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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태리가구와 스칸디나비아가구를 비교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이야기해왔던 아카데미즘과 인상주의, 일본식 대본소용 극화와 병맛만화, 봉건소설과 근대소설, 봉건의상과 현대의상, 봉건영화와 김기덕영화의 차이, 뽕짝과 현대음악의 차이, 일반가요와 싸이의 비쥬얼한 노래와의 차이와 같다.
한 마디로 상호작용이다. 가구란 무엇인가? 실용적이고 쓸모있는 가구는 가구가 아니다. 쓰레기다. 그런 가구를 쓰는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마시라. 보나마나 일베충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벌레처럼 산대서야 되겠는가?
그렇다면 정답은? 한 마디로 공간친이다. 이건 15년 전에 영화이야기할때부터 쓰던 용어인데 한 마디로 영화란 무엇인가? 평면에서 공간으로의 도약이다. 스크린은 평면이나 거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공간으로 비약한다.
그것은? 홍콩영화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이명세 감독이 그걸 보여주었다. 그때는 김기덕 감독이 출현하기도 전이었으니까. 요즘 홍콩영화가 망했지만 전성기 홍콩영화는 구조론의 정답이었다. 이렇다할 줄거리가 없는 보여주기식 영화였다. 영화평론가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영화. 그런데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왜 가구는 공간친밀인가? 이태리가구는 실용적인 가구, 사용하는 가구다. 그런데 누가 그 가구를 쓰는가? 주인이 쓴다. 이미 꽝이다. 가구는 쓰는게 아니다. 가구는 손님을 초대하는 것이며 손님의 동선을 찔러주는 것이다.
복도에 탁자가 놓여있고 꽃병이 하나 있다. 그 꽃병 보라고 거기다 놔뒀겠는가? 그 공간을 방문하는 손님을 안내하기 위한 용도다. 빌딩 건물의 회사입구에 인포메이션이 있고 미인이 앉아 있다.
왜 거기 미인이 있을까? 미인과 노닥거리라고? 아니다. 그곳이 안내데스크임을 인식시키기 위한 화살표다. 의자는 거기에 앉으라고 있는게 아니고 그곳에서 멈추라는 표식이다. 역시 화살표다. 아니 멈춤표다.
무엇이 다른가? 이태리 가구는 귀족들이 유폐되어 있는 일종의 감옥이다. 귀족들은 하루종일 방안에 갇혀서 하인들의 공간인 마당으로 못나간다. 하인과 같은 공간에 머무르면 하인과 신분이 같아져버리니까.
귀족들은 하루종일 방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심심하지 말라고 가구의 장식을 요란하게 해놓은거다. 왜 안방마님 장롱은 문양이 화려한가? 하루종일 방 안에 갇혀 사는 거다. 그런데 현대의 공간은 열린공간이다.
북유럽가구는 개인의 침실이나 그런게 아니고 일종의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다. 손님이 드나드는 공간이고 그 손님이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공간을 디자인하는 용도다. 이 공간은 계속 걸어가라는 공간, 이 공간은 여기서 방향을 꺾으라는 공간, 이 공간은 여기서 대기하라는 공간, 이런 식으로 공간의 쓰임새를 일러주는 용도다.
그러므로 공간이 주인이고 가구는 그 공간의 용도를 찔러줄 뿐이므로 편안한 소파나 안락의자는 없다. 열린공간, 자라는 공간, 소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공간과 같다. 그러므로 심심하다. 심플하다. 근데 좋다. 가구는 별로인데 공간이 좋다. 공간이 좋은 이유는 기특한 가구 때문이다. 별로인 가구가 좋은 이태리가구보다 비싸게 팔린다. 신기하다.
◎ 핀란드 가구 - 형태를 연출한다는 개념이다. 작품의 결을 반영했다.
◎ 이태리 가구 - 주문제작식이다. 소비자의 기호를 반영했다.
가구는 형태로 공간에 도전하는 것이다. 형태는 세잔의 형태이다. 형태가 드러나야 하므로 밝은 색깔이어야 하고 장식은 되도록 제거되어야 한다. 심플해질 수 밖에 없다. 나무의 결을 드러내려면 조명이 밝을 수 밖에 없다.
이태리가구는 장인이 만든 거고 북유럽가구는 디자이너가 만든 거다. 근본의 차이가 있다. 장인이 천연가죽을 한땀한땀 정성들여 만든 가구나 가방은 쓰레기다. 장인이 만든 가구나 가방을 드는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병맛만화는 독자와 상호작용을 한다. 그 결과는 리플 숫자로 나타난다. 네이버 웹툰은 리플이 많으면 원고료를 더 준다는 설이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병맛만화는 많은 리플을 유도한다. 그 경우 사실을 개입시킬 수 밖에 없다.
사회에서 실제 일어나는 현장의 일을 개입시켜야 리플이 붙어준다. 그냥 줄거리를 따라가는 일본 망가식 극화는 리플이 붙지 않는다. 허영만 말무사나 김세영의 타짜시리즈가 대단하긴 하지만 리플로는 조석의 병맛만화를 따를 수 없다.
좋은 가구는 손님과 대화한다. 손님이 거기에 앉지 않는다. 그 공간의 격을 높여준다. 가구가 좋다는건 입체 개념이고 공간이 좋다는게 구조론의 밀도 개념이며 질 개념이다. 기능을 배제하고 쓰임새를 배제하고 실용주의를 배척해야 한다. 쓰이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태리가구와 북유럽가구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