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에 리플로 쓰다가 길어져서 별도로 씁니다-
wson /
말씀은 감사하나 불필요합니다.
이런 식의 이의제기는 이곳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곳은 구조론 사이트입니다. 구조론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맞습니다.
예컨대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역사기술에 있어서의 원칙을 정해서 썼는데 그 이전에도 역사가 있었지만 개판이었죠. 사마천이 ‘역사를 이런 식으로 쓰면 안 되잖냐. 하고 이의를 제기하는데, ‘사마천씨 당신이 몰라서 그러는데 원래 역사 이렇게 해 왔어. 다들 이렇게 한다니까!’ 하고 반격하면 대화가 안 되는 거지요.
뭐 애초에 논점이 다르니까요. 근데 누가 이길까요?
모든 기득권 엉터리 역사학자들이 사마천을 무시해 버리면 사마천이 지겠죠. 그러나 이기고 지는 걸로 판정을 내려야 하는 걸까요?
제가 기존의 과학이 틀렸다고 하는 것은, ‘대체재가 있다’는 전제 하에 말하는 것이며, 대체재도 없는 사람이 그런 말 하면 안 되죠.
한의사들이 잘 치료하고 있는데, 대체재도 없는 무당이 와서 ‘당신네 한의사들 과학적 이론도 없이 개판이잖아. 음양오행 좋아하시네.’ 하고 시비하면 안 되죠. 그러나 대체재가 있는 양의사가 와서, ‘한의사 당신들 개판이잖아. 음양오행 그거 웃겼어.’ 하고 시비할 자격 있습니다.
결론은 이런 문제에 대한 판단은 대체재가 있느냐, 즉 대채제의 가치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는 겁니다. 구조론을 중심으로 논해야 한다는 거죠.
◎ 양의사 - ‘한의학은 엉터립니다.’
◎ 한의사 - ‘당신 한의 해봤어? 한의 해보지도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어.’
이건 김병만 코미디죠. 다시 말해서 양의학 시스템이 한의학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양의사가 정당한 것입니다. 한의학이 실제로 어떻든 그런 해명은 이미 논점에서 벗어난다는 거죠. 양의사가 한의학의 사상의설을 비판하면서 예를 잘못들었다고 해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지요. 중요한건 양의학이니까.
양의학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의학을 한다면 한의학도 과학입니다. 이미 양의학이 있는데 한의학을 한다면 비과학이죠.(물론 보조적으로는 한의학도 사용할 수 있으나, 주객이 엄연. 주객전도 곤란. 양의가 주. 한의는 보조.) 말했듯이 쇠도끼가 출현하기 전에는 돌도끼가 과학이었습니다.
돌도끼의 우수성 여부에 따라 과학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쇠도끼의 우수성에 따라 돌도끼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 한의학의 운명을 한의학이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양의에도 일부 문제가 있으므로 한의학이 생존하고 있는 것. 양의가 한의의 운명을 결정한다.
결론적으로 ‘사실은 돌도끼가 이렇다’는 해명은 필요없는 거죠. 돌도끼의 운명은 돌도끼가 결정하는게 전혀 아니니까.
그리고 침팬지 관련내용 그거 다 엉터립니다. 침팬지를 관찰하고 자시고 간에 도무지 필요가 없습니다. 침팬지 그런 행동은 인간행동 안에도 다 있습니다. 인간들도 야당은 공격적이고 여당되면 온순하게 태도 바꾸고 공약 엎습니다.
각인이니 명성이니 이런 따위는 대개 쓸데없는 비과학입니다. 침팬지든 인간이든 집단은 의사결정원리 곧 의사결정의 구조적 효율성을 따라 움직입니다.
개가 짖는 이유는 도둑을 물리치기 위함이 아니라, 모르는 냄새를 맡으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 위하여 - 도둑을 물리치기 위하여 ( X )
◎ 의하여 - 낯선 냄새에 따른 스트레스에 의하여 ( O )
“외국 여행 중에 본 노랑머리 아이나 검은 피부 아이에 대해서는 망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reputation 인식/축적 과정이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런건 정말이지 바보같은 소립니다.
