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에 대한 느낌

** 모 귀농 사이트에서 본 어떤 산적 아저씨. (특정인에 대한 이야기 아님. 유사한 예 많음.) 그 사람은 경상도 두메 산골에서 법질서 위반하며, 마초꼴통 과시하며, 배짱 편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깊은 산골에 자기만의 독립왕국을 만들어놓았다. 집도 짓고, 땅도 개간하고, 과수도 키우고 멧돼지도 잡고, 개도 때려잡고, 욕도 잘 하고 유유자적 즐겁게 잘 산다. 문제는 사이트에서 왕따를 당한 거다.

그는 억울해했다. 자신은 잘못한게 없는데. 내 산에서, 내 땅에서, 내 집에서, 내가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웬 시비야? 법이 어떻다고? 할말 있으면 해발 천미터 산꼭대기까지 기어올라와서 따져봐.

근데 문제가 생긴다. 그 사람은 피해자인 척 했다. 내가 이렇게 즐겁게 사는데 사실은 니들도 부럽잖아? 그래서 시샘하는 거잖아? 그래서 나 왕따시키잖아? 액면으로는 그 사람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혼자 즐겁게 살려면 왜 귀농사이트에 들락거리며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려고 하느냐 말이다. 무인도에서 벌거벗고 혼자 사는 어떤 일본인처럼 그냥 혼자 잘먹고 잘 살면 되는데 왜?

중요한건 그 사람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거. 그는 무대뽀였고 배짱이었다. 치명적인건 그럴만 하다는 거. 산꼭대기에서 혼자 사는데 뭐. 남 눈치 볼게 뭐 있냐구. 마초짓을 하든 산적짓을 하든.

나는 생각한다. 그가 무척 외로웠다고. 그렇게 즐거우면 왜 귀농사이트를 기웃거리는가 말이다. 무인도에서 나체로 사는 일본인처럼 그냥 나체로 잘 먹고 잘 살라 말이다. 누가 건드리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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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사이트의 단골 레파토리는 귀농환상을 깨는 거다. 시골에 땅을 사 놓으면 어떤 사람이 와서 거름 쏟아놓고 간다. 항의하면 ‘거 도시사람이 뭘 모르누만. 시골에서는 다 그류.’ 하며 눙치고 넘어간다.

다음에는 고장난 경운기를 갖다 놓는다. 항의하면 ‘시골에서는 다 그류.’ 하고 넘어간다. 더 버티지 못하고 싼 값에 땅을 팔고 물러나면 그 땅은 또다른 도시 귀농호구 아저씨에게 팔려간다. 반복된다.

심지어 간첩신고를 당한 사람도 있었다. ‘엿먹어 봐라’ 이런 거다. 시골에는 좁은 바닥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제왕처럼 사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도무지 공존의 기술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너희 도시 넘들이 이 바닥의 생리부터 배워야 해.’ 이거다. 그들이 갑이다. 치명적인건 그럴만 하다는 거다. 귀농은 포기. 도시사람 떠난다. 시골에서 더 이상 아이울음 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들이 이겼을까? 귀농인들이 텃세 심한 경상도 피하고 다른 지역 선택한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지역이나 다 비슷할 거다. 만약 농촌운동이 활성화 되어 있다면 다를 거다.

농촌에 역량있는 지도자가 있고 농민단체가 장악하고 있다면 귀농인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 그게 없다는게 문제다. 하여간 시골 무법자를 상대하기 위해 귀농인들이 찾아낸 방법은 집단귀농이다.

10만평 정도의 땅을 싸서 100여가구 이상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거다.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이건 대단한 지도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시골텃세는 계속되고 귀농인들의 하소연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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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의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한이 없는 거고, 그런 일은 도시에도 있을 수 있는 거고. 문제는 그 배짱 편한 산적 아저씨를 통제할 수 없다는 거다. 근데 말이다. 통제되는게 좋지 않을까?

남녀가 결혼하는 것은 서로 상대방에 의해 통제되기를 허락함이다. love의 어원은 버린다leave는 뜻이다. 감시를 그만두는 건데 떠난다는 의미로 발전하고 떠나도 좋다, 허락한다, 사랑한다가 되었다.

약탈혼 하던 게르만이 겨울나기 숙영지에서 봄유목을 떠나기 전 여성을 납치하여 숲으로 도망친 다음 한달동안 꿀 먹고 사는 것이 허니문이다. 한 달이 지나면 신부 오빠들이 찾기를 포기하고 목축을 떠난다.

다 떠나고 없으면 여성을 감시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통제되기 때문이다. 통제할 필요가 없어져서 통제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통제권 안에 들어가는 거다.

이미 통제권 안에 있으므로 표나게 통제하지 않는다. 근데 그 산적 아저씨는 통제되지 않는다. 통제권 바깥에 있다. 산꼭대기에 산다. 자유롭다. 좋다. 그런데 외롭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사이트에서 사람들과 다투고 왕따를 당하고 억울해 한다. 경상도의 지형을 보면 그렇다. 허파꽈리처럼 생겨서 입구를 막아버리면 외부인이 접근 못한다. 자기만의 왕국에서 배짱편하게 사는 거다.

