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 굵은 그림
한 공간에 둘을 집어넣으면 아이디어가 나온다.
창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선이 굵은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된다. 그림이 아닌 다른 어떤 장르라도 마찬가지다. ‘선이 굵다’는 것은 계의 내부가 균일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구조론의 질이다. 질은 밀도다. 그저 밀도를 높이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밀도를 높일 것인가? 그게 창의다.
모든 창의는 하나 안에 둘을 집어넣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 속에 둘을 집어넣을 수 있는가? 사슴과 호랑이가 하나의 우리 안에 있을 수는 없다.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슴이 진흙탕 수렁에 빠져 있다면 어떨까?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으려다가 같이 수렁에 빠지고 만다. 이때 지나가던 포수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사슴과 호랑이 둘 다 한꺼번에 잡으려다가 같이 빠지고 만다.
나무꾼과 호랑이와 사슴은 균일해진다. 셋 사이에 강자와 약자의 서열구분은 사라진다. 서로 대등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셋이 다 함께 수렁에 빠져서 꼼짝 못하는 신세, 질의 균일한 밀도의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이렇듯 둘이나 셋을 하나의 공간에 가두어 두려면 끈적끈적한 물질이 필요하다. 동작을 느려지게 하는 진흙탕이 필요하다. 수렁에 빠지면 꽉 차서 밀도가 높아지는 것이며, 동작이 굼떠져서 슬로우비디오가 된다. 선이 굵다.
무릇 창의한다는 것은 하나 안에 둘을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이다. 모든 창의가 그러하다. 춘향과 몽룡은 신분의 차이로 같은 건물에 공존할 수 없다. 둘을 하나의 공간에 밀어넣는 것은 사랑이라는 수렁이다.
둘은 사랑이라는 수렁에 빠져 같은 침대 위에 공존하게 된다. 스트로스 칸 IMF사무총장과 호텔여직원을 하나의 공간에 밀어넣는 것은 돈이라는 수렁, 혹은 욕정이라는 수렁이다.
어떻게 이질적인 존재를 하나의 공간에 붙잡아둘 수 있는가? 그것은 에너지다. 계에 에너지가 걸리면 스트레스가 작동하여 동작은 굼떠지고 내부는 균일해진다. IMF사무총장과 호텔직원이 대등해지고, 춘향과 몽룡이 대등해진다. 모든 사람이 대등해지면 그때부터 드라마는 시작된다.
강자와 약자, 남자와 여자, 빈자와 부자, 백인과 흑인 그 서로 다른 존재, 이질적인 존재의 차별성이 클수록 더 끈적끈적한 시멘트가 필요하다. 초강력 본드로 접착해 두어야 둘이 한 곳에 붙어 있다.
선이 굵다는 것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것이다. 고양이 두 마리가 싸운다면 순식간에 후다닥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두 마리 고양이는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코끼리 두 마리가 느리게 싸운다면 어떨까? 검도 고수가 진검으로 대결하듯이 팽팽해져서 상대방의 작은 행동에도 일일이 반응한다.
말하자면 팽팽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 팽팽한 긴장이 끈적한 수렁과 같다. 동작 하나하나가 다 이유가 있어야 한다. 바둑고수가 대결한다면 하나하나에 다 이유가 있다. 끈적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하수끼리 놓았다면 어느 지점에 돌을 놓든 반드시 거기에 놓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
바둑을 해설하는 사람이 해설할 내용이 없다. 그냥 아무렇게나 놓아본 것이다. 이건 선이 가는 것이다. 만원 버스라면 어떨까?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누군가 비명을 지른다. 바로 반응이 온다. 내가 방귀를 뀌면 누군가 코를 틀어막는다. 그것이 밀도가 높은 상태, 선이 굵은 것이다.
텅 빈 버스라면 어떨까? 방귀를 뀌어도 반응이 없다. 소리를 질러도 반응이 없다. 생쇼를 해도 반응이 없다. 이건 밀도가 낮은 상태, 구조론의 질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 내부가 균일하지 않은 상태이다. 균일해야만 정보가 전달된다. 소통이 일어난다. 촛불의 밀도를 계속 높여서 명박산성을 넘어 청와대까지 가득 채워야 명박에게서 약간의 반응이 온다. 그 상태에서 명박과 여고생은 균일해진다. 우열이 사라져서 똑같아져 버리는 것이다.
장인이 가구를 만들 때 못을 사용하면 안 된다. 나무를 깎아서 나무끼리 결합시켜야 한다. 못은 강하고 나무는 약하다. 밀도가 다르므로 부분에서 힘이 전달되지 않고 반사되어 되돌아온다. 그 부분에서 삐꺽거리기 시작한다. 이는 선이 가는 상태, 불균일한 상태이다.
여자 하나에 남자가 둘이면 삼각관계다. 곧 밀도가 높은 상태다. 그러므로 드라마가 탄생한다. 밀도는 에너지에 의해 형성되며 그것은 끈적한 물질이거나 심한 스트레스거나 분노이거나 어떻든 서로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선이 굵다는 것은 상황을 단순화 시킨다는 것이며 그 방법으로 대칭구조의 긴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수렁에 빠지면 단순화 된다. 진흙탕 색깔로 통일된다. 흑인과 백인의 피부색 차이가 사라진다.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지면 죽느냐 사느냐만 남는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지워진다. 전쟁통에 수도권대냐 지방대냐, 전라도냐 경상도냐 따질 겨를이 없는 거다.
아이디어는 생각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화된 구조 속에서 저절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부품을 모아서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풍선에 물을 채워넣고 바늘로 뚫어주면 저절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계에 밀도를 채워놓고 한쪽만 살짝 열어주면 아이디어는 우르르 쏟아진다. 마빡이가 웃긴 것은 상황을 단순화 시켰기 때문이다. 계속 마빡을 타격하는 방법으로 밀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을 꼼짝없이 수렁에 빠뜨린 것이다.
말하자면 무대를 엘리베이터 안과 같은 비좁은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계속 힘들게 마빡을 강타하고 있으면, 상대의 작은 행동에도 곧바로 반응하게 된다. 상대가 혀만 낼름해도 사태가 발생한다.
김병만이 철봉에 매달려 피곤한 상태에서 노우진과 류담이 작은 행동에도 바로 반응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매달려서 떨어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태, 밀도가 극도로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는 살짝만 건드려줘도 바로 웃음이 터진다.
오른쪽에 호랑이가 있고 왼쪽에 사자가 있어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는 것이다. 꽉 낀 상태, 정보가 바로 전달되는 상태, 저쪽에서 일어난 일이 이쪽까지 바로 알게되는 상태.
일본식 목조건물은 벽이 얇아서 한 건물에 열 명이 하숙한다면 다 들린다. 말하자면 열 명의 식구가 한 집에 사는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명이 화장실에서 들어가서 푸덩덩 하면 저쪽 끝방에서까지 알고 비명을 지른다.
어떤 하나에 전체가 연동된 상태, 하나가 전체를 결정하는 상태, 서로 긴밀하게 관계를 주고받는 상태, 숨 막히는 상태, 에너지가 잘 전달되는 상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상태. 매달려서 대롱대롱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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