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기사 참고

중요한건 과학적 태도다. 과학적 태도는 두 눈을 치켜 뜨고 작은 빈틈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며 철저하게 감시하는 태도이다. 의심할건 다 의심해야 한다. 대충 눙치고 넘어갈 수는 없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따질건 확실히 따져야 한다. 의심하지 않고 어떤 주류의 흐름에 대충 묻어가겠다면 곤란하다.

문제는 과학의 성과가 사회의 정치, 윤리, 도덕과 충돌하는 경우이다. 그럴 때도 과학은 그 정치를 뛰어넘어야 한다. 진화론의 예가 대표적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자 곧 스펜스의 사회진화론이 나왔다. 사회진화론은 나치의 더러운 인종차별을 진화론으로 뒷받침하려 한 것이다. 쓰레기들이 과학적 성과를 이런 식으로 악용한 예는 매우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진보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과학의 모순을 해결하는 수단 역시 과학 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핵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핵문제는 저온 핵융합 등 더 안전한 핵에 의해 극복될 수 있을 뿐이다. 인류는 결국 핵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풍력단지를 조성하고 태양열을 이용할 수 있지만, 단지 시간을 버는 정도의 미봉책에 불과하다. 과학이 만든 문제는 과학의 힘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류가 진보하는 법칙이다. 시행착오가 없을 수는 없다. 인류는 과학 때문에 앞으로도 더 많은 재앙을 만날 것이며, 역시 모두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다.

과학의 역사는 사회의 통념과 싸워온 역사다. 그 통념은 합리주의, 계몽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때로는 상식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있다. 계몽사상가들이 상식을 주장하며 순회판사제도 등 근대적인 재판제도를 악용하여 합리적(?)으로 마녀사냥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

끔찍했던 마녀사냥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쿠텐베르크다. 그가 금속활자를 발명하자 ‘마녀를 감별하는 32가지 방법’ 등의 악서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이다. 일부 쓰레기 계몽사상가들은 카톨릭을 공격하는 방법으로 카톨릭교회도 어쩌지 못하는 마녀의 존재를 이용했던 것이다. ‘벌건 대낮에 마녀가 활보하고 있는데 카톨릭은 도대체 무엇하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는 식이다. 그 악당들 중의 일부는 세기적인 위인으로 평가되어 아직도 크나큰 존경을 받고 있다.

과학의 진보는 기존질서를 뒤흔들면서 굉장히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를 일으켰다. 인류는 그 혼란과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진보가 있었던 것이다. 과학은 때로 커대란 재앙이며 재앙으로 재앙을 돌려막기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만약 저온핵융합이 개발된다면 인류는 에너지난을 해결할 수 있지만 도리어 그것이 더 큰 재앙을 부를 수도 있다. 사악한 독재자가 저온핵융합의 무한한 힘을 손에 쥔다면? 그 무한히 남는 에너지로 아주 지구에 구멍을 내놓을 수도 있다. 남아도는 에너지로 남극에서 북극까지 뚫어서 맞창을 내버릴 수도 있다. 그 에너지가 없는 지금도 한일해저터널을 뚫자는둥,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해저로 뚫자는둥, 인천에서 산둥반도까지 연결하자는둥 뻘짓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는 판이다. 그런 쓸데없는 짓 하고싶어서 안달이 난 존재가 인간이다.

인류가 저온핵융합을 손에 넣는다면 결국 그런 쓸데없는 짓을 무수히 해서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 분명하지만 인류는 그 길을 가야 한다. 왜? 큰 위험의 존재에 의해서만 인류는 그 큰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해커와 보안업체의 경쟁처럼 인간은 뻘짓과 그 뻘짓을 통제할 수 있는 의사결정능력을 경쟁시켜왔다. 인류의 진보는 뻘짓의 레벨을 높여왔으며 동시에 그 뻘짓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의 힘을 증대시켜 왔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감추어진 예 중의 하나가 혈액형에 대한 것이다. ‘인류는 평등하다’는 통념과 상식과 계몽으로 억눌러 진실을 은폐하려 한 것이다. 서양 것들이야 그렇다치고 후발주자인 우리가 눈치보고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이 두려워하며 손대지 않고 있는 것을 찾아내고 파헤쳐야 한다.