근데 말이다. 그게 과연 자신에게 이득이 될까? 그게 손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 산적 아저씨 찌질대는 것만 해도 그렇다. 배짱편하게 산대매? 신났대매? 자유롭대매? 즐겁대매? 다 부러워 한대매?

근데 왜 왕따당하고 징징거려? 서로의 통제권 안으로 들어가서 서로에게 통제되면서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다.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좋은 친구를 얻게 된다. 배짱편하지 않아야 한다.

예전에 한강변 전망좋은 곳에 별장 구하기 붐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멋진 시골에 멋진 별장을 지어놓고 도시 친구들을 초대하면 아무도 안 온다. 그 별장 팔아치우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왜? 주인이 배짱편하게 살기 때문에 안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와서 다들 감탄하고 부러워 한다. 좋구나 좋아. 그런데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 환상은 깨진다. 호숫가 안개는 폐에 나쁘다.

부부간에도 어느 한쪽이 배짱 편하게 되는게 깨지는 원인이다. ‘내가 이러면 니까짓게 어쩌겠냐?’는 식이다. 손님 앞에서 주인이 긴장해야 한다. 손님이 갑이어야 한다. 음식 맛있다고 손님 무시하는 식당에 나는 안 간다.

부동산 격언에 ‘무인도는 절대 사지 마라’는 말이 있다. 고립된 섬의 가치는 오르지 않는다. 팔리지도 않는다.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어떤 이익이 아니다. 실리가 아니다. 현찰이 아니다. 구조다. 시스템이다. 과감하게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안에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있다. 구조 안에서 자신을 단련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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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오판으로 망하고 보수는 로또로 망한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진보는 시스템을 건설하고 보수는 기존의 시스템을 운용한다. 진보는 상부구조를 구축하고 보수는 하부구조에서 효율을 얻는다.

진보가 오판하는 이유는 상부구조의 건설 곧 시스템 구축에 방해되는 요소를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제성장은 임금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노조결성에 방해가 된다. 경제성장은 진보에 좋지 않다는 식으로 된다.

그런데 과연 경제성장=진보실패인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실제로는 반대다. 경제성장해야 노조도 결성된다. 경제성장이 반드시 노조에 유리한건 아니지만 하나의 기회는 된다. 기회를 살리는건 각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결론적으로 진보는 시스템건설에 방해되는 외부의 불안요소를 잠재우려 하고 그 결과는 수동적, 퇴행적, 대안부재, 소극적, 현장경험축적 기회 상실, 비현실로 가서 고립되고 마는 것이다. 수족이 다 잘린다.

반면 보수는 상부구조를 건설하려들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에 비해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빼먹을 곶감을 빼먹기 바쁜데 뭐하러 구조를 세팅하느냐 말이다. 근데 그 경우 점차 총과 칼의 대결이 된다.

처음에는 칼이 이긴다. 진보는 총이 있지만 아직 숙달되어 있지 않다. 칼은 빠르다. 총이 재장전 하는 사이에 칼이 총을 이긴다. 근데 점차 운이 나빠진다. 진보의 총은 점점 숙달되고 보수의 칼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 경우 보수는 처음 운으로 이긴다. 진보가 허점을 보이면 그걸 찌르는 거다. 정동영, 정청래, 김용민, 노무현.. 전부 말 시비를 당했는데 허점을 찌른 거다. 늘 자객질만 하다가 결정적인 찬스에서 허점을 못 찾아 진다.

보수는 점차 자신의 확률을 까먹어서 지는 거다. 이번에는 조동원 같은 계룡산 도사 덕에 살아남았지만 갈수록 계룡산 도사에 의존하고, 진정성 없이선거전문가에만 의존하다가 손과 발이 조금씩 잘려나가서 진다.

왜 우리가 진보를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머리 좋은 사람은 진보로 모이기 때문이다. 보수쪽에 모인 사람은 대부분 현장에서 뭔가 실적을 인정받았는데 그 만큼 사회적인 대우를 못받고 있다는 사람들이다.

지리산 산적처럼 자기는 신나게 잘 사는데 사회가 인정을 안해준다는 거다. 근데 원래 그딴거 인정 안 한다. 외롭다는걸 들키기 때문이다. 그래 혼자 잘 사는데 어쩌라고? 인간과 어울리는 기술이 없다. 그들은.

진보는 오판해도 시스템을 만들고 인간과 어울리는 기술을 늘려나간다. 보수는 현실에 맞게 잘 판단해도 결국 자신의 수족을 자르고 고립된다. 사람을 잃는다. 경상도가 배짱편한 고립주의로 얻은 것은 없다.

미국도 한 동안 지리산 산적처럼 고립주의로 가서 저 혼자 노예지배하며 신나게 잘 살았다. 20세기 이 대명천지에 인종차별하며 잘 먹고 잘 살았다. 무례했다. 그러다 외로우니 다시 도시를 기웃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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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2-04-1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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