. 그때 비틀즈는 이미 분열되어 있었고, 그들은 바다거북이와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중에서 누가 더 빠른지 궁금해 하던 영화 친구의 세 꼬마들처럼 집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와 있었다. 불길한 조짐을 느낀 폴 매카트니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Get Back을 주장했고 존 레넌은 이를 거부하고 오노 요꼬와 함께 바다거북이를 찾아 폭주해 버렸다. 서태지는 폴 메카트니의 착실한 제자가 되어 얌전하게 컴백홈 하더니 점점 작아져서 지구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런 류의 용두사미식 혹은 롤러코스터식 흥망의 드라마는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마이클 잭슨까지 익숙한 패턴이다. 그들은 너무 일찍 성공했고,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외로웠으며, 그리고 적당한 구조의 포지션들을 얻지 못했다. 결론은 구조다. 팀이 갖추어져야 하고, 세력을 얻어야 하며, 점점 커나가야 한다. 필자의 생장구조이론에 따라 성장이 멈추면 반드시 죽는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
그 반대의 인간유형도 있다. 김태원이나 조영남류다. 조영남은 특유의 빌빌거림에도 불구하고 잡초같이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진작에 바닥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뭔가 한 밑천 꿍쳐놓은 인간처럼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근래에 밝혀졌다. 바로 세시봉 멤버들이다. 조영남은 과거 사생활이나 팔아먹고 연명하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지만 인복이 많았는지 어쨌는지 그 주변에는 확실히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거 믿고 버티는 거다.
김태원은 탁월하다. 100에 이르러야 빅뱅이 일어난다면 98을 갖추어 놓고도 2가 부족해서 바닥을 기는 인간도 있고, 2밖에 가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98을 가진 팀에 들어가서 그 부족한 2를 채워넣는 방법으로 큰 성공을 얻은 사람도 있다. 98을 갖추었지만 2가 부족한 사람이 김태원이고, 그 2를 채워넣은 사람은 이승철이다. 둘은 환상의 궁합이었지만 이승철이 홀로 영광을 독식했기 때문에 틀어졌다. 이승철은 2밖에 없었기 때문에 에너지가 고갈되었고, 김태원은 아직 화가 나 있다. 에너지가 있다는 말이다. 분기탱천해 있다.
히딩크의 어법을 빌린다면 김태원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15년간 만두만 먹은 오대수처럼 화가 잔뜩 나 있다. 아니 화가 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달관해 있다. 화를 속으로 삭이고 삭이다가 그 화가 발효가 되어 명품 고량주가 되었는데 알콜도수가 매우 높다. 화끈하다. 그는 여전히 살아있는 화산이다. 때로 멋진 폭발을 일으킨다.
결론은 에너지가 있느냐다. 에너지는 세상과 각을 세움으로써 얻어지는 법이며 세상을 상대로 화를 내는 것이며 그리고 모든 것을 뒤집어 엎는 것이다. 그러나 팀이 있어야 한다. 세력을 갖추어야 한다. 독불장군은 오래 가지 못한다. 조영남은 세시봉 세력에 똥파리처럼 빌붙어서 잘도 연명하고 있다. 김태원은 스스로 세력을 만들었다. 그는 스스로 스승이 되어 가고 있다.
김완선은 고립되어 세력을 잃고 오래 고통받았다. 서태지는 100만 팬들을 거느리며 스스로 세력을 자랑했으나 그 중간고리가 없었다. 서태지는 스승이 되지 못한 것이다. 100만 팬은 소용이 없다. 결국은 스승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세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며, 시스템 안에서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00만 팬들과 스타 사이에서 중간고리 역할을 할 팀이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받쳐주는 그룹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가지를 쳐나가야 한다.
스타와 100만 팬 사이에 중간고리가 없다는 것은, 말하자면 구조의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질과 양만 있고 그 중간의 입자와 힘과 운동이 없는 것과 같다. 구조는 각 포지션들이 완전히 갖추어져야 한다. 너무 일찍 성공하면 그 중간 포지션들을 고루 갖추지 못하므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스타가 너무 일찍 성공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갖추어 놓은 98에 서태지가 2를 추가하여 빅뱅을 일으켜 놓고 백퍼센트 자신의 업적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비틀즈도 마찬가지다. 60년대는 학생혁명의 시대이고 전복의 시대였다. 그 시대의 98에 비틀즈가 2를 추가하여 꽃을 피운 것이다. 서태지 역시 민주화라는 대한민국의 에너지 흐름에 편승한 것이다. 그 모든 에너지가 서태지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은 전혀 아니다.
심형래는 많은 팬들이 있었지만 보여줄 수 있는 카드는 이제 다 나온 느낌이다. 그는 스승이 되고 싶었지만 현재스코어로는 실패다. 100만 팬은 소용이 없다. 단 한 명이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진짜배기 친구가 있어야 한다. 진짜 자기편이 필요한 거다. 그러려면 막연한 출세욕, 막연한 성공욕심, 막연한 거들먹거림을 버려야 한다. 서세원 역시 스승이 되고 싶어서 엉터리 영화를 몇 편 만들었겠지만 욕심에 불과하다. 진짜배기 분노가 있어야 한다. 배가 고파야 한다. 이경규식의 배부른 거들먹거림은 곤란하다. 이경규는 뱃살부터 빼야 한다.
서태지를 비판할 필요는 없다. 서태지가 좇던 환상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꾸던 꿈과 같고, 마이클 잭슨의 피터팬 증후군과 같고, 존 레넌의 폭주와 같다. 존 레넌은 죽었고 서태지는 아직 살아있다. 만약 서태지 곁에 오노 요꼬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서태지 역시 존 레넌처럼 폭주했을지 모른다. 스스로 제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여 폭주하다가 꽝 터져버리거나, 아니면 겸손하게 컴백홈 하고 자제하며 이미지관리 잘 하고 신비주의 놀음 잘 하다가 점점 작아져서 형체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거나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서태지를 나무랄 수는 없다.
어쨌든 지금 김태원은 그 반대편에서 잡초처럼 살아남았다. 칼라하리 사막의 아카시아처럼 메마른 땅에 깊은 뿌리를 내리웠다. 그 에너지를 간직한 채로. 이문열처럼 조로하지 않고, 김훈처럼 바보되지 않고, 이외수처럼 영혼이 펄펄 살아있다. 기,승,전,결로 이어가며 드라마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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