필자는 수년 안에 혹은 늦어도 십년 안에 혈액형 연구에 중대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 단서는 이미 확보되었고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문제만 남았다. 정치적으로 물타기 하면 안 되고 어디까지나 과학가의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남녀는 평등하다. 그러나 남녀의 성격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심지어는 남자어와 여자어의 차이도 존재한다. 언어를 쓰는 방식 자체에 차이가 있다. 뇌 자체가 다르다.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남녀의 성격차를, 남녀간에 우열이 있다는 것으로 착각하고, 혹은 성격차의 존재가 남녀가 불평등하다는 논리로 발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진실을 은폐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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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과학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윤정미 씨의 사진 작업’핑크 & 블루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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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mp/gnuPcg - 윤정미 씨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

대부분의 남자어린이는 핑크색을 싫어하고 파란색을 좋아한다. 최근에 핑크색이 유행하는 조짐인데 이는 여성들의 발언권이 세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파란색을 쓰는 것은 남성우월주의 산물이다. 과거 유시민의 시민광장이 한 동안 핑크색을 썼던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우월함과 열등함으로 보는 저급한 시선을 버려야 한다. 다양성의 존재로 긍정해야 한다. 남녀간의 선천적인 뇌구조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잘못된 교육 때문에 지난 30년간 서구의 교육계가 큰 혼란을 겪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성차별 편견에 대한 방어논리로 기능해 왔지만 비과학이다. 인간을 해치는 것은 무지다. 어떤 이유로도 무지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성격차는 남녀간에도 있고 노소간에도 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겠는가? 유전자? 천만에. 상당부분 호르몬에서 나오는 것이다. 갱년기가 되어 호르몬 분비가 변하면 성격이 변한다. 이건 이미 입증되었다. 누가 부정하겠는가?

이 기사 ( )는 유전자가 전적으로 성격을 결정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백퍼센트 거짓말이다. 성격은 상당부분 호르몬이 결정한다. 유전자는 그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혈액형이란 적혈구에 단백질이 하나 더 붙은 것이다. 어찌 그 단백질이 호르몬의 역할을 하지 않겠는가? 호르몬은 그냥 자연의 물질이다. 인공적으로 합성되기도 한다. 환경호르몬도 있다.

인간의 마음이 전적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발상이 틀린 것이다. 멀쩡한 남자도 특정 호르몬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성격이 변한다.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 수컷이 암컷 흉내를 내고 난리가 난다. 동물이 발정기가 되면 왜 지랄염병을 하겠는가? 그게 호르몬이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고양이가 왜 집을 나가겠는가? 왜 고양이의 성격이 변했겠는가? 새끼를 낳은 암컷은 매우 난폭해진다. 왜 착한 동물이 갑자기 성격이 바뀌었겠는가? 호르몬은 성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호르몬 분비가 잘못되거나 하면 어미가 새끼를 돌보지 않고 버린다. 새끼가 다 자라면 어미가 새끼를 쫒아낸다. 성격이 바뀐 것이다.

유전자? 웃기지 마시라. 그렇다면 위 링크한 신문기사의 기자와 대담자는 왜 성격을 절대적으로 결정하는 호르몬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엉뚱하게 유전자 타령을 할까? 그것은 독자를 속이려는 의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성격을 호르몬이 결정한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안다. 화장실에서 수음하는 중학생은 사정하기 1초전과 1초후의 기분이 완전히 다르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마음이 변한다. 1초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게 호르몬 작용이다.

