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말이 있다. 서점가에 이와 같은 제목의 단행본도 나와 있다. 그런데 어느 방향이지? 이 책을 쓴 분도 그 방향을 모르고 있다는게 문제다. 정답은 마이너스 방향이다.
세상의 작동은 에너지의 투입에 의해 얽힌 구조가 풀리는 과정이며 세상은 오직 마이너스 방향으로만 풀린다. 구조론은 수평적인 좌우방향의 대칭으로 얽혀 교착된 것을 수직적인 상하운동으로 풀어낸다.
중요한건 에너지다. 에너지 개념이 없으므로 수평에서 길을 읽고 헤매거나 서로 엉켜서 교착되는 것이다. 에너지를 투입하면 방향성이 드러난다. 그 방향은 수평에서 조직되지만 수직으로만 작동한다.
이때 위에서 아래로만 풀린다. 전체에서 부분으로만 풀리고, 높은 질서에서 낮은 질서로만 풀린다. 원인에서 결과로만 풀리고, 입력에서 출력으로만 풀린다. 탑 포지션에서 바텀 포지션으로만 풀린다.
◎ 풀리는 방향 : 위 - 아래, 높은 질서 - 낮은 질서, 복잡 - 단순, 전체 - 부분, 원인 - 결과, 입력 - 출력, 질 - 양.
순 방향으로 가면 풀리고 역방향으로 가면 막힌다. 그런데 어디가 위고 어디가 높은 질서인지, 어디가 복잡이고 어디가 전체인지 모르겠다고? 닥치고 마이너스를 행하라. 마이너스가 되는 쪽이 탑 포지션이다.
◎ 바둑기사는 먼저 큰 집을 지어 상대의 공간을 빼앗고, 막판에는 시간공격을 가하여 초읽기에 몰린 상대의 생각할 시간을 빼앗는다. 선 공간공격 후 시간공격이다. 공간의 방향을 먼저 결정한다.
◎ 전쟁 역시 선 공간공격 후 시간공격이다. 제왕 한신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해하에서 초패왕 항우의 10만 대군을 쳐부술 때, 먼저 아홉갈래 길이 있는 구리산의 좁은 골짜기로 유인하여 초군의 외연을 차단함으로써 항우의 운신할 공간을 빼앗았다. 십면매복으로 곳곳에 병력을 분산하여 숨겨놓았다가 차례로 공격하고 빠지는 풍차돌리기식 연쇄공격을 가하여 쉴틈없이 몰아붙였다.
잘게 쪼개진 초나라 군대의 주력은 마침내 8천명까지 줄어들었다. 사면에서 포위하고 밤새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하니 사면초가다. 먼저 공간으로 조이고 잠을 못자게 하는 시간공격으로 최종적인 승리를 얻어낸 것이다.
◎ 플러스 사고에 빠진 구소련은 중간판매상을 없애버렸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시도한 것이다. 곡물의 70퍼센트가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밭에서 썩게 되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주말마다 배낭을 매고 밭에 버려진 감자를 주우러 다녔다. 자본주의는 중간판매상이 마이너스를 행하여 중간에 이익을 빼돌리지만 어떻든 전부 소비자에게로 전달된다. 플러스로 가면 밭에서 썩는다.
◎ 국민의 정부 때 가락동시장을 건너뛰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농작물 직거래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무리한 플러스 시도였다. 이 경우 생산자조합과 소비자조합의 연결, 혹은 인터넷과 같은 상부구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 선동렬의 지키는 야구는 점수를 버는 타자보다 점수를 주는 투수 쪽을 정밀하게 통제하는 마이너스법이다. 의외의 돌발변수가 나타날 여지를 차단하여 이닝이 거듭될수록 상대편을 절망에 빠뜨린다.
◎ 게임에서 내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데 주력하기보다 상대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상대를 방해하는 마이너스는 한 개의 라인만 끊어도 성공하지만, 내가 차지하는 플러스는 여러 개의 라인을 모두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용대비 효과로 보면 마이너스가 정답이다.
◎ 우임금의 치수는 강변에 둑을 쌓는 플러스법이 아니라 하류에 물길을 내는 마이너스법이었다. 아버지 곤이 황하를 따라 길게 둑을 쌓았으나 물을 다스리지 못했다. 아들 우가 치수사업을 이어받아 물길을 파는 방법으로 물을 다스리는데 성공하였으니 마침내 하왕조를 창시하게 되었다. 플러스로 가는 둑은 빈틈없이 모두 이어야 하지만 마이너스로 가는 물꼬는 한 곳만 터주어도 된다. 물이 그 흐르는 기세로 스스로 길을 만들고 나아간다.
◎ 예술은 뭔가 내 안에 가득히 들어차서 채워진 것을 뱉어내는 것이지 K팝 한다는 아이돌처럼 그냥 연습해서 무언가 자신에게 플러스 하는 것은 아니다. 울분, 분노, 열정, 슬픔, 발랄함과 같은 감정의 에너지들이 자기 내부에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한다. 저절로 터져나올때까지. 왈칵 쏟아질때까지.
