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떻게든 피아간에 상호작용을 높이면 그네의 이익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요 며칠 사이트 방문자가 많았는데 아마 그네악취 피하려다보니 갈 곳이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찾아주시는 분을 위해 몇 줄 써보려고 한다.

이번 대선은 이명박 시절에 비해서 그나마 고통이 덜하다. 그때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졌지만, 이번에는 그나마 후회없는 싸움을 했다. 그래도 할만큼 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1469만표. 엄청난 숫자다.

지금껏 이 정도 표 받은 사람 없다.(아버지거 상속받은 그네는 논외.)

응집력에서는 졌지만 판세에서는 이겼다. 결과는 48 대 51이지만, 국민의 마음은 55 대 45이라는게 확인되었다. 그들은 똘똘 뭉쳐있는 소수고 우리는 느슨하게 흩어져있는 다수다. 어쨌든 우리가 산술적 다수다.

문제는 우리가 흩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중심에 강력한 핵을 형성하지 못했다. 장수는 많은데 대장이 없다. 문재인은 정치인으로는 약하다. 있는 자원을 탈탈 끌어모았을 뿐, 적의 자원을 빼오지는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개월 전에 농담조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번 대선? 간단해. 김정은 개새끼라고 딱 한 마디만 립서비스면 해주면 선거 끝.”

미국 대선을 보면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몇 가지 금기가 있다.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않는다든가, 총기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따위다. 동성결혼이나 낙태문제도 민감한 이슈가 된다.

우리도 금기가 있다. 북한의 핵개발이나 3대세습 용인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걸 모른척 그냥 넘어간다는건 절대적 금기다. 핵은 놔두고 미군은 물러가라고 말할 수 없고, 3대세습은 용인하면서 박근혜 세습은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다. 문재인은 침묵했다.

한 마디만 하면 되는데 왜 안했을까? 내부분열에 대한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이지 이번만큼 우리가 똘똘 뭉친 적이 없다. 이건 대단한 성과다. 그러나 대선에 이기려면 내부단속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적의 표를 뺏어와야 한다. 적전분열 감수하고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

필자가 안철수를 안 좋게 본 것도, 내부분열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후단협은 또 나타난다. 진보가 둘로 쪼개지는 것이 싫어서 사람좋은 문재인을 지지한 것이다. 그런데 졌다.

우리가 정치 그 자체에 충실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정치란 온갖 권리들의 집합이다. 권은 저울이다. 저울은 통제가능성이다. 메타포를 읽어야 한다. ‘빨갱이’라는 말에는 ‘통제불능에 따른 두려움’이 암유되어 있다.

노무현은 달랐다. 노무현 대통령의 ‘반미면 어때?’는 반미고집보다는 융통성으로 읽혀졌다. 문재인에게는 그 융통성이 없었다. 말을 예쁘게 한다. 너무 완벽해서 근처에 다가가기가 힘들다. 아저씨가 아니라 선생님 같다.

예컨대 이런 거다. 요즘 젊은이들이 그동안 불쌍하다고 팔아줬던 동네슈퍼에 안 가기로 했다고 한다. 왜? 가게 주인이 인사를 안 한다는 거다. 불친절하다는 거다. 가격 물어보려고 물건 들면 검은 비닐봉지부터 꺼낸다는 거다.

마찬가지다. 정치에 있어서도 인사가 있어야 하고, 상대편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유머있는 사람이 당선되고, 활력있는 사람이 당선되고, 융통성있는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다.

문재인은 비서체질을 벗어나지 못했다. 노무현이라면 ‘김정은 개새끼’ 정도는 해줬을 것이다. 개새끼는 욕설이고, 어떻든 단호한 뭔가를 보여줬을 것이다. 그래야 중도파와 대화가 되는 것이다. 일단 대화가 되는게 중요하다.

사실 이번 패배는 오래전부터 예상된 일이다. 박근혜의 괴력은 모든 선거공식을 무효화시킨다. 그래도 국민을 믿어야지 하고 온 것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일주일 남겨놓고는 이기는줄 알았다. 거의 다 이긴 게임이어서 아쉬움이 크다. 1469만표가 어딘가? 이건 기적이다.

보수에 진 게 아니라, 종교에 진 것이다. 박근혜교 광신도와는 싸우고 싶지 않다. 이건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정치의 왜곡이다. 앞으로 아주 황당한 일이 일어날 듯 하다. 박근혜 정치는 아마 신정(神政)이 아닐까 싶다.

진시황처럼 언론에 나타나지 않고 뒤에서 이미지관리나 하며, 믿을만한 인물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그런 정치, 총리를 계속 갈아치우는 정치를 하지 않을까. 하여간 되어봐야 아는 거고.

앞으로는 박근혜 없는 선거가 되므로 쉬울 것이다. 이기려면 간단하다. 이 세가지를 하면 된다.

