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종류 같은건 없다. 깨달음의 여러 스타일 같은건 없다. 시의 형식은 하나 밖에 없고, 소설의 형식 역시 하나 뿐이며, 그림의 형식 역시 하나 밖에 없고, 음악의 형식 역시 하나 뿐이다.
어떤 형식이 나오면 그걸 비틀어 여러 가지 개성있는 모양들을 만들어내곤 하지만 그딴건 찌질한 거고 안 쳐준다. 본질과 무관하다. 모든 문학 예술은 긴장을 유발하여 카타르시스를 주는 점에서 같다.
이런 말 듣고 시에도 정형시, 자유시 있고 시조에도 엇시조, 사설시조가 있는데 왜 형식이 하나 밖에 없다는 거죠? 하고 반문하는 사람은 말귀가 안 트인 사람이니 필자가 구태여 대답하지 않는다.
지구에 60억이 있으니 60억개의 스타일이 있겠지만 그딴건 논외다. 어떤 문학이든 결국 언어라는 형식을 통해야 한다. 본질에서는 같다. 생장점은 하나 뿐이며 생장점이 없으면 논외가 된다.
진화론이 있되 퇴화론이 없는 것과 같다. 퇴화는 당연히 있지만 그 또한 진화의 일부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발’도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따지는 분이 있다면 피곤한 아저씨다.
한국이 왜 제트기를 만들지 않는지 아는가? 만들 수는 있다. 만들어봤자 쓸모가 없어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자동차는 대충 만들어도 굴러가기만 하면 되지만 비행기는 세계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라디오는 대충 만들어도 되는데 스마트폰은 세계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생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애플과 삼성이 세계최고를 경쟁하고 있고 다른 회사들은 몰락하는 이유가 있다. 현대성의 문제다.
이 시대에 깨달음도 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석가 시대에는 제자 500비구가 모두 깨달았다. 왜?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석가 밑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시절 다른 학문이 없었으니까. 그 시점에는 불교가 전위에 서 있었고 사회의 모든 혁신을 주도하고 있었던 거다.
육조 혜능의 제자들도 모두 깨달았다. 그때만 해도 유교나 도교 등의 다른 분야들이 기세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이 혼란해서 왕조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20여개 이상의 왕조가 동시에 공존하던 때도 있음.) 제왕의 통치를 뒷받침하는 유교가 기를 펴지 못하고, 대신 귀족들을 뒷받침한 불교가 융성했기에 중국 최고의 두뇌들이 거기에 모여 생장점을 형성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왕의 등장이후 귀족문화가 몰락하면서 불교도 몰락했다.
최고가 모이면 현대성이 생기고 현대성을 얻으면 된다. 그런데 2등은 안 쳐준다. 현대성은 생장점이고 생장점은 반드시 나무의 가지 끝에만 있다. 조금 밑에는? 없다. 2등은? 낄 데가 없다.
지금 세계최고는 과학이다. 과학에 인류문명의 생장점이 형성되어 있다. 깨달음이 세계최고가 아니기 때문에 2등은 안쳐주는 법칙에 의해 누가 뭘 깨닫든 말든 그딴건 안 쳐주는 것이다.
깨달음의 다른 스타일? 없다. 그딴건. 그런 걸로는 도무지 세상과 반응하지 못한다. 세계 최고가 되어 세계시장을 다 먹겠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애시당초 글러버린 것이다. 구조론연구소는 느리게 가도 세계시장을 다 먹고 세계 전체를 다 바꾸는 방향으로 간다. 내년 부터는 세계시장으로 진출한다. 100년이 걸려도 되는길로만 간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 잡혀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내가’ 깨달았는냐에 관심이 있을 뿐 ‘깨달음’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어떤 사람이 깨닫든 말든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안 쳐준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인류 역사상 세상을 바꾼 일이 몇 차례 있었다. 그 하나는 종교와 철학의 탄생이다. 둘은 전쟁인데 전쟁 그 자체보다는 이동기술의 혁신이 전쟁으로 비화한 것이다.
전쟁을 하려면 남의 나라로 가야 하는데 말을 타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전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셋은 르네상스다. 미학적 기준이 바뀐 것, 인류의 눈높이가 바뀐 것이다. 이 점은 종교와도 관련성이 있다. 네 번째는 산업화다.
◎ 종교철학≫전쟁이동≫르네상스≫산업화≫?
여기서 생각의 변화와 기술의 변화가 주거니 받거니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음이 변하거나 물질이 변할 때 인류문명은 크게 변화했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또 한 번의 변신 기회를 맞았다.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산업화의 결과물이지만 그 인터넷이 작동하는 논리는 정신문화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정신문화 역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높은 정신이 낮은 정신을 지배한다.
