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스입자 이후의 세계
이런 이야기는 사실 해당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하고 말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구조론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구조론이라는게 원래 모르고 아는 척 해도 아는 사람보다 더 맞더라는 거다.
구조론은 덧입혀진 살을 배제하고 건조한 뼈대만을 본다. 그것은 게임의 규칙이다. ‘이게 이러면 저게 저렇다’는 거다. 전제와 진술 사이의 관계만 본다. 전제가 모호하면 진술도 모호해진다.
물리학은 전제가 모호하다. 뉴턴시절만 해도 그림이 분명했는데, 상대성으로 뒤집어놓더니 양자시대에 와서는 온통 휘저어 놓았다. 그러므로 구조론으로도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힉스입자의 발견으로 표준모형이 분명해졌다. 전제가 분명해졌으므로 진술도 분명해진다. 구조론도 할말을 얻었다. 여기서 전문가 수준의 논의는 무리고 대략적인 얼개만 살펴보기로 하자.
물리학 주변에 황당한 이야기가 많다. 문제는 전문가 입에서도 그런 소리가 나온다는 거. 다중우주론이니, 평행우주론이니 하며 썰 풀다가 심하면 타임머신에 도플갱어까지 가버리는 수 있다.
초끈이론은 구조론의 0~4차원 외에 9차원에서 심지어 26차원까지 가버린다. 블랙홀이니 웜홀이니 반물질이니 하는 단어도 뭔가 주술적인 의미로 쓰일 경우가 많다. 오버가 심하다는 말이다.
힉스입자의 발견으로 모호한 부분이 정리되었다. 곁가지들을 쳐내고 제한적이나마 구조론 모형으로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 구조론이 물리학 주변의 여러 뜬구름을 쳐내는 것은 분명하다.
이야기는 양자요동으로부터 시작된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간단히 모눈종이가 구겨진 거다. 시공간은 모눈종이와 같다. 동해안 해안선이 직선으로 보여도 현미경으로 보면 꼬불꼬불하다.
가로세로 반듯한 시공간의 모눈종이는 거시세계에 적용된다. 그렇다면? 구겨진 모눈종이가 왜 펼쳐졌을까? 대칭성이다. 양자는 장(場)이고구겨져 있다. 장을 펴는 것은 입자의 대칭이다.
구조론은 질-입자-힘-운동-량으로 설명한다. 이번에 규명된 힉스 메커니즘이 구조론의 질≫입자≫힘의 전개와 유사하다는데 방점을 찍어도 좋다. 구조론은 이를 시소모형으로 설명한다.
시소는 축과 대칭으로 이루어진다. 시소는 모호한 것을 명확하게 한다. 입자는 포지션이 유지된다. 그 위치에 있다. 변하는 것은 시소의 양 날개에 올라탄 사람이고 시소는 늘 거기에 있다.
힉스메커니즘, 힉스장, 힉스입자라고 여러 표현이 나오는데 시소다. 무거운 놈이 올라타면 무거운 놈으로 찍짓고 가벼운 놈이 올라타면 가벼운 놈으로 짝지우는 식으로 질량이 부여된다.
사람들은 입자를 잘 이해한다. 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간단하다. 미시세계의 모눈종이는 구겨져 있다. 여기에 대칭성 들어간다. 불확정성은 비대칭성이라하겠다. 거시세계는 대칭되어 있다.
일정한 조건에서 대칭된다. 그것은 위치와 속도다. 여기서 전제와 진술의 구조가 작동한다. 상호작용은 이게 이렇게 되면 저건 저렇게 된다는 거다. 위치가 이러하면 속도는 저러하다는 식.
이를 뛰어넘는 것은 확률이다. 확률은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핵심은 에너지를 확률값으로 표현한 양자, 그 양자의 불확정성, 그리고 이를 나타낸 양자요동이다. 양자스핀 개념도 도입된다.
불확정, 비대칭으로 구겨진 모눈종이 양자의 값이 힉스메커니즘의 시소에 태워졌을 때 일정한 질량을 주어 분명한 위치와 속도로 확정된다.곧 구조론의 질≫입자≫힘≫운동≫량 그대로다.
1) 우주의 진공은 에너지 장이다.
2) 에너지 장은 크기(시공간)가 없다.
3) 에너지 장에 확률을 도입하여 양자로 나타낸다.
4) 힉스 메커니즘의 대칭성에 의해 양자요동은 입자가 된다.
5) 입자 내부의 불균형이 힘으로, 그리고 운동과 량으로나타난다.
6) 크기(시공간)는 에너지장이 입자로 변하면서 연출한다.
과학자는 질량이 어떻게 부여되는가, 혹은 물질이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방점을 찍지만 구조론은 시공간이 어떻게 탄생되었는가에 방점을 찍는다. 구겨진 모눈종이가 어떻게 펼쳐졌는가다.
◎ 전통적인 세계관 – 시공간의 바다에 물질이 떠 있다.
◎ 구조론적 세계관 – 물질이 탄생하며 시공간을 연출했다.
시공간의 바다에 물질이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탄생하며 시공간을 찍는다. 시공간은 물질이 탄생하는 과정에서의 대칭성 그 자체다. 물질 이전의 양자상태에는 시공간의 크기가 없다.
시공간은 크기를 유도한다. 양자 세계에는 크기가 없으므로 위치와 속도를 확정할 수 없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년이고 크기가 어떻다는 것은 거시세계가 균일하다는 전제로 하는 말이다.
크기가 없다는 것은 밀도가 있다는 말이다. 밀도는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존재한다. 이때 에너지 장은 대칭성이 없으므로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힉스메커니즘이 작동하여 상호작용을 촉발하면서 대칭성이 성립한 바 시간과 공간이 성립하였다. 크기가 만들어졌다. 발빠른 아킬레스가 한걸음 앞선 거북이를 추월할 수 있게 되었다.
쏜 화살이 날아가게 되었다. 무에서 유가 출현하였다. 빛이 그림자를 만들었고 직선이 곡선을 만들었다. 필자가 12일에 쓴 것이 그대로 14일에 확인되었다.투박하게 얼개만 본다면 이렇다.
물리학계의 황당한 언설들은 양자론의 모호함에 기대어 시공간을 비트는 수법을 쓴다. 물질이 시공간을 연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구조론과 맞지 않는 언설들은 비빌 언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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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질을 이해하지 못하는이유는 질의 포지션에 시공간을 두기 때문입니다. 시공간의 바다에 물질이 떠 있다는 식으로 짐작하는 거죠. 힉스입자에 의해 규명된 바 시공간은 물질의 대칭성에 의해 연출됩니다. 존재하는게 아니라 연출된다는 거죠. 질은 입자의 대칭성이 성립하기 전입니다. 질의 세계에는 밀도만 존재하며 확률로만 나타낼 수 있습니다. 계측할 수 있는 포지션이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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