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답 2
어제 올린 ‘한국의 정답’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승만은 미국을 끌어들였고, 박정희는 일본을 끌어들였다.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의 힘을 이용했다.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였다. 이들은 모두 외세를 끌어들였지만 계속 외세에 의존하지만은 않았다.
혹은 의존하지 않는 척 연기를 해야 했다. 혹은 단절하지 못하고 망했다. 이승만은 계속 의존하다가 망했다. 김일성은 의존하지 않는 척 연기하느라 주체사상을 만들었다. 박정희는 자주국방을 떠들었다.
쇠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끊어진다. 외세에 의존하면 그 부분이 약한 고리가 된다. 모두들 그 약한 고리를 끊어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제히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노회한 정치꾼은 정적이 배후세력과 연계되어 있다고 모함한다. 대표적인 피해자는 타의로 해외를 떠돌아야 했던 김대중 대통령이다. 친일이든, 친미든, 친북이든 그 수사에는 모함의 의도가 있다.
애초에 그러한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구조로 말하면 세팅단계와 작동단계다. 플랫폼을 세팅할 때는 외부의 힘을 빌려야 한다. 자동차도 외부에서 운전자가 탑승하고 시동을 걸어주어야 한다. 플랫폼이 세팅된 다음에는 자기 힘으로 주행해야 한다.
◎ 세팅단계 – 개방하고 외부의 힘을 빌려라.
◎ 작동단계 – 독립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라.
◎ 완성단계 – 안에서 완성하고 밖으로 나아가라.
먼저 밖으로 개방하고 다음 안으로 자주하며 다시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기승전결과 같다. 단지 개방만 하거나 단지 자주만 외친다면 곤란하다. 반드시 꼬이고 만다. 다음 단계로 진도나가야 한다.
승부에 임하여 사람들은 일단 바깥의 도주로부터 확보하려고 한다. 배수진을 말하지만 실제로 배수진으로 성공한 사람은 없다. 도주로가 없으면 불안해서 싸우지 못한다. 한신도 양동작전으로 이겼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면 안심하게 된다. 이때 무리가 구름처럼 모여들지만 같은 속도로 붕괴한다. 호기심은 금방 실망으로 바뀐다. 반드시 내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동물과 다를바 없다.
문을 열면 사람이 모이지만 같은 속도로 흩어진다. 정치인이 캠프를 차리면 각지에서 고수를 자처하며 인걸이 모여들지만 그들은 번개처럼 침뱉고 떠난다. 그들은 모두 선점권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몽준이 대선캠프를 열자 무리가 구름처럼 모였으나 김흥국, 김민석이 상석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모두 욕하고 떠났다. ‘김민석 다음 타자는 누구냐’ 하고 언론들이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첫차가 막차였다.
인간은 배신한다. 인간을 탓할 일이 아니다. 개업집 효과다. 먼저 와서 터 닦으려 했는데 이미 친노가 터를 닦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반노로 돌아섰다. 60퍼센트 지지가 16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그게 2002년의 일이다. 딱 10년 전이다. 지금 안철수도 다르지 않다. 무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지만 윤여준, 박경철이 침발라 놓았다는 사실을 알고 다들 떠난다. 그것이 두려워 안철수는 미적댄다.
인간의 정치본능은 신분상승 욕구다. 내부에서 답을 찾는다는 것은 곧 내부승진을 의미한다. 외부에서 낙하산이 계속 들어오면 곤란하다. 외부의존은 나약한 태도로 보이고 자신감 부족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도 처음 DJ와 정몽준의 힘을 빌었지만 바로 정몽준 보내고 DJ와도 간격을 벌렸다.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은 자기 세력을 만들어 독립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계속 DJ우산 밑에 있었다면 역시 씹히고 만다. 두 사람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은 매우 손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후이기는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친노세력 형성에 성공했다.
밖에서 교두보를 얻은 다음에는 반드시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안에서는 신통한 답이 나와주지 않는다.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 하고 신토불이를 떠들어봤자 점점 코미디로 변해갈 뿐이다.
그때의 방법은 앞서가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젊은 세대를 키웠다. 2~30대의 지지를 끌어내고 IT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만화와 영화 등 문화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스마트시대와 맞아떨어졌다.
러시아 혁명기에 그들은 자기네들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다고 믿었다. 혁명이 다른 나라로 수출되어 세계 모두가 혁명을 하게 되고 그들은 선점권,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나중에 허상으로 밝혀졌지만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일정부분 성공한 것이다. 러시아는 2차대전 후에 동유럽을 정복하고 실제로 선점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곧바로 그들은 고립되었다.
