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실패

‘상대어’를 쓰지 말고 ‘절대어’를 써라. 시소에 세 포지션이 있다면 자신이 탑 포지션을 차지하고, 상대방을 바텀 포지션에 올려태워라. 상대방의 의사를 ‘묻는 자’의 위치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명령하는 자’의 포지션에 서야 한다.

◎ 묻지 말고 명령하라.

상대방 둘을 시소에 태워 서로 경쟁시키되 자신은 심판의 역할을 맡는다. 판정을 내려 둘 중의 한 명을 탈락시키고, 다른 사람을 시소에 태우기를 반복하며 그 방법으로 에너지를 순환시킨다.

중요한건 방향제시다. 무작정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누구를 선택할지 관객이 예측하도록 힌트를 준다. 춘향은 몽룡을 선택하고 변사또를 탈락시킨다. 그 예측게임에 쏠쏠한 재미가 있다.

상대가 한 명 뿐이면? 그 때는 상대를 둘로 나눈다. 상대가 자기 자신과 경쟁하게 한다. 이는 백화점 점원이 손님의 자존심을 긁어 충동구매를 유발하는 전략과 같다.

고객은 ‘가난모드’와 ‘부자모드’로 나뉜다. 고객이 ‘가난모드’를 선택하면 물건을 사지 않지만 그럴 수는 없다. 왜? 그 경우 고객이 백화점에 발을 들여놓은 사실 자체가 오류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고객은 일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이전의 선택을 뒤엎지 않으려 한다. 관성의 법칙이다. 분수에 맞게 재래시장에 가야 하는데, 백화점으로 잘못 왔다는 말인가? 주제파악을 해야한다는 말인가?

이러한 판단은 스트레스를 준다. 고객은 기존의 결정을 뒤엎지 않기 위해 점원이 권하는 비싼 물건을 산다. 이때 백화점측은 ‘지금 고객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택되어 있다.’는 전략을 쓴다.

◎ 결에 따라 결정되어 있다.

백화점 문을 여는 순간, 백화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미 결정되어 있다. 백화점은 일방적으로 고객에게 명령한다. 고객은 자신의 선택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 백화점의 명령에 순종한다.

**

http://gujoron.com/xe/236534


게시판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PUA이론’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여자 꼬시는 기술’이다. 핵심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하고 상대방에게 명령한다. 그 명령의 근거는 기승전결의 결이다. 이 바닥에는 이 바닥의 룰이 있고 그 룰을 따라야 한다. 백화점에서는 백화점의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

재래시장에서 하듯이 덤을 달라고 떼를 쓴다든가, 혹은 가격을 깎아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그라운드에서는 심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법정에서는 판사의 지시를 존중해야 하고,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백화점에서는 점원이 알려주는 유행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 고객 – 너무 비싼데요?

◎ 점원 – 파리 최신 유행의 명령입니다. 고객님에게는 이 옷이 어울립니다.

고객의 선택권은 없다. 이 옷이 어울린다는데 어떻게 하느냐 말이다. 이 옷을 입었으면 무조건 이 백을 들어야 한다는데 어쩌겠는가? 촌각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면 고객은 순종한다.

(백화점의 명령에는 남자들이더 잘 순종한다.명령대로 지갑을 연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 명령이 두려워 다시는 백화점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방법으로 자신을 방어하곤 한다. 남자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방해물이라 할 수 있다.)

그 권위는 구조론의 ‘결’에서 나온다. 결은 ‘최신유행’이라거나 혹은 ‘어울린다’는 미학적 규칙이거나, 혹은 ‘사모님의 품격’이라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판사의 명령처럼 매우 완강해서 고객은 쩔쩔매며 넘어가고 만다.

물론 백화점의 이런 수법에 넘어가지 않는 방어스킬도 있다. 친구와 함께 가거나, 혹은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입수해서 ‘아닌데요? 요즘 뉴요커들은 이런 옷 안 입걸랑요.’하고 되치기를 구사하는 것이다.

‘PUA이론’도 그렇다. ‘저녁에 약속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상대방은 선택해야 한다. 점원이 ‘이 옷을 사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과 같다. 이때 상대는 무언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기분나빠서 강력히 반격한다.

고객은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일단 고개를 저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실패다.

이때 고객은 ‘어쩌나 보자.’ 초식을 구사한다. 일단 ‘NO’를 구사해서 상대를‘동작그만’ 시켜놓고, ‘그래. 니가 한 번 나를 설득해봐. 기회를 주지.’ 하는 삐딱한 태도가 된다. 이미 마음의 문은 닫혔다. 게임종료.

