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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인간이 타고나는 것이라고? 천만에… “理性은 남과 싸워 이기려고 발달한 것”

美·佛 학자 파격 해석에 해외 학계 일제히 술렁

조선일보 전병근 기자 입력 2011.06.27 03:13

“이성은 진리 탐구의 수단이라기보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투쟁의 무기로서 진화해온 것이다.”

인간 이성(理性)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이 해외 학계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이른바 ‘이성적 사고에 관한 논쟁 이론(argumentative theory of reasoning)’이다. 과학저널인 ‘행동·뇌과학 저널(The Journal of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이 지난 4월호에서 특집으로 다룬 데 이어 뉴욕 타임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등 유력지들이 이 이론을 차례로 소개했다.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에서 이성이란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고유 능력’으로 규정돼왔다. 계몽주의 이후에도 이성적 사고는 인간의 지식을 개선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게 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논쟁론자들’은 이런 고전적 해석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프랑스 장-니코 연구소의 인지과학자인 댄 스퍼버 박사와 미 펜실베이니아대의 휴고 머시어 철학 교수는 공동 논문에서 “이성적 사고는 순전히 사회적 현상이다. 우리가 남을 확신시키거나, 섣불리 남에게 설득당하지 않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현실적인 인간은 고독한 진리탐구자가 아니라 무리 속에서 부단히 의견을 다투는 사람이다. 인간의 합리성이란 것도 상대를 이기려는 욕망이 논쟁의 영역에서 발현되면서 발달돼온 능력이라는 것.

이 이론은 사회 현실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비이성적’ 현상을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출생증명서까지 공개했음에도 불구, 아직도 미국 에서는 그가 미국 태생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국내 ‘광우병 파동’ 때도 마찬가지. 사실에 기초한 전문가들의 ‘해명’이나 ‘합리적’ 설득에도 불구하고 ‘괴담’이 활개쳤다. 철학계에서는 ‘확증 편견(Confirmation Bias)’이라 부르는 뿌리 깊은 경향성을 원인으로 든다. 자기 생각에 맞는 의견만 청취하려는 사고의 습관을 가리킨다. 이는 ‘이성적 사고’를 갖고 있는 식자층도 마찬가지다. 자기 반대편 연구나 글에서 흠을 찾아낼 때는 훨씬 더 열성적이 되고, 자기 관점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반증에는 훨씬 더 비판적이 된다는 것. 스퍼버 박사는 “확증 편견은 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할지는 몰라도 타인을 설복시키려 할 때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이성적 사고는 자기주장을 변론하는 방패이고, 유능한 논객이란 진리 추구자가 아니라 자기 입장을 강력하게 펼 수 있는 사람이다. 스퍼버 박사는 “인간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를 해왔다면 논리적 사고에 반하는 습성은 왜 도태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 연구가 출발했다”고 말했다.

인간은 말로 의사소통을 하는 동물이고, 이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를 얻을 경우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이런 ‘투쟁 도구로서의 이성’을 발전시켜온 것으로 풀이된다. 예일대의 헬렌 랜드모어 정치학 교수는 “민주주의도 이런 이성의 진화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며 “인간이 논쟁과 평가 기술을 발달시켜 가는 과정에서 민주적인 토론을 허용하는 정부를 최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법정 공방 시스템도 같은 예로 제시됐다.

이게 전형적으로 ‘과학계의 비과학’이다. 이건 뭐 개소리다. 과학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하나하나 따지면 이 짧은 기사에서 수십 가지 잘못을 짚어낼 수 있다.

이성은 곧 의사결정 능력이다. 구조론에 따라 의사결정은 의사결정하기 편한대로 진행된다. 즉 인간은 의사결정할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확증편견 어쩌고 하는 것도 개소리다. 의사결정은 전적으로 사건의 기승전결 원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즉 의사결정의 결을 따라간다.

구조의 결이 있으며 그 결에 따라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다음 단계로 진도 나가주는 것이며 그것은 에너지 자원이 완전히 소모될 때 까지 진행된다.

인간은 오바마 대통령이 출생증명서를 공개해도 납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긴장을 조성해서 더 높은 레벨의 판단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1심에서 패소해도 무조건 2심을 가는 것은, 승패와 상관없이 2심판결을 받아보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걸 기록에 남기려는 것이다.

오바마가 미국인인지 케냐인인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3심까지 가서 미국사에 획을 그은 일대사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작정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사건이다.

역사의 진보는 사건의 집적에 의해 일어난 거지 사실의 옳고 그름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다.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에 따라서 역사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개입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며, 당시 남과 북은 미국과 소련을 개입시킬 수 있다면 뭐든지 할 테세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성은 사건을 증폭시켜 공동체의 중심까지 전개시키려는 의도에 의해서 즉 인간의 집단지성, 집단지능을 형성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는 동물에게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맞다. 예컨대 개미의 역할분담에 의핸 고도의 군집생활은 당나귀나 혹돼지 무리에는 없는 것이다.

개미는 페로몬을 통해서 군집 안에서의 역할분담을 한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사건을 공동체의 중심까지 끌고들어가서 집단지능을 형성하며 그 목적은 결국 사건을 1심이 아닌 2심, 3심 대법원까지 끌고들어가서 그 그룹 안에서 최고지성의 판단을 받아, 그 집단의 역사에 길이남을 일대사건으로 만들어, 거대한 역사의 이정표로 제시하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가장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들어간 에너지 대비 효과가 좋은 것이다.

오바마를 끈질기게 물고늘어져서 일대사건으로 만들어 미국사의 대전환을 연출하려는 것이었으며, 실상 미국독립의 원인이 된 보스턴 차사건이나 총알 한방에서 시작된 1차세계대전도 이런 ‘오바마 오해하기’ 수법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만약 오해가 전혀 없었다면 미국은 아직 영국의 식민지다. 모든 것은 ‘의도적인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오해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싸움을 거는 것이며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전개시켜 상황통제의 불가능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결국 통치집단의 통제능력을 해체하려는 것이다.

원래는 존 행콕이라는 밀수업자가 돈벌이 목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의 전투에 의한 사망자는 고작 1200명에 불과하며 수많은 병사가 비타민 부족에 의한 괴혈병으로 죽었는데, 이는 미국식민지와 영국정부의 소통불능을 드러낸 것이다. 즉 미국독립의 당위성을 입증한 것, 규정이 어떻고 하면서 레몬 주스 한 잔으로 해결되는 비타민 공급을 못해서, 영국군 수만명이 병사한다는게 말이 되느냐다.

촛불항쟁도 마찬가지다. 소통불능을 드러낸 것. 소통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자격이 없다. 여전히 이명박 정권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비타민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규정이 어떻길래 레몬 주스가 안 와서.

계에 밀도를 투입하면 핵이 형성되고 결이 전개되어 구조가 작동한다. 바로 그것을 얻으려는 것이며 거기에는 의도적인 오해하기부터 온갖 초식이 사용된다.

구조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얻지 않으면 과학은 총체적으로 실패다. 구조는 수학 물리학이므로 반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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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1-06-2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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