모택동도 문화혁명기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다고 믿었다. 서구의 히피세대가 호응해 주었다. 동남아와 중남미로 혁명을 수출하기도 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들만의 환상이었지만 기능했다.
3단계가 있다. 외부에서 답을 찾은 다음 내부에서 실력을 기르고 다시 외부로 뻗어나가야 한다. 징기스칸도 금나라에 잡혀있으며 전술을 익혔고 몽골을 통일하여 힘을 길렀고 다시 외부로 진출했다.
외부의존도 안 되고, 내부고립도 안 되고, 외부에서 내부로 왔다가 다시 외부로 가야 한다. 그것이 구조의 1 사이클이다. 기승전결의 절차다. 밖에서 시동걸고 안에서 운전하여 밖으로 진출한다.
한국의 실정은 어떤가? 아직도 친미니 반미니 하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친미는 시동만 걸고있고 반미는 운전만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는 결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다시 진도나가야 한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어야 한다. 김어준이 먹힌 것은 그 시점의 딴지일보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었고 지금의 팟캐스트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기 때문이다. 첨단에 서 있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고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뒤처져있다. 남이냐 북이냐가 아니라 세계최고와 세계최악의 관계다. 이런 구조를 전제로 해야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북으로 뻗어가지 못하고 그냥 대등하게 공존한다는 구상은 환상에 불과하다. 역사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세계사를 펼쳐놓고 첫페이지부터 끝페이지까지 보라. 그런 일은 없다.
주도 아니면 종속이다. 햇볕은 다음 단계로 밟아가기 위한 절차일 뿐이다. 햇볕하기 위한 햇볕은 없다. 북한은 우리가 장차 중국과 러시아와 몽골과 동유럽으로 뻗어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북한에 집착한다면 곤란하다. 우리가 먼저 세계를 아우르는 시선을 먼저 획득한 다음에 북한을 바라보아야 한다. 선세계전략이 나와야 하고 그 울타리 안에서 후대북전략이 나와주어야 한다.
세계전략 없는 막연한 대북전략은 그냥 뻘짓이다. 북한은 우리의 형제나 이웃이 아니라 우리가 세력전략이냐 생존전략 중에서 선택하는 갈림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점을 정확히 짚었다.
동북아 중심국가론이다. 그 울타리 안에서 북한을 이용하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의 결혼상대자가 아니라 뚫어야 할 길이다. 산이 길을 막으면 뚫고 가는 거다. 전쟁하지 않고 현명하게 뚫어야 한다.
세계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대북전략을 논하므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러시아의 천연가스와 몽골의 석탄을 쓰며 중국에 팔아치운다는 전제로 북한을 논해야 한다. 세계로 가는 관문을 열어야 한다.
친미든 반미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절차다. 친미가 목적이 되거나 반미가 목적이 되면 곤란하다. 무언가를 반대하는 것은 저항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목적이 되면 마이너 집단이 되고 만다.
정리하자. 국수주의로 가도 안 되고 사대주의로 가도 안 되고 절충주의로 가도 안 되고 부분개방으로 가도 안 된다. 정답은 첫째는 바깥으로 여는 것이고 다음은 안으로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선개방 후내실이다. 개방단계는 외부의 힘을 빌리고 내실단계는 다시 내부의 힘을 기른다. 거기서 멈추지 말고 외부로 뻗어나가야 한다.
세계 보편의 가치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외부의 것을 들여와서 내부에서 자기것으로 소화한 다음에 다시 그것으로 외부를 접수해야 한다. 한국은 인류라는 무대에서 한 명의 배우다. 무대를 의식해야 한다.
외부를 의식해야 한다. 지나친 국수주의, 편협한 민족주의는 무대에 오르기를 거부하는 겁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반미하기 위한 반미, 반북하기 위한 반북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무대공포증에 불과하다.
외부로 나가야 한다. 무대에 올라야 한다. 그러나 무대에 오른 다음에는 자기 연기를 해야 한다. 거기서 무대청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사대주의, 친미주의는 무대에 올려놨더니 무대청소 하고 있는 거다.
무대에 올라야 하고 자기연기를 해야하지만 그냥 연기에 빠져있기만 해도 곤란하다. 관객과 소통해야 한다. 자기안에 있는 것을 전부 토해내야 한다. 신토불이 어쩌고 하는건 무대 위에서 자아도취에 빠진 거다.
배우는 관객을 휘어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관객이 원하는 연기 말고 자기의 고유한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관객이 유행가를 원한다고 유행가나 부르고 있으면 곤란하다. 적극적으로 관객을 리드해야 한다.
무대에서는 배우가 왕이다. 관객은 졸이다. 왕은 왕다워야 한다. 그러나 자기세계에 빠져 있으면 곤란하다. 관객은 배우의 변신을 원한다. 매번 같은 연기만 반복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관객의 기호를 읽어야 한다.