노랑머리나 검은피부에 대해서는 의사결정에 장애가 있는 겁니다. 경상도 사람이 ‘우리가 남이가’ 하는 것은 reputation 이 인식/축적이 안 되어서 그런게 아니고 의사결정 장애 때문입니다. 말이 안 통해서 그런 겁니다. 10대 소년들이 아빠하고 말 안 하는 것과 정확히 같습니다.
이건 유시민과 민주당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 유시민의 속내 - ‘내가 민주당 가면 지분을 얼마나 줄 것인가? 나 외에도 이해찬, 문재인, 강금실 등 정당한 대접을 못받고 있는 사람은 졸라리 많은데 그 많은 자리를 민주당이 다 보장할 수 있나?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개혁노선을 얼마나 수용할 의사 있나?’
이런걸 내놓고 말을 못한다는 거죠. 그러므로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왜? 이런 말은 먼저 꺼내면 떼 쓰는 거 같아서 정치적으로 불리합니다. 카드 칠 때 자기 패 보여주고 카드 칩니까? 결국 서로 먼저 상대방이 패를 까기 원하기 때문에 유시민이나 민주당이나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노랑머리나 검은피부라도 마찬가지죠. 혹 오해받아서 좋은 일 하고 욕먹을까봐 망설이는 거고, 의사결정이 힘들기 때문에 결단을 못 내리는 거죠. 결론적으로 안해봐서 못하는 겁니다. 노랑머리 아니라 빨간머리라도 그런 일 해 본 사람은 합니다. 순전히 안 해봐서 못하는 거. 연습하면 잘만 합니다.
젊은 침팬지가 암컷을 괴롭힌다는 표현은 비과학적인 표현입니다. ‘괴롭힌다’ 이런 감정적 표현 쓰면 안 되죠. 젊은 침팬지는 자기가 의사결정을 하려고 사태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이건 과학적 표현입니다.
‘우두머리가 되면 온순해진다’ - 이것도 비과학입니다. 이런 단어 쓰면 안 되재요. 사마천이 역사를 쓰면서 이런 감정과잉 다 지웠습니다. ‘이건 역사가 아냐. 소설이지.’
◎ ‘괴롭힌다, 온순하다.’ - 이건 과학자가 쓸 언어가 아닙니다.
‘폭력성’, 이런 말도 잘못된 말입니다. ‘의사결정에 개입.’ 이게 과학적 표현입니다. 젊은 침팬지의 폭력성이 심해지는게 아니라 개입이 수위를 넘는거죠. 의사결정에 더 많이, 더 깊이 개입하는 겁니다.
젊은 침팬지는 순전히 호르몬 작용에 의해, 자신이 무리를 통제하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집단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려고 하는 것이며, 리더가 되면 온순해진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줄은 겁니다.
말했듯이 개가 짖는 것은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개는 도둑을 쫓을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개는 주변에 모르는 냄새가 있으면 무조건 스트레스 받습니다.
젊은 침팬지의 폭력은 호르몬 작용에 따른 자신의 스트레스를 집단에 전가하는 것입니다. 집단 전체가 스트레스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일정한 한계에 도달하면 집단이 이심전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는데 이 과정은 순전히 물리학입니다. 백퍼센트 기계적으로 진행됩니다.
◎ 평판 어쩌구 - 너무나 초딩스런 발상.
수컷 침팬지는 호르몬 영향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 스트레스는 지랄발광을 하게 만들어 폭력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며, 그 스트레스가 집단 모두에 전해져서 일정한 임계를 넘었을 때, 집단은 이심전심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며 그 결과는 젊은 수컷이 리더가 되는 거지요.
그리고 이 수법은 히틀러가 돌격대를 내세워서 베를린 시내에서 시가행진을 하는 방법으로 계속 시민사회에 지속적으로 스테레스를 가한 것이나, 무솔리니가 검은셔츠단으로 계속 시가행진을 한 것이나, 가스통 할배가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한 것이나 정확히 같습니다.
탈레반이 테러를 하는 것도 집단에 스트레스를 가하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촛불시위도 마찬가지구요.