호르몬 뿐 아니다. 술도 성격을 변하게 한다. 술 마시면 개 되는 사람 있다. 일시적으로 사람의 성격이 변한 것이다. 사랑에 빠져도 분명히 성격이 변한다.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도 사랑 앞에서는 목숨 걸고 적극적이 된다. 성격은 굉장히 많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햇볕이 비치지 않으면 우울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겨울이 긴 북유럽에 겨울동안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자와 알콜중독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적혈구에 붙은 단백질 하나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성격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미신은 오래전에 깨어졌는데도 과학자들의 묵시적 담합에 의해 잘못된 정보가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왜? 또 하나의 인간차별 무기가 생겨날까봐 두려워서. 그러나 틀렸다. 이제는 정보를 감출 수 없다.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혈액형 연구를 더 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수준을 높여야 한다.

혈액형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 과학이 정보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양의학이 환자를 못 고치면 엉터리 민간요법이 나타난다. 마찬가지다. 과학이 명백한 사실을 숨기면 거짓 정보가 유통된다.

60년대에 어떤 대학교수가 실험한다며 멀쩡한 남자아이에게 여자옷을 입혀서 키우는 학대를 저질렀다. 거짓 보고를 계속해서 나중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당시 그 교수는 조작된 논문으로 상도 받고 그랬다. 사회의 유행에 아부하는 거짓 학문을 한 것이다. 거짓 학문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도 여럿이다.

남자와 여자는 선천적 차이가 없으므로 남자아이도 여자옷을 입고 여자와 함께 생활하면 여자성격이 된다고 그 사이비 학자는 주장했던 것이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로 밝혀졌다. 남자는 절대 여자가 안 된다. 물론 동성애자는 예외다.

혈액형에 따른 차이가 없다는 편견은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마찬가지의 완전한 편견이다. 동성애자도 여러 유형이 있다. 모든 게이가 하리수는 아니라는 말이다. 아주 복잡하다. 이런 부분은 엄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학생 때 자기 키만한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남학생을 닥치는대로 패고 다니는 폭력선생이 있었다. 그는 외면적으로는 마초의 전형이었다. 너무나 남자다웠던 것이다. 어느날 그 자가 남학생의 뺨을 깨물어 이빨자국을 내놓고 신체를 더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소한 복장의 잘못을 트집잡아 학생들을 패곤 했는데 그가 느끼는 것을 필자는 목격한 것이다. 이런건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정확히 알기 어렵다. 편견을 가지고 단순화 하면 곤란하다.

혈액형에 대한 접근도 이런 복잡한 사정을 감안해고 정밀하게 현미경을 들이대야 한다. 무조건 흑백논리 식으로 인류는 평등하므로 성격도 다 똑같다거나, 남자 동성애자는 다 하리수 스타일이다거나 하는 식이면 곤란하다. 용인대 체대에서 구타와 폭력이 난무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 안에 남자와 물리적으로 접촉하면서 느끼는 인간이 숨어 있을 수도 있고, 극소수의 느끼는 인간이 그러한 폭력을 주도하였을 수도 있다. 우리의 통념이나 상식과는 완전히 반대일 수도 있다. 상식을 의심해야 한다. 상식을 깨뜨려온 역사가 과학의 역사다.

흔히 바넘효과로 물타기 하지만 바넘효과는 균일하게 나타난다. 바넘효과는 O형만 어떻다거나, A형만 어떻다거나, B형만 어떻다거나 하는 식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 O형이 어떻다 하고 바넘효과를 들이대면 그 반대 증거로 바넘효과를 들이대는 사람이 확률에 의해 반드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서로 희석되어 점점 평균이 되어 버린다.

혈액형 연구를 비판하는 사람이 많이 주장하는 것이 왜 인간의 복잡한 성격을 넷으로 설명하려 하느냐다. 그런데 아들러와 융은 왜 내향향, 외향형 둘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 성격이 복잡한데 왜 둘 뿐이냐다. 이건 더 말이 안 되는 거다.

