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돈오정치

커피는 잔이 있어야 하고, 잔은 잔받침이 받쳐주어야하고, 잔받침은 테이블이, 테이블은 건물이, 건물은 대지가, 대지는 지구가, 지구는 중력이.. 계속해서 신(神)까지 간다. 결론은 신이 도와줘야 한다는 거.

안철수는 문제는 담아낼 잔이 없었다는 거다. 상부구조가 없었다는 거, 질이 부족했다는 거. 커피는 있다. 정치개혁이라는 콘텐츠가 있고 IT 전문가라는 콘텐츠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담아낼 잔이 없다.

잔을 먼저 만들고 커피를 나중 만나야 한다는게 돈오의 논리다.

안철수의 승산은 전혀 없었는가? 아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이 시스템을 갖춘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빠른 의사결정능력으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외부의 힘을 끌어와야 한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가져오거나, 북한의 핵을 폐기하거나, 토륨발전소를 짓거나, 오바마와 친구먹거나, 김정은을 굴복시키거나 따위의 거창한 외부의 건수를 가져왔어야 했다. 물론 현실성은 약하다.

절대적으로 배후에 무언가 있어야 한다. 안철수는 외교, 안보, 자원 중심으로 거대공약을 내세워서 10퍼센트 이상의 지지도 격차를 벌린다음 열성지지자 10만을 모아 민주당사로 쳐들어갔어야 했다.

현실은 어떤가? 안철수 펀드는 목표의 반밖에 채우지 못했다. 결국 질이 좋지 않았다는 거다. 당이 받쳐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열성 지지자도 확보하지 못했다. 배후의 지원군이 갖추어야 할 질이다.

정치인 안철수의 두달동안 행보는 썩 좋지 못했다. 한 마디로 정치를 몰랐다. 정치의 세계는 역설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정치판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게 유도해야 한다.

우리가 보안법 철폐부터 남북문제나 87년체제 청산을 속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먼저 말을 꺼내는 쪽이 지는 구도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안법 철폐는 새누리당이 주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핵폐기는 북한이 먼저 제안하게 유도해야 한다. 87년 체제 청산은 새누리당이 시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쉽지는 않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 늙은이들의 무관심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새누리당도 정치개혁 어쩌고 하며 제안하고 있으니 소기의 성과는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네거티브를 못하도록 새누리당의 동선을 일부 묶은 거다. 안철수의 정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신고식을 거하게 했다. 구조론으로 보면 돈오가 정답이다. 점수는 안 쳐준다. 안철수가 정치개혁을 빌미로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했다면 점수가 된다. 반면 지금껏 쌓아온 이미지로 대한민국을 크게 한 번 들었다 놓으려고 했다면 큰 울림을 일으킨 셈이다. 큰 만남을 이루어 큰 소리를 낸 것이다.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만남을 연상시킨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좋은 친구였다. 나는 안철수가 뛰어난 총리보다는 누군가의 좋은 친구가 되기를 소망한다. 재능은 뛰어나다는 평 보다는 사람은 좋다는 평을 듣기를 원한다.

나는 안철수가 신이 그를 그 자리에 세웠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한다. 운명이 문재인을 그리로 인도했듯이.

화두는 살아있다. 이 시대에 깨달음의 정치가 필요하다. 문안콤비의 예절바름과 새누리떼의 악다구니를 대비시킬 때 그것은 가능하다. 그들은 아직 전여옥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성주 행태만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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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뒤집으면 역설이지만 두번 뒤집으면 법칙입니다. 안철수의 정치는 좁게 보면 의표를 찌르는 타이밍 정치지만, 크게 보면 필요한 때 나타나서 도움주고 떠나는 급시우 송강의모습입니다. 안철수가 정치판에 던진 화두를, 깨달음의 불씨를어떻게 살려나가느냐는 우리의 몫입니다.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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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2-11-2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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