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분명한 방향제시, 둘은 외연확대다. 그런데 둘은 충돌한다. 방향이 분명한 사람은 좌나 우의 극단에 치우쳐 외연확대가 안 되고, 외연확대가 되는 사람은 방향제시가 안 된다.

그러므로 둘이 팀을 이루어야 한다. 92년의 김영삼, 김종필조. 97년의 김대중, 김종필조. 2002년의 노무현, 정몽준조. 2007년의 이명박, 박근혜조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저쪽은 하나인데 이쪽은 둘이니까 이기는 거다.

지금 이쪽은 문재인, 안철수조가 있고 저쪽은 박근혜 하나다. 조를 짜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쪽이 이긴다. 이건 뭐 1 1=2만 되어도 이해할 수 있다. 이쪽의 2로 저쪽의 1을 이기는게 정치다.

여기서 외연확대를 맡은 쪽이 김영삼, 김종필, 정몽준, 이명박이고 방향제시를 맡은 쪽이 김종필,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였다. 물론 이는 조를 편성하기에 따라 상대적이다. 92년과 97년의 김종필은 역할이 다르다.

중요한 점은 진보쪽은 방향제시 포지션이 짱을 먹고, 보수는 외연확대 포지션이 짱을 먹는다는 거다. 왜 진보는 상대적으로 골수파가 유리하고 보수는 상대적으로 협상파가 유리한가? 이는 역사가 본래 진보로 가기 때문이다.

[진보] 머리(원칙가)←꼬리(협상파) [보수] 머리(협상파)←꼬리(원칙가)

진보의 머리는 원칙가이고 보수의 머리는 협상파이다. 그리고 진보든 보수든 머리가 득점을 올리고 꼬리는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왜 이렇게 되느냐 하면 역사의 방향성 때문이다. 역사의 머리가 진보이고 역사의 꼬리가 보수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원칙가가 키잡이가 되고 보수는 협상파가 키잡이가 된다. 그러므로 진보인데 실리를 추종하는 정동영(요즘 갑자기 원칙가인 척)이나, 보수인데 원칙을 강조하는 이회창, 박근혜는 쓸모가 없다. 이명박도 대단한 협상파인척, 합리적인 실용파인척 사기쳐서 된 것이다. 그리고 당선 후에는 180도로 태도를 바꾸었다.

보수를 하려면 진짜 실용적으로 해야 한다. 이명박이 진짜 실용적이었다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구축해놓은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진보정권 10년간의 성과를 깡그리 파괴하여 국민을 허탈하게 했다. 알고보니 그는 대단한 보수 원칙가였다. 우리는 그들을 수구꼴통이라 부른다.

고지식한 보수, 물렁한 진보. 이건 최악이다. 강단있는 진보나 유연한 보수가 정답이다. 물론 여기서 진보, 보수 개념은 상대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노선타령에 목숨거는 무뇌좌파가 보면 다 보수겠지만.

박근혜에게 최선의 조합은 안철수와 팀을 꾸리는 것이다. 안철수를 당선시키고 자신은 총리를 맡는 것이다. 혹은 오세훈과 조를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오세훈에게 킹을 양보하는 것이다. 이건 왕년에 김종필이 밟았던 코스다.

김종필은 결국 킹메이커로 끝났다. 박근혜도 킹메이커나 할 팔자다. 이회창도 킹메이커로는 제법 쓸모가 있다. 그러나 킹은 못 된다. 지금 안철수는 진보 쪽에 붙었고, 오세훈은 셀프탄핵으로 맛이 갔다. 한나라당은 희망이 없다.

보수이고 꼴통인데 주제넘게 킹을 먹겠다면 이런 자는 처치곤란이다. 계륵이다. 사람에게는 정해진 분수가 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손을 내밀었을 때 박근혜는 그 손을 잡았어야 했다. 총리 정도 하고 끝내는 것이 맞았다. 아버지를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나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오바하면 죽는다. 그런데 오바했다. 그리고 꼼짝없이 말라죽을 포지션에 가 있다. 이회창처럼 외연확대 안 되는 고집쟁이 보수에게 이미지 똥칠해주기 만큼 쉬운 일은 세상에 없다. ‘꼴통’

구조론적으로 최악은 에너지원을 밖에 두고 본인이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다. 박근혜의 모든 에너지는 외부에서 왔다. 박정희와 김정일, 이명박이다. 자기 안에 대칭의 두 날개와 축이 풀세트로 갖추어진 시소가 있어야 한다. 에너지의 입구와 출구를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안되면 역사에 의해 이용되고 버려진다.

항상 상부구조가 있다. 역사라 불리우는 에너지의 장이 있다. 그 장이 보이지 않는 손을 움직여 배후에서 조정한다. 박근혜를 1회용으로 쓰고 버린다. 이미 충분히 썼고 이제 버려질 타이밍이다. 2011년에 역사는 저쪽에서 김정일을 버렸고 이쪽에서 박근혜를 버렸다. 그들은 한나라당 비대위의 개혁실험이라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면서 쓸쓸히 퇴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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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1-12-2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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