중요한건 논리다. 논리란 대칭성이다. 아들러와 융이 성격을 단 둘로 구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으로 인정되는 것은 그 안에 대칭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칭구조가 있으면 진짜고 없으면 가짜다. 이런건 1초만에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2초를 생각한다면 좀 모르는 아저씨라 하겠다.

내향과 외향 사이에는 분명한 대칭성이 있다. 즉 인과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지난번에 필자가 비판한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의 엉터리 분류와 다르게 합법칙성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들러와 융이 성격을 둘로 나누었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대칭성으로 나눈 것이며 성격을 구분하는 잣대는 어디까지나 하나인 것이다. 이게 정답이다. 혈액형은 넷이지만 이론적으로는 A형과 B형 둘 뿐이다. 이 둘의 성격이 충돌할 뿐이며 나머지는 의미없다. O형은 항원이 없고 실제로 A형이나 B형과 충돌하지 않는다. AB형은 A와 B 둘 다 나타낸다. 대칭성을 기준으로 판별해야 하며 혈액형에 대칭성이 있으므로 이론이 되고 과학적인 입지가 있는 것이다.

바넘효과에는 대칭성이 적용될 수 없다. 과학이냐 비과학이냐 바넘효과나 진짜배기냐는 대칭성의 존재여부로 1초만에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흔히 남자는 B형이 문제로 되고, 여자는 AB형이 문제로 된다. 즉 B형 여자와 AB형 남자는 그다지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만약 바넘효과라면 균일하게 나타나야 하므로 B형 남자와 B형 여자가 같게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남자는 AB형 여자를 싫어하는 비율이 높고, 여자는 B형 남자를 싫어하는 비율이 높다.

AB형은 매우 드물다. 남자가 AB형 여자를 싫어하려면 최소한 열명의 여자를 만나봐야 한다. 열 명의 여자를 만나야 한 명의 AB형 여자를 만날 수 있다. 이건 뭐 바넘효과에 따른 통념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도대체 AB형 여자를 만나보기나 했냐 말이다.

이 현상은 AB형은 천재 아니면 바보라는 속설과 관계가 있다. 남자는 일관된 B형 여자에게 불만이 없고 모호한 AB형에 불만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남자의 불만은 실제로는 모든 여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남자는 AB형 여자에게만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세상 모든 여자의 변덕에 불만이 있는 것이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말은 혈액형 개념이 등장하기 수 천년 전부터 있어왔다. 남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자의 변덕에 골머리를 앓아온 것이며, 그 골머리를 AB형 여자가 심화시켰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AB형 여자를 논하기 전에 먼저 남자가 여자의 변덕에 골머리를 앓아왔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로 삼아야 한다. 남자는 왜?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데이트 하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가진 공통된 불만은 모호함이다. 이는 여자어와 남자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여자는 데이트 장소에 늦게 와서 도리어 화를 내는 경향이 있는데, 그때 남자가 ‘괜찮아’하고 무마하려 하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여자어를 안다면 이건 당연한 건데, 남자는 눈치가 꽝이므로 모르고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이며, 자신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남자어는 문제의 해결 형태로 되어 있고, 여자어는 공감의 유도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화를 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을 겨냥하고 있다. 이런건 영화에도 드라마에도 흔히 나오는 거다. 다음 아고라에 무수히 올려져 있다. 남자들이 다투어 그 잘못된 에피소드에 공감하며 추천을 날린다. 만화에도 곧잘 나온다. 그 만화의 작가는 물론 모두 남자이며 여자의 변덕에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아니! 지가 늦어놓고 왜 지가 화를 내?”, “내가 괜찮다고 그만큼 이야기를 했는데도?”

