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게 점점 나빠진다. 그래도 약간의 불씨는 살아있다. 희망고문은 계속된다. 한때는 15퍼센트 안팎의 지지율로 야권의 대선 기대주였다. 그 기대를 등에 업고 참여당을 창당했으나 좌초하고 말았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고 이후 내리막길이었다. 경기도 지사 도전 실패, 김해을 보선에서 이봉수의 실패 그리고 진보당에 참여했으나 거기서도 당권파에 밀렸다. 민주당에게도 철저히 씹혔음은 물론이다.

한 1년쯤 해외에 나가있는게 좋다고들 말하지만 대선이 코앞이다. 유시민은 의연하게 싸우지만 지켜보는 사람은 안타갑다. 사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때그때 필요한 역할은 했다.

당시 패배주의에 빠져 복지부동하던 민주당을 독려하려면 참여당이 필요했다. 이후 야권연대를 성사시켰다. 지금도 그렇다. 필자라면 다때려치우고 훌쩍 떠나버리겠지만 유시민은 혼자 애쓰고 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어떤 것이었나?

손학규가 설치던 당시의 민주당은 너무 오른쪽이었고 민노당은 너무 왼쪽이었다. 당시로는 참여당의 포지션이 적절했다. 한나라당도 싫고민주당도 싫다는 중도유권자에게 참신한 대안이 될 수 있었다.

너무 절묘한 위치에 있었던게 패인이다. 왜냐하면 이후 정치판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판이 흔들릴 때는 가장 좋은 자리가 오히려 나쁜 자리가 된다. 이명박의 삽질이 너무 심했던게 치명적이었다.

이명박의 악행으로 대체세력인 민주당이 뜨는 분위기였고, 그 분위기가 민주당에게 지자체선거 승리를 안겨주었지만 참여당은 입지가 없었다. 무엇인가? 18대 총선결과로 보면 참여당 입지가 있었다.

선진당, 친박연대, 무소속 등 잡탕들이 설치는 판에는 참여당이 대안세력이 된다. 그러나 이후 상황이 변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참여당의 영남일부 교두보 확보는 큰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양극화다. 상황이 첨예해지면 중간은 입지가 없다. 유권자들은 길게 보고 참여당을 키우느니 당장 이명박을 심판하려고 했다. 선진당, 무소속, 참여당 등 애매한 포지션은 중간에서 협살에 걸렸다.

문제는 그 이후다. 오세훈의 삽질, 나경원의 생쇼에 박원순의 승리, 나꼼수의 활약으로 거대한 좌향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유시민은 휩쓸렸다. 민노당과 합친게 총선 참사로 나타났다.

무엇인가? 유시민은 반 박자씩 늦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전에는 폐족으로 몰려 활동을 못했고, 이후 약간씩 늦었는데 참여당 실패 이후 이번에는 크게 앞질러가서 기다린게 또 패착이 되었다.

정치는 유권자보다 한 걸음 앞서가서 기다려야 한다. 유시민은 유권자를 반보 뒤에서 따라가다가 이번에는 앞질러간 것이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유권자가 변덕을 부려서 뒤로 되돌아가 버렸다.

참 재수 더럽게 없다. 유시민은 열심히 했다. 당시로는 그 분위기, 그 흐름에 맞는 역할을 했다. 다만 판이 요동친게 패인이다. 이런 꼴 안 보려면 꾹 참고 한쪽 구석에서 강태공처럼 기다리는게 맞다.

박원순이 그렇다. 가만있다가 파도가 밀려오자 냉큼 올라타 버렸다. 그러나 유시민은 파이터다. 유시민 말고 그만큼 움직여줄 사람도 없다. 아무도 안하면 누구라도 해야 한다. 유시민 밖에 없었다.

박원순은 용케 흐름을 탔지만 모든 사람이 박원순처럼 때만 기다리고 있으면 그것도 곤란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에너지가 외부에서 왔기 때문이다. 첫 번째 파도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형성된 에너지고, 두 번째 파도는 스마트 붐으로 형성된 나꼼수 에너지고, 셋째 파도는 박근혜 대선 에너지다.

자기가 주도적으로 만든 흐름이 아닐 때 그 흐름에 올라탄다면 위험하다. 야생마의 등에 올라탄 꼴이 된다. 시소의 축을 장악하든지 아니면 날개에 서서 때가 올 때까지 가만이 엎드려 기다리든지다.

항상 그렇다.

가만 있으면 욕은 먹지 않는다.
근데 다 죽는다.
살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격으로 얻어맞는다.
유시민은 적극적으로 맡겨진 시대의 소임을 했고
그러다보니 반박자 뒤쳐지게 되었고
이번에는 과감하게 반박자 앞질러 갔는데 흐름이 바뀌었다.

유시민은 흐름에 맞게 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았고 박원순은 놀았는데도 결과가 좋았다. 총선이 끝나자 논객들도 태도를 바꾸고 좌표를 수정한다. 안철수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그냥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게 오히려 확률을 높이는게 아닐까? 지금처럼 판이 요동칠 때는 말이다. 박원순이 가만이 기다려서 크게 먹었듯이 좌표수정 하는것보다는 그냥계속 가는게 낫지 않을까?

시류를 읽는다며 중간에 방향 바꾸면 죽음이다. 나꼼수든 뭐든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한다. 나꼼수는 계속 나꼼수답게 치고나가야 한다. 판은 또 요동친다. 박근혜 진영이 계속 잘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과거에고 그랬지만 별 일이 다 일어난다. 미리 결과를 예단하고 넘겨짚고 거기에 맞추어 행동하면 언제나 뒤통수를 맞는다. 기회가 오면 잡으면 되고 안 되면 기다릴 뿐이다. 방향 바꾸지 말고 계속 가는 거다.

운으로 먹는 넘은 운으로 먹고, 실적으로 먹는 넘은 실적으로 먹는데, 중간에서 헷갈리는 넘은 사망이다. 유시민은 결과적으로 얻은게 없지만 실적은 있으니까 언젠가는 보답을 받는다.

유권자가 우향우 했다고 덩달아 우향우 하면 패착이다. 판은 요동친다. 바람의 방향은 바뀐다. 이번 일이 유시민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치만사 새옹지마다. 결대로 가는게 낫다.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거다.

문재인이 지고 안철수가 뜨지만 그런 바람을 쫓으면 좋지 않다. 진작에 안철수에 붙어서 투자해놓고 기다린 작전주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좀 뜬다고 우르르 몰려가는 개미는 언제나처럼 개털 된다.

지금 상황이 이러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자는 언제나 낭패를 당할 뿐이다. 상황논리를 버리고 포지션 논리로 바꿔야 한다. 확실한 자기 포지션을 차지하는게 먼저고 다음 시대가 그 포지션을 필요로 할때까지 기다리는게 맞다. 영영 시대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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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의 시대는 끝났다. 인터넷 논객들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 때가 좋았다.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세태가 그렇다고 거기에 맞추어 어줍잖은 변신을 하기 보다는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는게 맞다.

영원히 시대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런거고, 만약 시대가 우리를 필요로 하여 약간의 역할을 남겨두었다면 좋은거고.

축을 장악하면 이깁니다.

만약 축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확실한 자기 포지션을 차지하고 때를기다리는 자가 이깁니다.

그렇게 해서 영원히 기회가 오지 않을수도 있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비가 오면 일시에 피어나는

사막의 꽃들처럼 기다리는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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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2-05-06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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