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원래 없고 오답을 배제하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이것이 필자의 마이너스 제어 이론이다. 지금으로서는 정동영, 김근태, 손학규와 같은 ‘한 물 간’ 오답을 배제하고 어장관리를 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맞다.

그 어장에는 안철수, 손석희, 이해찬, 문재인, 유시민, 천정배, 한명숙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 설사 그 중의 하나에 지극한 마음이 있더라도 그러한 마음을 들키지 않는 것이 전술적으로 유익하다. 그것을 들키는 즉 탑 포지션의 유리함을 잃고 바텀 포지션의 열세를 면하지 못 한다.

그러나 박봉팔은 어떤가? 마치 자신이 정답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쪽이 정답이야’ 하고 내내 한 쪽만 가리키다가 점점 꼴이 우습게 되어 가고 있다. 서프라이즈? 어휴! 그 쪽은 말도 꺼내지 말자.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이나 한겨레나 다 마찬가지다. 다른 논객들도 마찬가지다. 조중동이나 그 주변의 거지새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이 정답을 콕 찍어주겠다며 한 쪽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지만 편협하다. 그들은 점점 자기네의 동선을 좁힌다.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만다. 점차 성공의 확률을 떨어뜨린다.

두 갈래 길 앞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쁜 길을 선택한다.이는 단기적 손실을 초래하지만 장기적으로는공동체의 이익으로 귀결된다. 이명박은 백 번의 선택 기회가 있었는데 백 번 다 나쁜 코스를 선택했다. 그 결과는 구조론에서 말하는 공동체의 소통지능 향상으로 나타났다. 확실히 이명박에 의해 한국인은 더 똑똑해졌다.

유시민이라도 이런 오류는 피해가지 못한다. 유시민의 선택은 단기적으로 유시민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으나 진보진영 전체에 이득이 된다. 앞서가는 유시민이 본인에게 나쁜 선택을 계속하면 뒤따라가는 안철수, 박원순이 이득을 본다. 그들은 주워먹는다.

고정된 정답은 없다. 인간의 행동은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거기에 대항하는 형태로 결정되는 것이며,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상호작용 과정에서 집단지능을 향상시켜 가는 그 자체, 시스템을 합리화시켜 가는 그 자체, 그러면서 내재적인 역량을 축적해 가는 그 자체, 그러한 공동체의 진보과정 그 자체가 정답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이 더 현명해진 것이 우리가 얻은 진짜 정답이다.

우리는 군부의 1987년보다 더 현명해졌고, 영삼의 1992년보다 더 현명해졌고, 김대중 대통령의 1997년보다 더 현명해졌고, 노무현 대통령의 2002년보다 더 현명해졌고, 이명박의 2007년보다 더 현명해졌다. 2007년에 잠시 바보가 되었지만 이 또한 굴뚝시대에서 IT시대로, 지역대결에서 세대대결로 넘어가는 거대한 방향전환 과정에서 필요했던 속도조절로 보아야 한다.

박원순, 안철수가 적당한 타이밍에 로또를 잘 긁었지만 유시민과 정동영이 좌클릭하면서 중간을 크게 비워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빈 공간을 잽싸게 나꿔챈 것이다. 범진보진영 전체로 보면 유시민이 특히 필요한 역할을 해준 것이다.

유시민은 좌클릭해서 먼저 배후에서의 안전을 확보한 후 우클릭하는 전술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징기스칸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전략이다. 그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세상이 그러한 전술적 방법들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내재한 에너지 자체의 결을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다.

유시민이 어디로 가든 상관없이 정치는 정치 자체의 결대로 가는 것이며, 역사는 역사 자체의 맥박대로 가는 것이며, 유시민과 그 역사의 맥박 사이에는 일시적인 호흡의 불일치가 있을 수 있고, 유시민이 이번에 잠시 찬스를 놓쳤지만 언젠가 기회는 다시 온다. 다시 기회를 맞아 박자를 잘 맞춘다면 유시민은 지금 좌클릭해서 높여둔 확률로 그 흐름에 올라탈 수 있다. 반드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포지션을 넓게 가져가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정답은 무엇인가? 보폭을 넓히고 피아간에 상호작용의 속도를 끌어올리면서 점차 확률을 높여가는 것이 정답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단련시켜 우일신 하는 것이 정답이다. 우리가 강해지는 것이 정답이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 유시민이냐 셋 중에서 하나를 찍으려 하지 말고, 노무현 대통령이 꾸려놓은 환상의 팀에 의해 우리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돌아보라.

지금 우리에게는 이해찬, 문재인, 한명숙, 유시민, 박원순, 안철수, 손석희, 천정배, 송영길, 최문순, 안희정, 정동영, 이광재, 김두관, 정세균, 문성근, 유홍준, 천호선, 이재정이 금강산의 많은 봉우리들처럼 버티고 서 있다. 박근혜 뒤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만큼 강해진 것이다. 우리가 이토록 강해졌다는 것이 진짜 정답이다.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정치는 팀 플레이다. 우리는 지금 좋은 팀장을 갖고 있지 않지만 차차 손발을 맞춰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정답이다.

PS.. 이에 대해서는 아래 토마스님의 리플이 좋소.

언론의 사명

좋은 언론은 두 가지를 해야 한다. 하나는 독자들을 대신하여 선택을 해주는 것이고, 둘째는 이기는 승부를 해주는 것이다.

무언가 선택을 해서 독자들에게 선택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언론사의 할 일이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적어도 독자들에게 확실한 신호를 주고 있다.

반면 한국일보는 동시에 두 방향을 가리킨다. 독자들에게 아무런 선택도 해주지 않는다. 이는 언론사 본연의 의무를 위배한 것이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무언가 선택은 해주고 있지만 그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그들은 자유주의로 크게 그물을 치고 복지로 점차 목표를 좁혀가는 마이너스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농구공을 던져 슛을 성공시키듯 처음부터 편협한 목표를 제시해놓고 운좋게 골을 성공시키려는 무리한 플러스 방법을 쓰고 있다.

이때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에 독자들은 낙담하고 만다. 독자들에게 선택을 해주어야한다는 목표를 상당히 무산시키고 있다.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하고 계속 NO를 외쳐서 선택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뻘쭘하게 만들고 있다. 환경은 급변하고 독자들은 초조해진다.

언론은 먼저 선택을 해주어야 하고, 다음 이기는 승부를 해주어야 한다. 한겨레의 문제는 거듭 패배한다는 점이다. 목표를 좁게 잡을수록 패배할 확률이 높다. 또 과거에 집착할수록 패배할 확률이 높다. 목표를 넓게 잡고 미래를 지향하며 스마트폰이라는 확실한 무기를 가지고 이기는 승부를 해주는 것이 지금 김어준의 포지션이다.

승리는 정치인들이 골방에서 임의로 결정한 노선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혁신에서 얻어진다. 아이폰이 진보진영의 보선승리를 끌어낸 것과 같다. 산업을 적대시하는 바보같은 결정은 자충수가 된다.

김어준의 포지션은 설사 지더라도 역량을 축적함으로써 다음번 승부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여서, 승리에 대한 확신을 주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처음부터 보폭을 넓게 잡으므로 그동안의 축적한 성과들을 떠내려보내지 않고 재사용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이기도 하다. 목표를 좁게 잡으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성과를 떠내려 보낸다는 점에서 역량의 낭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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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1-11-0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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