캔버스에 주제나 교훈이나 가르침이나 뭔가 잔뜩 집어넣는 방법으로는 그림이 되지 않고, 문장에 쓸데없는 기교를 잔뜩 집어넣는 방법으로는 문학이 되지 않고, 가락에 갖은 기교를 집어넣는 방법으로는 뽕짝이 될 뿐 예술이 되지 않는다. 음식에 갖은 양념을 더하면 그저 팔리는 상품일 뿐 선비의 멋은 아니다.
◎ 고전회화는 그림 안에 그리스의 신화나 성경의 장면들을 집어넣어 관객에게 교훈을 주고 감동을 주입시키는 플러스법을 쓰다가 망했다. 인상주의는 그림 안의 명암과 원근과 색채가 대칭을 이루어 서로 다툴 뿐 그림을 쳐다보는 관객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콧대높은 소녀처럼 ‘흥!’ 하고 관객의 시선을 차갑게 외면한다. 진짜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
관객에게 주입하는 플러스는 가짜고 관객의 심중에서 스스로 반응해야 진짜다. 누구나 내면에 종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종이 스스로 울게 해야 한다. 그림이 관객들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고 친한척 하면 곤란하다. 붙잡힌 종은 울리지 않는다.
◎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관객의 시선을 무시하고 영화 안의 여러 요소들이 자기네끼리 쟁투를 벌인다. ‘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는 이렇게 응수한다’는 상호작용의 대칭구조들이 씨줄과 날줄로 이루어 베를 짜듯이 한 편의 영화를 조직해 간다. 이에 소외감을 느낀 관객들이 항의하기도 하지만 아는 평론가들은 이러한 배제전략에 큰 점수를 준다.
◎ 화장실에 갈때마다 휴지를 찾는 것은 플러스다. 두루마리를 걸어놓고 조금씩 떼 쓰는 것은 마이너스다.
◎ 은행 창구에서 길게 줄을 서는 것은 플러스다. 대기표를 받는 것은 마이너스다. 플러스로 한 곳에 모여있지 말고 마이너스로 흩어져서 각자 자기 일이나 하고 있자는 거다.
◎ 어떻게든 국민을 한 곳에 모아놓고 줄세우려는 것이 플러스적 사고에 빠진 계몽주의다. 공산주의가 회의하다가 망한 것이 대표적이다. 무질서하게 흩어진 국민이 각자 강한 개인으로 단련되어 문제해결능력이 향상되고 이것이 전체적인 체질강화로 나타난다.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으면 길들여져서 약해지고 외부에서의 돌발적인 공격에 취약해진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삼성은 10만 노동자를 공장에 뭉쳐놓았지만 애플은 50만 앱개발자를 세계 곳곳에 흩어놓았다.
◎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최고상을 받은 황지해 작가의 정원 디자인 작품 ‘해우소 가는 길’은 조미료 냄새가 나는 다른 작가의 작품과 달리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 하고 있다. 관객의 마음에 무언가 주입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편안하게 비워놓고 기다린다.
정원을 구성하고 있는 기왓장과 돌과 이끼와 대나무와 항아리와 장군은 각자 자기생각에 빠져 있을 뿐 찾아오는 관객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관객을 쳐다보고 미소 지으며 ‘이리오세요’ 하면 이미 장사꾼으로 격이 떨어져 버린다. 관객의 역할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플러스는 관객을 포지션을 마이너스 시키지만 마이너스는 관객을 포지션을 플러스 시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이 책을 읽고 마이너스에 대한 감각을 기르기 바랍니다. 그림을 하든, 음악을 하든, 문학을 하든 구성요소들이 자기네끼리 대칭을 이룬 채 서로 치고받게 해야지,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면 이미 실패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세계의 50만 앱 개발자들이 자기네들끼리 치고받게 해서 짭짤하게 벌었습니다. 리더는 룰만 정해놓고뒤로 빠져줘야지 인위적으로 개입해서 이래라 저래라 줄 세우기 하면 피곤한 겁니다.
인생의근본적인 방향성에 대한 감각만 얻어도 반은 성공입니다. 우리가 가만 있어도 세상은 제 힘으로 굴러갑니다. 에너지는 투입되어 있고 상호작용은 일어납니다. 그 흐름에 올라타기만 하면 됩니다.
문제는 방향이 헷갈려서 역주행을 한다는 거지요.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대부분 역주행 합니다. 바로 가는 사람도 경험과 데이터가 있고 알려주는 스승이 있기 때문이지 혼자 판단하면 거의 역주행입니다.
조급해져서 역주행 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역사의 버스가 올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 봅시다. 굼떠서 그렇지 문재인 버스든 안철수 버스든 반드시 옵니다. ‘이 길이 옳다. 버스는 언젠가 온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책이 확신을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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