침팬지 이야기에 대한 구조론의 결론은 ‘소설 쓰고 있네’입니다. 말도 안되는 접근법입니다.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았습니다.
진리는 보편성을 가집니다. 침팬지 무리에서 관찰되는 현상은 인간사회에도 똑같이 관찰되어야 합니다.
침팬지가 집단에 스트레스를 가하는 것을, 구조론은 질로 설명하는데, ‘밀도’라는 표현을 쓰지요. 닫힌계 안에 밀도를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밀도가 일정한 임계에 도달할 때, 한 부분에서 일어난 사건이 무리 전체에 직결로 도달됩니다. 그럴 때 집단의 의사결정이 일어나며 그것이 이심전심입니다.
유마거사가 침묵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가하여, 삼천명으로 하여금 이심전심 주목하게 한 것이나, 김기덕의 아리랑에 초반 십 분간 대사가 한 마디도 안 나오는 거나, 다 마찬가지로 집단에 스트레스를 가하여 주목을 끄는 초식입니다.
아이가 삐쳐서 말 안하고 있는 것도 집단에 스트레스를 가하는 방법이지요. 자기가 스트레스 받으니까 남에게 그 스트레스를 전가하는 겁니다. 아기가 명성이나 평판을 노리고? 천만에. 걍 스트레스 받은 거에요.
반대로 젊은 침팬지가 집단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가했는데도 그것이 일정한 임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집단의 한 부분에서 일어난 사건이 무리 전체에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즉 암컷 일부는 그 사건을 모르고 있거나 무관심하다는 거지요.
젊은 침팬지가 소리를 꽥 질렀는데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암컷이 있다면? 무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면? 의사결정이 안 됩니다. 왜? 침팬지 마을에는 강호동이나 유재석이 없으니까요.
◎ 인간들 사회 - 강호동이 소리를 빽 지른다. 혹은 유재석이 능수능란하게 사회를 본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인다.
◎ 침팬지 사회 - 젊은 침팬지가 소리를 빽 지른다. 일부 암컷은 주의를 기울이나 다른 일부는 무관심하다. 이 경우 암컷은 늙은 수컷을 지지한다.
젊은 침팬지가 소리를 빽 질렀을 때, 그 침팬지 무리 모두가 그 사건에 주의를 기울이고 주목하게 될때까지 젊은 침팬지의 난동은 계속됩니다. 이걸 명성이나 평판이라고 하면 비과학적인 언어사용이 되고, 구조론으로 말하면 닫힌계 안에서 밀도가 임계에 도달했을 때입니다.
어떤 하나의 행동으로 집단 모두가 주목하게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리더입니다. 거기서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 보통은 젊은이가 늙은이에게 시비를 걸어서 떠들썩한 구경거리를 연출하는 방법으로 명성을 닦고 평판을 얻어 차차로 집단의 주목도를 높여나갈 수 있지만 이건 과학의 언어가 아니죠.
박지성이나 김연아가 많은 광고료를 받는 것은 명성이나 평판 때문이 아니고 단지 시청자의 주목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주목도는 기계적인 겁니다. 즉 옥동자가 무슨 평판이나 명성 때문에 광고에 나오는건 아니라는 거지요.
백인 쌍둥이 아기가 아다다다다다다다 하는 유투브 동영상이 요즘 광고에 나오던데 그 아기가 무슨 명성이 있고 평판이 있겠습니까? 시청자의 주목도를 높일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개도 광고모델 됩니다. 개가 reputation을 얻어서 광고모델 되나요? 천만에. 시청자의 주목도는 기계적입니다. 주목만 끌 수 있다면 떵도 광고모델 됩니다. 욕먹을까봐 안하지.
젊은 수컷이 난동을 부려도 무리 전체가 긴장하지 않으면 암컷이 늙은 수컷을 지지하는데, 사실은 늙은 수컷을 지지하는게 아니라, 무리 전체가 긴장하지 않으니까 자기도 어쩔 수 없는 거죠.
