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스타일로 세상을 바루자

세상이 바뀌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바뀌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내가 바뀌려면 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 스타일이 바뀌면 상호작용 하는 관계가 바뀌고 관계가 바뀌면 모두 바뀐다.

생각하면 공자든 노자든 석가든 예수든 소크라테스든 성인들은 모두 관계를 바꾸려고 시도한 사람들이다. 지식은 백과사전에 두어도 충분하다. 인격은 데이트 때만 조심하면 충분하다. 도덕은 법질서에 떠넘겨도 충분하다. 진리는 선지자에게 의지해도 충분하다. 정치는 시스템에 떠넘겨도 충분하다. 개인이 지식을, 인격을, 도덕을, 진리를, 정치를 모두 감당하려 든다면 미련하다.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센스다. 센스를 받아주는 것은 관계다. 관계가 비뚤어진 판에 함부로 센스를 발휘하면 뻘쭘해진다. 관계만 바로서야 만사가 형통한다. 주인과 노예로 차별되거나, 남자와 여자로 분별되거나, 흑인과 백인으로 차별하거나, 학벌과 연고로 차별된다면 그것이 관계가 비뚤어진 것이다. 센스를 받아줄 수 없게 된다. 비틀어진 관계를 바루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최소투자로 최대효율에 이르는 길이다. 인간을 다치지 않고 세상을 살린다.

뉴욕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의 잔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가 뭇매를 맞은 모델 나나 구베아를 나는 옹호한다. 관계가 비뚤어져 인간을 다친 예다. 왜 센스를 살려가지 못하나? 왜 사람을 해치려 하나? 대중의 슬픔을 보상할 희생양을 찾는 행동이 아니랄 수 없다. 그 할퀴려 하는 발톱을 보고 몸서리 칠 일이다.

허리케인이 몰아치면 말춤을 추는 것이 정답이다. 그렇다고 탱고를 춘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유머는 어떤 순간에도 정당하다. 어떤 절망적인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돈오스타일이다. 웃음이라도 말이다.

돈오스타일은 끝끝내 인간을 옹호하고, 예술을 옹호하고, 관계맺기를 옹호하고 일체의 통제와 억압에 저항한다. 일체의 유림질을 거부하고, 완장질을 거부한다. 그 따위는 인간억압증후군이 아닐 수 없다. 일체의 텍스트화 된 계율과 도그마와 강령을 거부한다. 이미지를 공유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관계를 맺고 함께 달려갈 뿐이다. 그 달려가는 속도감 안에서 질서는 저절로 얻어진다.

무질서에 에너지를 태우면 상호작용에 의해 질서가 얻어진다. 질서를 위하여가 아니라 상호작용에 의하여라야 한다. 인류의 총체적인 상호작용을 늘리는 결정은 어떤 경우에도 옳다. 대부분의 오류는 잘못된 판단 때문이 아니라 에너지의 부재, 혹은 방향설정의 실패 때문이다. 에너지가 없는 이유는 외부와의 관계맺기에 실패했기 때문이고, 관계맺기에 실패하는 이유는 높은 층위로 올라서지 않았기 때문이고, 올라서지 못한 이유는 존엄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을 통제하는 독재, 인간을 억압하는 폭력, 인간을 바보취급하는 종교에 반대한다. 우파의 파시스트적 억압에 반대할 분 아니라 좌파의 계몽주의적 태도에도 반대한다. 죄없는 사람을 건들지 말고 비틀어진 관계를 바루어야 한다.

◎ 관계맺기로 간다.
◎ 공존과 만남으로 간다.
◎ 상호작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간다.
◎ 날로 새로워지는 현대성으로 결론을 낸다.
◎ 안에서 쥐어짜지 말고 바깥에서 길을 열어간다.
◎ 걸림돌을 치울 뿐 바른 길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 종과 당목이 만날 기회를 주고 물러설 뿐 간여하지 않는다.
◎ 일체의 억압과 통제와 계몽과 간섭을 거부한다.
◎ 안쪽의 내용이 아닌 바깥의 형식을 추구한다.
◎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다.
◎ 행복이 아닌 존엄을 추구한다.
◎ 하부구조가 아닌 상부구조를 바로잡는다.
◎ 내부의 결인 조형적 질서를 찾아낸다.
◎ 완벽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것을 추구한다.
◎ 아카데미파가 아닌 인상주의를 추구한다.
◎ 찰나의 임팩트를 강조한다.

◎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라야 한다.
◎ 수행하기 위한 수행은 하지 않는다.
◎ 필 받아서 절로 흘러 넘치는 수행이 진짜다.
◎ 틀에 박힌 완전성이 아닌 발전하는 가운데의 완전성을 추구한다.
◎ 고정된 틀을 정해놓고 이것만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거부한다.
◎ 떨어진 채로 대기하면서 한 순간의 타이밍을 추구한다.
◎ 공간의 완벽성이 아닌 시간의 완결성을 추구한다.
◎ 비운다며 나태하거나 축 늘어진 상태를 거부한다.
◎ 모범답안보다 전체과정의 경험과 현장의 체험을 중시한다.
◎ 범생이의 안전성보다 모험가의 역동성을 추구한다.
◎ 에너지가 넘쳐야 하고 격한 감정이 있어야 한다.
◎ 비판이 아닌 창의를 통해서 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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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오스타일로 세상을 바루자

세상이 바뀌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바뀌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내가 바뀌려면 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 스타일이 바뀌면 상호작용 하는 관계가 바뀌고 관계가 바뀌면 모두 바뀐다.