남자와 여자는 언어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화가 불통이다. 소통되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의 행동을 전혀 이해못하며, 그 때문에 비교적 일관된 신호를 보내는 B형 여자에게 불만이 덜한 것이다. 중요한 점은 혈액형에 따른 남녀간의 선호도 차이는 남자어와 여자어의 차이에 따른 소통의 불통경향과 완전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게 과학이다. 바넘효과라면 이러한 대칭성과 일치가 나타날 수 없다. 겉으로는 소심하니 바람둥이니 이렇게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남녀간 의사소통의 막힘이 원인인 것이다. 남자어와 여자어의 언어차이 때문에 혈액형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통념이 더 증폭된 것이다.

데이트 장소에 늦은 여자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화를 내는 것은 여자가 늦게 오는 도중에 느꼈던 심리적 고통을 남자가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것인데, 즉 남자가 여자의 마음 안으로 들어와주기를 바라는 것인데, 남자어는 문제해결 위주로 되어 있으므로 공감은 커녕, 이미 해결된 문제를 왜 자꾸 거론하느냐는 식으로 나오므로 대화가 막힌 것이다.

흔히 나오는 에피소드는 피자집이라도 가서 메뉴를 선택해야 하는데 여자가 교묘하게 선택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남자, ‘아무거나 먹자.’ 여자, ‘다이어트 등 이런 저런 이유로 그건 안돼’ 남자, ‘그럼 먹지 말자’ 여자 ‘그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안돼.’ 남자 ‘그럼 어쩌라구?’ 남자는 식사를 해치워야 할 목표로 여기지만 여자는 남자와 같은 공간에 머무르며 대화하는 그 자체를 즐긴다. 여자의 관심은 남자와 자신이 대화에서 아귀가 척척 들어맞아 주는가에 있다. 그러한 대화의 궁합이 맞는가에 있다. 그러나 남자의 관심은 오직 식사문제해결에 있으므로 애초에 빗나가버린 것이다. 여자는 남자가 무조건 맞장구쳐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약속장소에 늦게 온 여자가 도리어 화를 내도, 그렇게 늦게 만나게 됨으로써 소중한 데이트 시간 몇 십분을 날려먹은 사실 자체가 매우 화날 만한, 그야말로 안타까운 사건이라는 점에 공감해 주어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남자는 그 정도로 복잡한 이치를 알아먹을 아이큐가 안 된다.

남자어와 여자어의 차이는 아주 오래 전에 금성남자와 화성여자라는 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청춘남녀들은 언어차이로 골머리를 앓으며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다. 이런 진짜 정보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결론적으로

  • 성격은 유전자가 아니라 호르몬이다.
  • 호르몬 외에도 굉장히 많은 자연의 물질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 적혈구에 붙은 단백질 하나가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바넘효과는 균일하게 나타나며 구조적 대칭성을 가지지 않는다.
  • 혈액형 성격론은 A형과 B형 사이에 구조적 대칭성을 가지므로 과학이다.
  • 남녀평등 구호로 과학적 진실을 왜곡한 예는 수도없이 많다.
  • 남녀평등 구호 때문에 남자어와 여자어의 분명한 차이가 규명되지 않아 인간들 사이에 편견과 장벽이 더 높아졌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수준은 낮아졌다.
  • 남자뇌와 여자뇌가 호르몬 작용에 의해 다르다는 사실도 최근에 규명되었다.
  • 혈액형 성격론은 네가지 혈액형으로 성격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오직 A형과 B형의 구조적 대칭성 하나로 규명된다.
  • 소심하다든가 바람둥이라든가 하는 혈액형에 대한 잘못된 통념은 남자어와 여자어의 차이와 같은 남녀간 의사소통의 장벽 때문에 편견이 더욱 강화된 것으로 역시 과학적 해체로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 통계학적으로는 이미 입증되었고 해부학적으로는 조만간 입증될 것이다.

