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의 미덕과 배덕

상영중인 레미제라블이 영화는 잘 만들었지만(이런건 두 번 봐줘야 함), 원작인 위고의 장발장은 철학적 수준이 낮다. 위고가 원래 보수였는데 장발장을 쓰면서 점차 진보로 변해갔다는 설이 있다.(위고는 수구꼴통 나폴레옹 3세에게 핍박받았다. 장발장의 진보성은 박정희 2세 때문일지도.)

어쨌든 영화는 진보에 초점이 맞춰진게 다행이다. 그러나 바닥에 깔린 꼴통의 정서는 속일 수 없다. 위고는 끝까지 저급한 ‘품성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거기서 벗어나려는 약간의 모색은 보여주었다는 점이 미덕이다.

장발장의 꼴통본성은 이 영화(소설이)가 선악구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있다. ‘선악’ 이런 단어 나오면 보나마나다. 관념에 갇히고 만다. 꼴통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쨌든 이 영화(소설)는 배덕이 많은 만큼 미덕도 많다.

장발장과 자베르의 선악논쟁은 돈오와 점수의 대립에 해당된다. 자베르는 원래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퇴계의 수양론에 감화를 받아 수십년간 꾸준히 두타행을 행한 결과 마침내 경감의 지위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는 대통신수가 점수를 행하여 무측천으로부터 부름받아 3제의 국사가 된 사실과 통한다 하겠다. 자베르는 두타행을 하지 않고 미리엘 주교를 만나 단번에 돈오하여 운좋게 낙하산으로 떨어진 장발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토굴에서 17년을 닦지도 않은 장발장이 미리엘을 만나 단번에 돈오했다고? 인정할 수 없어! 장발장은 사기꾼이야. 깨달음이 로또냐?’

유명한 자베르의 대사다. 원작에서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를 만나 한 순간에 돈오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장발장의 돈오한 증거가 돈 뿐이라는데 있다. 장발장은 미리엘의 성당에서 은기를 투자받았으나 초기자본금이 부족했다.

미리엘이 은촛대 두엇을 더 투자하자 사업은 대박이 났고 그의 구슬공장은 번창하여 마침내 그는 시장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때 돌연한 가짜 장발장의 등장으로 졸지에 회사를 말아먹은 장발장 CEO는 빼돌린 회사돈으로 말년까지 호의호식하며 살게 되는데. 이런 줄거리 마뜩치 않다.

이러한 전개는 무측천의 은총을 입은 대통신수의 출세를 연상시킨다. 이건 전형적인 점수의 시나리오다. 그래서 소설은 2라운드가 필요해진다. 소설의 줄거리가 뒤틀려버렸기 때문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장발장은 소설 두 편을 억지로 이어붙인 느낌이다. 그 이유는 초반의 돈오컷이 너무 강렬해서다. 고생 끝에 돈오하는게 뻔한 이현세 버전인데 초장부터 돈오후에 이야기가 나오니 점수를 피할 수 없다. 돈오에서 점수로 퇴행이다.괴상하다.

장발장 인생의 제 1부가 돈오한 후 재벌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라면(줄거리가 꼬였다. 이건 점수다.) 2부는 코제트를 키우는 이야기다. 문제는 코제트의 성공 역시 재벌과의 우연한 만남에 의해 우연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문학은 사망하고 김수현표 주말연속극으로 퇴행한다.

결국 인간은 돈에 의해서만 구원된다는 이야기다. 확실히 장발장은 자베르보다 돈이 많다. 그 방법이 공금횡령임은 물론이다. 그는 가짜 장발장의 등장 때문에 과거가 탄로나서 죄수로 잡혀가면서도 잽싸게 돈을 꿍쳐놓았다.

장발장이 탈출하여 꿍쳐놓은 돈을 회수하는 암굴왕 신은 영화에 없다. 하여간 미리엘 주교가 투자한 자본금을 회수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투자자의 몫을 가로채는 짓은 한국 재벌들의 전형적인 수법이 아닌가?

‘구원은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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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3-01-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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