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이야기

IQ지수는 편협하고 EQ니 다중지능이니 하는 것은 허무하다. 인간의 지적능력은 일정부분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더하여 유년기에 두뇌 안에서 영역들 간의 경쟁에 의해 계발되고, 그 촉은 소년기에 입체적 모형을 형성하면서 활성화 된다. 높은 레벨에 있어서는 차차로 개념을 잡아나가면서 일생동안 모형이 건축된다. 그 최고 단계의 능력은 자기 재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능을 흡수하게 한다.

최고의 교육은 그 모형을 타인과 공유하게 함으로써 이심전심 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럴 때 타인의 능력이 곧 나의 능력으로 된다. 타인과 좋은 팀을 형성함으로써 집단 안에서 포지션을 얻고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이는 대인관계가 아니다. 말 한 마디 못해도 팀 안에서 자기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다.

가장 좋은 교육은 첫째 소수의 영재 자원을 뽑아 최고의 팀을 구성하게 하는 것이며, 둘째 그 팀이 이룬 성과를 재빨리 다수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리가 가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뛰어난 리더가 있어야 한다. 리더를 선출하려면 대칭구조를 만들고 긴장을 불어넣어 저절로 질서가 형성되게 해야 한다. 혼돈스런 무질서의 장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질서를 끌어내는 것이다.그러려면 획일적인 질서를 강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질서의 장을 연출해놓고 그 무질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소하게 해야 한다.

좋은 팀의 구성과 그 성과의 전파는 주입식 교육이나 강제로는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후진국이 낮은 레벨의 목표를 세웠을 때다. 그 방법으로는 꼴찌를 중간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뿐이다.

팀 구성과 성과의 전파는 기승전결의 구조 안에서 각자 자기 포지션을 찾아가게 하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성의 존중이 절대적이다. 만약 획일화된 교육을 시킬 경우 포지션이 겹쳐서 서로 충돌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두 공격수만 되려고 하거나 혹은 다들 수비수만 맡으려고 하면 팀이 구성되지 않아 성과가 전파되지 않는다. 서울에서 이루어진 성과가 지방으로 전달되지 않고, 지방에서 이루어진 성과가 서울로 전파되지 않는다.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이 보수적인 노동자 계급을 설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할을 나누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로 떠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소통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포지션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지식인 집단이 스스로 다양성을 잃고 획일화 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식이 현장의 체험으로부터 유도되지 않고 강단에서 손쉽게 복제되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지식이 아니라 죽은 지식, 가짜 지식이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노동자 계급을 탓할 일이 아니라 지식인 집단이 노동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다양성있는 팀 구성에 실패했음을 자인해야 한다.

한국의 미래는 오직 우리가 좋은 팀을 구성하고 공동체의 구성원 각자에게 포지션을 잘 분배하여 얻은 성과를 얼마나 잘 전파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현장에서 교육 에너지는 터무니없이 낭비되고 있다. 터무니없이 지출되는 학비부담과 너무 많은 학습시간에 비해 학습효과는 최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이 일정부분 기능하는 것은 무언가를 많이 가르쳐서도 아니고 잘 가르쳐서도 아니다. 한국사회가 본래 타인의 성공을 잘 전파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정보전달 속도, 의사결정 속도가 빠른 사회이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교육의 내용은 신통치 않지만 외적으로 교육의 형식은 상당부분 진보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부가 잘해서가 아니라 유교주의 전통에 따라 사회전체가 유기적으로 잘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측면에서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다. 기승전결 구조의 기(起)가 잘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승, 전, 결로 전개하면서 망가지고 만다. 그러므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다. 비유하면 도로는 잘 포장되어 있는데 자동차이 성능이 나빠서 연료가 낭비되고 있는 격이다.

새로운 교육을 해야 한다. 그것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얻는 교육이다. 학생을 고생시키지 않고 성과를 이뤄내는 교육이다. 막연하게 학생의 머리 속에 주입하려 할 것이 아니라 학생집단 안에 좋은 팀을 형성하게 함으로써 한 사람의 성과가 나머지 전원에게 재빨리 전파되게 하는 것이다. 최고의 정보전달 속도, 의사결정 속도를 끌어낼 때 최고의 교육이 되는 것이며 이는 다양성을 존중하여 각자의 포지션을 잘 배분하게 함으로써 가능하다.

다른건 몰라도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블랙데이니, 빼빼로데이니 하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 저절로 일어나 순식간에 전국에 전파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게임들 안에 각자의 역할이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인간의 두뇌는 민감하게 반응하여 최고의 효율을 끌어내게 된다. 이러한 정보전달 원리, 의사소통 원리, 의사결정 원리에 맞게 공동체의 구조를 세팅할 때 교육효과는 최고가 된다. 낮은 교육비와 적은 교육시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성적을 끌어낸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61퍼센트에 이르렀다. 일본의 46퍼센트보다 높고 독일의 34퍼센트보다 높다. 그들이 대학에 가서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영어나 수학 따위를 배워서 제대로 써먹는 비율은 많아야 10프로에 불과하다. 전공분야의 지식을 써먹는 비율도 매우 낮다. 나머지 절대 다수는? 대개 전공과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을 다녀서 얻은 것은? 그 중에 누구 하나라도 성공하면 그 성공을 자신에게로 가져올 수 있는 포지션이다. 이것이 교육의 진짜 목적이다. 누구 한 사람이 좋은 지혜를 얻어도 사회에 가로막는 장벽이 생겨나 그것이 다수에게 전파되지 않으면 그 교육은 죽은 교육이 된다.

교육의 본질은 공동체 안에서의 의사소통능력, 의사결정능력, 정보전달속도, 의사결정속도에 있으며 이는 머리 속에 무언가를 집어넣음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 역할을 나누고 이심전심의 손발을 맞추는 데서 얻어진다. 이는 사교육 학원의 책상머리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에서의 야구놀이에서 더 크게 얻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전에 사회 전체의 질이 우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는 좋은 사회라면 설사 나쁜 교육을 한다해도 상당한 효과가 나게 되어 있다.

교육은 물과 같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그 형체가 결정된다. 한국사회라는 그릇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교육효과는 상당부분 좌우된다. 어차피 인생에서 배울 것의 대부분은 학교에서가 아니라 학교 바깥의 사회에서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 최고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교육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사회는 좋은 사회인가? 그 어느 나라보다 의사결정속도, 정보소통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좋은 사회가 될 자질은 우수하게 갖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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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1-04-2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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