전쟁이 났는데 젊은 신참 소대장이 ‘1소대 집합’ 이라고 소리를 질러도 정보가 집단 전체에 전달이 안 됩니다. 근데 늙은 하사관이 나지막하게 ‘집합’이라고 하면 익숙한 목소리니까 다 알아듣고 모입니다. 이때 암컷이 늙은 하사를 지지하는게 아니고, 젊은 소대장의 목소리로는 정보가 전달이 안 되어서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때 병사들의 판단은 자기 생각을 따르지 않고 남의 의사를 따릅니다. 지난 대선에 이명박 찍은 자들은 이명박 지지해서 찍은게 아니고 남들이 이명박을 찍을 거라고 판단해서 찍은 겁니다.
◎ 이명박을 지지해서 투표했다. - 얼마 안 됨.
◎ 이명박이 당선될걸로 예측해서 투표했다. - 매우 많음.
물론 자기 말로는 지지해서 투표했다고 말은 하더라도 실제로는 당선될걸로 예측했기 때문에 지지한 겁니다. 암컷 침팬지가 늙은 수컷을 지지한 것은 좋아서 지지한게 아니고 다른 암컷이 그렇게 할거라고 판단해서 한 겁니다.
◎ 의사결정의 법칙 - 의사결정은 의사결정이 가능한 방향으로 결정한다.
진보진영에서 옳은 주장을 하고 다수가 지지한다 해도 ‘실제로 그게 되겠나? 절차가 복잡한데 중간에서 에러나서 틀어지겠지. 아마’ 이렇게 판단하면 막상 투표장 가서 한나라당 찍습니다.
다시 말해서 복지를 지지하지만 복지를 안해봤기 때문에 설마 그게 되겠나 싶어서 딴나라당 찍은 거죠. 결론적으로 한국인이 복지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안해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복지를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경험하면 무조건 지지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무상급식은 큰 의미가 있는 거죠. 경험은 행동을 낳으니까.
침판지가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의사결정원리를 따라 의사결정이 실제로 일어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 행동은 기계적이며 물리적으로 실험하여 입증할 수 있고 이미 구조론에서는 입증이 되었죠.
◎ 실험방법 - 방 안에 사람을 가득 몰아넣은 다음 집에 불을 지른다. 이때 불 지른 사람이 ‘불이야’ 하고 소리 지르면 다들 튀어나간다. 그 순간 방화범은 리더가 된 것이다. 자기 말에 모두들 따라 움직였으니까.
젊은 침팬지의 난동도 같은 것입니다. 방화범이 reputation을 얻은건 아니구요. 그저 공동체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침팬지의 불지르기는 순전히 호르몬 작용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과학은 물리학, 수학의 언어로 기술되어야 합니다. 구조론의 대칭원리를 중심으로 주장을 풀어가야 한다는 거죠. 닫힌계 안에서 스트레스를 포화상태까지 끌어올렸을 때 질 다음의 입자가 만들어집니다.
열개의 구슬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걸 하나로 모으려면 두 손으로 에워싸야죠. 두 손을 점점 좁히면 구슬들이 서로 닿게 되는데 마침내 더 이상 좁힐 수 없는 상황까지 손을 좁히면, 구슬집단 일부에서 일어난 일이 구슬무더기 전체에 전달이 됩니다. 즉 압축이 되어 부분에서 중앙까지 직결로 연결되어 정보소통이 일어나는 거죠.
만원버스에 승객이 꽉 차면 그 승객중 한명이 움직여도 버스 전체에 정보가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구조론은 입자라고 말합니다. 질에서 입자로 이행하면 무리의 대표자가 탄생합니다. 즉 여러 개인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리더를 세워서 하나의 단일한 의식을 가진 단독자처럼 행세하는 것입니다.
◎ 질은 결합한다. - 집단에 스트레스를 가하여 서로간의 관계를 밀접하게 한다.
◎ 입자는 독립한다. - 스트레스가 일정한 임계에 도달할 때 부분과 전체가 직결하여 하나의 단일체로 기능한다.