배우는 매번 새로운 연기를 해야하고 그러려면 시대의 첨단을 달려야 한다. 김어준이 딴지일보만 계속하면 곤란하다. 팟캐스트로 바꿔야 한다. 그러한 변신은 자기의 과거로 가는게 아니라 미래로 가는 것이다.
이문열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세계를 고집하고 자신의 과거로 달려간다. 진정한 작가는 관객을 이끌고 함께 미래로 나아간다. 그러려면 자기 스타일을 완성한 다음에 세계의 스타일과 접목시켜야 한다.
한국은 한국스타일을 만들어 세계의 주목을 끈 다음에 한국의 고유한 가치와 세계의 가치를 접목시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끝없이 새로워져야 하며 그것은 첨단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기기로 세계를 리드해 보여야 한다. 신중현은 록음악에다 우리의 전통음악을 접목시켰지만 과거로 가지 않았다. 기승전결이 있다. 세계의 중심으로 가야 한다.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스타일로 가야 한다. 자기스타일을 완성한 다음에는 관객을 리드해야 한다. 그러려면 변신해야 한다. 변신하려면 첨단해야 한다. 첨단하려면 보편해야 한다. 정답은 그곳에 있다.
1) 밖으로 나아가 개방으로 세팅하기.
2) 안으로 들어와서 코어를 형성하며 자기스타일 완성하기
3) 다시 밖으로 나아가 자기스타일로 관객을 이끌고가기.
4) 관객의 기호변화에 대응하며 지속적으로 변신하기.
5) 변신하기 위하여 인류문명의 첨단에 서기.
바보같은 친미반미 논쟁 버리고, 친북반복 논쟁 버리고 이러한 절차를 밟아가야 한다. 옹졸해지지 말아야 한다. 소아병 극복해야 한다. 지금은 1만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이 무대 위에서 조명받는 타이밍이다.
이 기회 다시 없다. 한국의 유일한 장점은 인간존중이다. 인간존중은 동시에 인간차별의 양면성을 가진다. 차별의 단점을 극복하고 존중의 장점을 살려나갈 때 세계는 우리를 주목하고 따라오게 된다.
한국인은 형님 동생 따지며 매우 정밀하게 인간차별을 할줄 아는 나라다. 이는 반대로 매우 정밀하게 인간존중을 할줄 안다는 뜻도 된다. 그러한 문화는 원래 중국의 발달한 차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중국인들은 차를 빻아서 말차로 먹거나, 거기다가 색을 넣거나, 밥을 비비거나 하여 개판으로 먹었는데, 어느 순간에 차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차를 인간존중 문화의 수단으로 발달시켰다.
과거제도가 없는 일본은 이것이 잘못 나가서 인간감별 도구가 되었다. 일본의 다도는 과거제도가 없으므로 합리적인 인재등용 수단이 없는 봉건 일본에서 숨은 인재를 알아내는 수단이 되었다.
그들은 차를 통해서 인간이 됨됨이를 감별하고 점수를 매겼다. 이는 바보같은 짓이다. 차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킨 것이다. 한국의 선비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단점을 극복해 나갔다.
중국인들은 꽌시라고 해서 사람을 사귈 때는 10년 정도는 기본으로 지켜본다. 10년 동안 온갖 테스트를 해보고 판단을 내린다. 한국인은 성급해서 못참고 나대다가 중국인에게 배신당한다.
한국의 선비문화는 그런 잘못을 바로잡았다. 선비들은 차라는 도구에 얽매이지 않았다. 차를 마실 이유가 사라졌다. 한국은 바닥이 좁고 글읽는 사람이 많아서 사람에 대한 평가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한류드라마란 한국인 특유의 사람평가 교과서다. 미국처럼 실력만 보고 이용하고 버리는 것도 아니고, 중국처럼 10년간 지켜보고 끈끈한 유대를 맺는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형식적인 테스트를 하지도 않는다.
한국인은 죽이 맞으면 단번에 친구가 된다. 이용하고 버리지 않으며 끝까지 책임진다. 일본처럼 고용으로 책임지는게 아니라 선비다운 의리로 책임진다. 거기에 21세기 스마트 시대의 정답이 있다.
작금의 정치적 난맥상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절차로 보면 편합니다.
우리가 지불했어야 하는 통과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진보당의 난맥상과 민주당의 허무함.
속을 단단히 다지지 않고 공짜먹으려 했다는 거죠.
비온 뒤에 땅굳듯이 이렇게 다질 것을 다지고
밟을 절차를 밟고 지불할 비용을 지불하고
또 진도나가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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