천동설도 갈릴레이 이전에는 굉장한 과학이었다. 이거 알아야 한다. 그 안에 굉장히 복잡한 논리가 들어있다. 그냥 마구잡이로 천동설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모형을 만들어놓고 여러 단서를 수집하여 수학적으로 하나하나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다 억지로 꿰어다 맞춘 것이다. 실제로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면 천동설이 맞다는 증거가 더 많이 나온다. 다만 다른 것은 지동설은 전부 설명할 수 있는 대신 근본적으로 설명불가능한 것이 있고, 천동설은 근본적으로 설명되는데 지엽적으로 설명 안 되는게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 지엽적인 여러가지 작은 설명들이 중요할까 아니면 근본적인 큰 틀에서의 설명이 중요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본적인 설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함정이다. 움직일 수 없는 작은 단서가 더 중요한 예가 무수히 많다.

살인사건이 났다고 치자. 살인동기는? 정황은? 이런 근본적인 것으로 입증하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작은 담배꽁초 하나가 결정적 증거가 된다. 이때 사람들이 오판하는 것이다. 저 자는 워낙 가난뱅이고, 평소에 부자를 죽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고, 얼굴 생긴것부터 때려죽일 넘이 분명한데 보나마나 살인자가 아니냐는 식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살인사건은 어디까지나 살인사건인데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이라는 근본적인 틀 안에 집어넣어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범위를 좁혀야 한다. 사회의 모순과 무관하게 그냥 살인이다. 혈액형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불평등이라는 본질문제와 연결시키면 곤란하다. 이거 자본주의 탓 아니다. 개별적인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환원주의야말로 버려야 할 비과학적 태도이다. 사소한 혈액형 문제를 인류의 불평등 문제로 환원시켜 접근하는 태도가 합리주의 철학자들이 예로부터 비판해온 환원주의다.

지동설이 맞다면? 지구가 둥글다면? 이건 근본적인 곤란을 야기한다. 무엇인가? 만유인력이 나오지 않으면 결코 지동설을 납득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러므로 만유인력을 먼저 설명하고 나중 지동설이 나와야 이치에 맞다. 그런데 갈릴레이 당시에는 만유인력 개념이 없었으므로, 지동설은 근본적인 난점이 있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근본적인 점을 중시하므로 오판하게 되는 것이다. 눈꼽만큼 작은 사실이라도 백퍼센트 확실한 것을 들고와야 한다. 그래야 말이 된다.

지동설은 사실 갈릴레이 이전 수 천년 전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장벽 때문에 먹히지 않아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고 이에 정교하게 조직된 천동설이 나왔던 것이다. 당시에는 천동설이 과학으로 보였다.

근본적인 것은 모형이다. 모형부터 먼저 제시해야 한다. 모형은 갈릴레이가 아니라 뉴턴이 만들었다. 뉴턴의 만유인력이 나와주니까 누구라도 지동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천문학자와 수학자들이 자기들끼리 짜고치는거 아니냐는 의심을 뿌리칠 수 없었던 거다.

혈액형 이해도 중요한건 모형이다. 모형은 대칭구조다. 대칭구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 그냥 경험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대칭구조에는 바넘효과가 먹히지 않는다.

21세기 이 문명화된 시대에.. 남녀간에 뇌의 차이는 없다거나, 혈액형 성격론은 가짜라거나 하는 이런 엉터리 주장이 활개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만한 것이다. 강단 중심의 학계 시스템이 엉터리란 말이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강단학계 바깥에서 새로운 기승전결의 에너지 흐름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기존의 시스템을 완전히 무시하고.

왜 이런걸 쓰느냐고? 이거 입증되면 구조론의 명성이 올라갈테니까. 미리 입증할 단서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PS.. 파란색 물체가 예닐곱개쯤 있는그림을 1초간 보여주었다가 그림을 치운 다음 ‘그림 속의 물체가 몇개냐?’고 물으면 남자아이는 대부분 정확한 답을 낸다. 핑크색 물체가 있는 그림을 보여주고 ‘몇개냐?’고 물으면 정확히 대답하는 비율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런 실험을 과학자들은 절대 안 한다. 왜? 곤란한 질문을 당할테니까.

http://gujoro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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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1-04-2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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