하여간 이 정도만 하죠.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다 나오는 이야기구요. 침판지 이야기는 한 마디로 멍청한 소리입니다. 비과학적이에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데 ‘기존 과학계에서 다 인정되는데 왜 시비냐?’ 이렇게 반격하면 안 됩니다. 쇠도끼가 나오기 전까지는 돌도끼가 과학이라니까요. 구조론이 나왔기 때문에 구시대의 연금술이 과학의 지위를 잃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과학자들이 침팬지를 관찰하여 귀납적 방법으로 지식을 생산했다는건 개소리고 그냥 히틀러, 뭇솔리니 사실을 이식한 거죠. 연역이죠. 침팬지 사육장 필요없고 1학년 2반 교실에서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물론 수학자가 수학책 쓸때 ‘괴롭힌다’거나 reputation라거나 이런 말 보조적으로 써도 되기는 됩니다. 그러나 본질은 공식입니다. 수학자는 공식을 내놔야 수학자입니다. 공식이 알맹이고 나머지는 그저 포장지입니다.
공식이란건 ‘이게 이렇게 되면 저건 저렇게 된다’는 대칭성입니다. 그게 방정식으로 나타나죠. 밑변이 3센티에 높이가 3센티면 면적은 얼마라야 한다는 거죠. 형용사 다 빼고 건조한 공식이어야 한다는 거죠.
구조론은 공식으로 말하며 그 공식은 ‘닫힌계 내부에 가해진 스트레스가 임계까지 도달했을 때 그 질에서 의사결정의 핵, 곧 입자가 형성된다’는 겁니다. 그 다음은 한번 경험한걸 반복하는 거죠.
◎ 닫한계(밑변)*스트레스(높이)=의사결정의 리더 탄생(면적)
***닫힌 계가 아니라서, 곧암컷들이 다른 무리를 선택하여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다 튀었을 것. 이는 이명박보다 나은 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이명박이 된 것과 정확히 같음. (침팬지는 생존의 어려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닫힌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며, 그런 마음의 감옥이 없는 고양이 집단에 젊은 숫놈 고양이가 난동을 피우면 암코양이들 전부 사라짐. 리더는 개뿔.)
젊은 침팬지가 가한 스트레스가 무리 전체를 완전히 긴장시켰을 때 저절로 리더가 된 것이며, 이때 암컷의 개인적 지지의사 따위는 상관없는 것이며, 한번 경험한 것을 반복하는 원리에 따라, 곧 구조의 효율성에 따른 의사결정 모듈원리에 따라, 암컷 침팬지들은 그저 이미 경험한 젊은 수컷의 리더역할 인정을 반복할 뿐이라는 거죠. 이건 밑변*높이 해서 면적 구하는 공식과 같은 겁니다.
수학이 기호를 쓰고 공식을 쓰는 것은 효율성 때문. 과학도 마찬가지.
얼마전 동물농장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본 것인데, 주인이 죽은 후에도, 주인이 생전에 쓰던 담요 곁을 절대 떠나지 않고 있는 충성스런 강아지를 간단히 제압해서 단번에 버릇을 바꾼 전문가 왈, ‘개가 뭘 알아서 돌아가신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건 아니고 단지 자신에게 익숙한 행동을 반복할 뿐’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개 전문가도 다 아는 상식을 과학자들이 침팬지 갖다놓고 코메디 쓰다니 너무 웃긴거 아닙니까?
코메디야 코메디.
인간이나 침팬지나 단지 자신에게 익숙한 행동을 할 뿐입니다. 경험한건 반복하고, 경험 안 하면 안 합니다. 왜? 그게 의사결정 에너지가 덜 드는 효율적인 행동이니까.
◎ 익숙한 행동을 반복한다. - 과학의 언어
◎ 주인에게 충성을 바친다. - 비과학적 언어.
돌아가신 주인에게 충성하는 개 드라마는 많고 영화로도 가끔 나오죠. 그거 다 엉터립니다. 개가 그 이야기 들으면 웃습니다. 개는 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 아닌 다른 행동을 결단하지 못 하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것이며 충성스럽다고 칭찬할게 아니라 전문가 불러서 그 무형의 감옥에서 풀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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