‘사겠습니까?’ 하고 묻지 말고, 상대방에게 기회를 주지 말고 ‘이 옷이 어울리므로 당연히 여기에다 결제사인을 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명령해야 한다. 상대방의 기회를 원초적으로 없애는 거다.

이때의 방법은 다음 카드의 제시다. 이미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그 이벤트가 궁금해서 있는 약속도 취소하고 콜을 부를 밖에. 상황을 OX가 아니라 기승전결로 만든다.

OX를 제시하면 상대방은 무조건 X를 선택한다. 이때 자신과 상대방이 동시에 시소를 타고 있다. 이는 배구시합에서 공을 네트 너머로 넘기면 어떻게든 공은 네트를 넘어 되돌아오는 이치와 같다.

‘기승전결’로 만드는 것은 만남을 다음을 위한 절차로 만드는 것이다. OX는 다음에 결정해도 되고 이번에는 일단 이벤트를 관람하기다. 공간적 선택이 아니라 시간적 전개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공간적 선택으로 가면 상대방은 항상 응수타진형 나쁜 카드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응수타진 들어오면 이미 끝난 거다. 이때 이쪽에서 어떤 방식으로 응수해도 상대의 답변은 무조건 NO로 결정되어 있다.

응수타진의 묘미는 그 상대방의 응수를 ‘가볍게’ 눌러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그렇다면 고객님. 이 옷은 어떻습니까?’하고 ‘다른옷권유카드’로 응수해도 통쾌하게 ‘NO!’를 외칠 때 짜릿한 거다. 그래서 무조건 NO다.

점원은 그 물건을 살까말까 OX판단이 아닌, 그 물건을 사고 난 다음 ‘어떻게 그 물건을 관리하는가’를 판단하게 하는 방법을 쓴다. 역시 상황을 기승전결의 시간적 전개로 몰아가는 것이다. 고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저녁에 약속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여자는 남자를 선택해야 하는 부담을 지므로 당연히 NO를 구사한다. 그 절차를 생략하고, 당장 ‘피자와 스파게티’ 중에 하나를 결정하라고 하면 부담이 없다. 그것이 상황을 게임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게임은 역시 기승전결의 결을 따르는 것이다. 상대가 피자로 나오면 피자에는 뭐가 어울린다로 받아주면 되고, 햄버거로 나오면 햄버거에는 뭐가 어울린다로 받아주면 된다. 역시 다음 단계를 제시하는 기승전결이다.

백화점에서 옷을 살까말까 판단이 아닌, 뉴요커들의 최신유행에 맞추려면 그 옷에 어떤 핸드백이 어울리느냐를 판단하도록 유도해서 기승전결로 밀어붙이는 것과 같다. 그 남자를 선택할까 말까가 아닌, 그 남자와 어떤 음식을 먹으면 거기에는 어떤 음료수가 적당하고, 어떤 분위기가 맞는지를 학습하도록 계속 밀어붙이는 것이다.

◎ 보통남 – 저와 만나겠습니까?

◎ 작업남 – 이 음식에는 이 음료수가 맞고, 이 분위기가 맞고, 그 다음에는 이 까페가 공식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쩌구 저쩌구.. (계속 진도 나가준다.)

‘여자 꼬시는 기술’이 있다면, 작가에게는 ‘독자 꼬시는 기술’도 있을 것이고, 정치가에게는 ‘국민 꼬시는 기술’도 있을 것이다. 국민을 잘 꼬시는 당이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것은 뻔하다.

구조론의 스킬을 쓰면 승리는 예약되어 있다. 작업남은 여자의 마음을 열 수 있고, 백화점은 고객의 지갑을 열 수 있고, 작가는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고,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심을 열 수 있다.

간단하다. 게임을 만들면 된다. 역할을 주고 명령을 내리면 된다. 진도 나가주면 된다. 문제는 그 게임을 자신이 직접 설계해야 한다는 거다. 자신이 설계한 게임에서는 창작가의 권위가 있다. 그 권위를 행사하면 된다.

공지영은 실패했다. 국민을 꼬시지 못했다. 팔로워들을 꼬시지 못하고 그들의 반발을 쌌다. 상대방에게 공을 토스하는 오류를 저지른 거다. 명령하지 않고 질문했다. 자신이 설계한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의 시소에 올라타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자기 견해를 말하는 사실 자체가 상대의 응수를 재촉한다는 점에서 질문과 같은 것이다. 엉겁결에 공을 떠넘긴 것이다. 자기 안에서 공을 돌려야 했는데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http://gujoron.com

drkim's profile image

drkim

2012-02-12 14:11

Read more posts by thi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