생각하면 공자든 노자든 석가든 예수든 소크라테스든 성인들은 모두 관계를 바꾸려고 시도한 사람들이다. 지식은 백과사전에 두어도 충분하다. 인격은 데이트 때만 조심하면 충분하다. 도덕은 법질서에 떠넘겨도 충분하다. 진리는 선지자에게 의지해도 충분하다. 정치는 시스템에 떠넘겨도 충분하다. 개인이 지식을, 인격을, 도덕을, 진리를, 정치를 모두 감당하려 든다면 미련하다.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센스다. 센스를 받아주는 것은 관계다. 관계가 비뚤어진 판에 함부로 센스를 발휘하면 뻘쭘해진다. 관계만 바로서야 만사가 형통한다. 주인과 노예로 차별되거나, 남자와 여자로 분별되거나, 흑인과 백인으로 차별하거나, 학벌과 연고로 차별된다면 그것이 관계가 비뚤어진 것이다. 센스를 받아줄 수 없게 된다. 비틀어진 관계를 바루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최소투자로 최대효율에 이르는 길이다. 인간을 다치지 않고 세상을 살린다.

뉴욕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의 잔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가 뭇매를 맞은 모델 나나 구베아를 나는 옹호한다. 관계가 비뚤어져 인간을 다친 예다. 왜 센스를 살려가지 못하나? 왜 사람을 해치려 하나? 대중의 슬픔을 보상할 희생양을 찾는 행동이 아니랄 수 없다. 그 할퀴려 하는 발톱을 보고 몸서리 칠 일이다.

허리케인이 몰아치면 말춤을 추는 것이 정답이다. 그렇다고 탱고를 춘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유머는 어떤 순간에도 정당하다. 어떤 절망적인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돈오스타일이다. 웃음이라도 말이다.

돈오스타일은 끝끝내 인간을 옹호하고, 예술을 옹호하고, 관계맺기를 옹호하고 일체의 통제와 억압에 저항한다. 일체의 유림질을 거부하고, 완장질을 거부한다. 그 따위는 인간억압증후군이 아닐 수 없다. 일체의 텍스트화 된 계율과 도그마와 강령을 거부한다. 이미지를 공유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관계를 맺고 함께 달려갈 뿐이다. 그 달려가는 속도감 안에서 질서는 저절로 얻어진다.

무질서에 에너지를 태우면 상호작용에 의해 질서가 얻어진다. 질서를 위하여가 아니라 상호작용에 의하여라야 한다. 인류의 총체적인 상호작용을 늘리는 결정은 어떤 경우에도 옳다. 대부분의 오류는 잘못된 판단 때문이 아니라 에너지의 부재, 혹은 방향설정의 실패 때문이다. 에너지가 없는 이유는 외부와의 관계맺기에 실패했기 때문이고, 관계맺기에 실패하는 이유는 높은 층위로 올라서지 않았기 때문이고, 올라서지 못한 이유는 존엄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을 통제하는 독재, 인간을 억압하는 폭력, 인간을 바보취급하는 종교에 반대한다. 우파의 파시스트적 억압에 반대할 분 아니라 좌파의 계몽주의적 태도에도 반대한다. 죄없는 사람을 건들지 말고 비틀어진 관계를 바루어야 한다.

◎ 관계맺기로 간다.
◎ 공존과 만남으로 간다.
◎ 상호작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간다.
◎ 날로 새로워지는 현대성으로 결론을 낸다.
◎ 안에서 쥐어짜지 말고 바깥에서 길을 열어간다.
◎ 걸림돌을 치울 뿐 바른 길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 종과 당목이 만날 기회를 주고 물러설 뿐 간여하지 않는다.
◎ 일체의 억압과 통제와 계몽과 간섭을 거부한다.
◎ 안쪽의 내용이 아닌 바깥의 형식을 추구한다.
◎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다.
◎ 행복이 아닌 존엄을 추구한다.
◎ 하부구조가 아닌 상부구조를 바로잡는다.
◎ 내부의 결인 조형적 질서를 찾아낸다.
◎ 완벽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것을 추구한다.
◎ 아카데미파가 아닌 인상주의를 추구한다.
◎ 찰나의 임팩트를 강조한다.

◎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라야 한다.
◎ 수행하기 위한 수행은 하지 않는다.
◎ 필 받아서 절로 흘러 넘치는 수행이 진짜다.
◎ 틀에 박힌 완전성이 아닌 발전하는 가운데의 완전성을 추구한다.
◎ 고정된 틀을 정해놓고 이것만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거부한다.
◎ 떨어진 채로 대기하면서 한 순간의 타이밍을 추구한다.
◎ 공간의 완벽성이 아닌 시간의 완결성을 추구한다.
◎ 비운다며 나태하거나 축 늘어진 상태를 거부한다.
◎ 모범답안보다 전체과정의 경험과 현장의 체험을 중시한다.
◎ 범생이의 안전성보다 모험가의 역동성을 추구한다.
◎ 에너지가 넘쳐야 하고 격한 감정이 있어야 한다.
◎ 비판이 아닌 창의를 통해서 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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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Moon)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머리 속에 집어넣고 다녀야 하는 지식, 도덕, 예의, 교양 따위 무거운 것들이 아니라 외부로 소통하게 하는 가벼운센스입니다. 태풍이 몰아쳐도 포즈를 취할 수 있는 용자가 필요하고, 폭풍우 가운데서도 말춤을 출 수 있는 유머가 필요합니다. 그 센스를 먹어주게 하는 것은 관계입니다. 그 관계를 바루는 것은 스타일입니다. 한 사람의 스타일은 김기덕 감독처럼 따돌림 되기 딱 좋지만, 만 사람의 스타일은 세상을 바꿉니다. 그 스타일의 시조는 육조 혜능이고 그 이전에는 죽림칠현입니다.

http://gujoron.com/xe/?mid=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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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2-11-0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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