1) 진보통합을 이룰 것.. (이미 이루어졌다. 패스)

2) 7퍼센트 성장공약 앞세우고 경제로 칠 것.(감세, 휘발유반값 등 고려)
3) 김정은 개새끼는 반드시 하고 갈 것.

이 세가지는 반드시 해야하는 절대공식이다. 이걸 안하겠다면 대통령에 나설 자격이 없다. 1)번은 문재인이 해냈다. 이 기조를 유지하면 된다. 2)번은 안 되는게 진보진영 안에 무뇌좌파들이 많아서다. 이들은 주로 교수들인데 경제에 ‘ㄱ’자도 모르는 주제에 전문가인척 한다. 좀 아는 사람을 앉혀야 한다.

증세운운하며 대선치른다는건 넌센스다. 부자증세는 당선 후에 해도 된다. 중요한건 실제로 증세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이게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게에 물건 사러 왔는데 주인이 ‘뭐 사러 왔소?’하고 따져묻는 것과 같다. 상대방에게 결정권을 줘야 하는 것이다. ‘C바 사는건 내맘이지 주인에게 허락 맡고 사나?’

증세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의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증세공약은 기본적으로 예의가 아니다. 선거판에 증세 이야기 하는 자는 아주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한다. 장난하나?

세금을 올렸다는게 문제가 아니라, 세금을 올릴 때 동의해주는 절차적 권리를 빼앗겼다는 박탈감이 문제인 것이다. 증세에는 당연히 국민의 저항권이 있고 그 권리는 일단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증세는 하더라도 살살 꼬셔서 기습적으로 하는게 맞다. 그리고 반드시 그 과정에서 반대급부를 치러야 한다. 그러한 과정없이 내맘대로 증세하겠다는 식이면 국민저항권 발동은 자동이다.

이건 뭐 결혼했다고 바로 침실로 가자고 손을 잡아당기는 것과 같다. 결혼서약이 자기 신체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결혼했다고 맘대로 손댈 수 있다고? 천만에. 부부간 성폭행죄도 있다.

3)번은 역시 통제권에 대한 문제다. 실제로 햇볕을 하든 냉전을 하든 중요한건 절차적 권리다. 저쪽은 ‘너 빨갱이지?’ 하고 의심할 권리가 있고, 이쪽은 ‘아니다’ 하고 해명할 의무가 있다. 안철수가 원래 그 보증인으로 들어온 건데 뜬금없이 새정치타령을 하는 바람에 꼴이 우습게 되었다. 미친 자슥.

안철수는 김종필이 그렇게 했듯이 당연히 문재인으로부터 안보에 대한 확실한 다짐을 받아냈어야 했다. 1) 북한의 핵폐기를 전제로 북한과 대화한다는 것, 2) 세습은 원론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을 다짐받았어야 했다. 이걸 어물쩡 넘어간게 타격이 크다. 안철수가 왜 돕는 시늉만 했는지는 의문이다.

안철수는 문재인과 지역이 겹치므로 다음에는 충청도를 잡았어야 한다. 안희정이 한 번 기대해볼만한데 이 양반은 인상이 너무 매섭다. 젊은 시절의 링컨과 같다. 링컨도 수염 길러서 됐는데 안희정은 안경부터 바꾸어야 한다. 유머감각도 키우고. 편안한 동네 아저씨로 변신한다면 희망이 있다.

결론은 우리는 핵이 덜 형성되었다는 거다. 지금 목청 높이는 사람은 너무 왼쪽이다. 이들은 경제를 모른다. 인간 심리도 모른다. 꼴통들이 왜 꼴통인지 알아야 한다. 그냥 ‘너희가 틀렸다’고 말로 떠들 것이 아니라, 저들은 사람이 아니라 개이므로 개를 다루는 기술을 구사해야 한다. 이웅종 소장의 방법이 먹힌다.

무뇌좌파는 빠지고 상식진보가 앞장을 서야 한다. 앞으로 5년간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상식진보는 첫째 경제를 알아야 하고, 둘째 개를 다룰줄 알아야 한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안경 바꾸고 수염 기르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 틀린 진보 – 미리 노선을 정해놓고 노선에서 답을 찾는 자들

◎ 상식 진보 – 무조건 피아간에 상호작용을 높이며 과정에서 답을 얻는 사람.

저쪽이 안보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면 응해주면 된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문제다. 어떻든 적과 상호작용을 해야 적의 자원을 빼올 수 있다. 적과도 대화가 되어야 한다.

‘이건 안돼’ 하고 미리 선을 그어놓는 사람은, 원초적으로 대화를 포기한 자들이며, 상호작용이 안 되는 사람이며, 인사를 안 받는 사람이며, 슈퍼에 물건 사러 갔는데 ‘왜 왔느냐’는 듯이 노려보는 가게주인이다.

정답은 나왔다. 상호작용을 높이면 된다. 그것은 적과도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적과대화하지 않는다. 지금은 적이 갑이니까. 누구 좋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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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2-12-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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