인터넷은 무엇이 다른가?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아이디어다. 즉 인터넷 시대에는 머리 좋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남의 머리를 잘 수집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수집하려면? 애초에 그릇이 커야 한다. 작은 접시로 출발한 사람은 그 접시를 채울 뿐이고 작은 찻잔으로 출발한 사람은 그 찻잔을 채울 뿐이다. 우주적으로 큰 그릇을 가져온 사람이 다 먹는 시장이다.
가장 큰 그릇은? 돈오다. 점수는 작은 그릇이며 개인의 만족에 도달할 뿐이다. 돈오는 혼자서는 힘을 못 쓴다. 돈오는 만남이며 만남의 네트워크다. 돈오는 모일수록 힘을 쓴다. 떼거리가 많아야 한다.
돈오는 의미를 부정하고 관계를 열어간다. 의미는 그 그릇에 담는 거다. 담을수록 담을 수 없게 된다. 비울수록 연결된다. 돈오는 플래시몹과 같다. 의도나 목적이 있을수록 사람을 모을 수 없다.
새누리당의 십알떼가 실패하는 이유는 의도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의도와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뻔하다. ‘도를 아십니까?’ 이 아저씨 의도있다. ‘물건 한 번 보실래요?’ 이 아저씨 의도 있다.
삼성에 취업해서 많은 연봉을 받겠다. 이건 의미다. 삼성맨타이틀을 달면 장가를 갈 수 있다. 이건 관계다. 만나서 무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만나는가 아니면 그냥 스쳐가는가에 주의해야 한다.
진정한 깨달음은 내가 깨달아서 무엇이 된다는 그런 따위가 아니다. 진정한 것을 알아보는 눈을 획득할 때 만날 사람을 만나게 되며 만날 사람이 만나게 될 때 세상이 변한다는 거다.
이는 우리가 21세기를 어떻게 디자인 하느냐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21세기를 디자인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을 필자는 만나지 않는다. 만나봤자 만나지지 않는다. 얼굴도 기억 못한다.
우리는 세상을 통째로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그대가 그 사업에 참여할 것인가이다. 내가 깨달았다느니 하며 ‘내가’를 내세우면 이미 틀려버렸다. 자기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왼쪽에 큰 다이아몬드가 하나 있다. 오른쪽에 작은 은반지가 하나 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주의가 가는가? 큰 다이아몬드 앞에는 사람이 버글버글하고 작은 은반지 앞에는 아무도 없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작은 은반지를 취해야 한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 은반지는 내가 독점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비오는 날 쌍방울 메리야스 팀의 야구경기와 같다.
관중은 50명 뿐이니 경품의 당첨은 따논 당상이다. 냉장고냐 세탁기냐 컬러TV냐만 고민하면 된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비 오는 날 쌍방울 팀의 야구경기를 보러가는 것이다. 가서 경품을 받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라면 곧 죽어도 사람이 버글버글 하는 시장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만날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반지를 내가 취하느냐가 아니라 그 다이아몬드가 진짜냐다. 하나 뿐인 세계최고의 다이아몬드냐다.
만약 하나 뿐인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라면 그 현장에서 당신은 세계 최고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 현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의미를 버리고 실속을 버리고 진정한 만남을 얻어야 한다.
인터넷은 하나 뿐이다. 자본도 하나 뿐이다. 세계의 모든 자본은 전부 연결되어 하나의 공룡을 이루고 있다. 조폭도 하나다. 우리나라의 모든 조폭은 서로 연계되어 있다. 깨달음도 하나 뿐이다.
인류를 바꾸는 계획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종교철학≫전쟁이동≫르네상스≫산업화≫정보화로 전개하는 라인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월드컵도 하나 뿐이다. 한국기원도 하나 뿐이다. 부산에 국제기원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걸 누가 쳐주는가이다. 중요한건 하나냐 둘이냐가 아니다. 전부 연결되어야 의미가 있다는 본질이다. 관계는 애초에 전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상이 있고 다양한 철학이 있고 다양한 종교가 있다. 그런데 과학은 하나 뿐이다. 원래 가짜는 여럿이고 진짜는 하나다. 과학이 하나이므로 그 과학을 운용하는 인간의 정신문화능력을 의미하는 깨달음도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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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는 유튜브라는 세계시장 앞에서 얼쩡거렸고 이수만은 작은 시장을 독점하여 짭짤하게 집금했습니다. 어느 길이 옳습니까? 곧 죽어도 큰 길로 가야 합니다. 돈오는 개인의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습니다.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면 개인의 문제는 그 흐름 안에서 저절로 용해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번뇌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고, 과연 인류의 정신이 지금 한계에 다다른 과학을 제압할 수 있느냐입니다. 내가 깨달아서 어떻게 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인류 전체의 아이디어를 몽땅 수집할 수 있는 큰 그릇을 세팅할 때만 문제가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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