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모차르트, 베토벤 뺨치는 명곡을 작곡했다고 주장했다. 연주해 달라고 하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피아노가 없어서.’ 피아노를 가져오자 그는 이렇게 변명하였다. ‘죄송! 연주할줄 몰라서.’

피아노도 없고 연주할줄도 모른다면 그는 작곡한게 아니다. 정 안 되면 악보라도 그려서 보여줘야 한다. 그림을 못그리지만 고흐 뺨치는 그림이 맘 속에 떠올랐다는 식은 안 쳐준다. 농담이야 누가 못하겠는가?

깨달음은 자기 언어의 획득이다. 그 언어가 반드시 한국어나 중국어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 자기 언어로 말하지 못한다면 깨달은게 아니다. 가끔 알쏭달쏭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되다만 것이다. 진리를 깨달았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은 명곡을 작곡했지만, 피아노가 없어 연주는 못해봤다는 말이다. 틀렸다. 자기 피아노는 자기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연주해 보여야 한다.

노자의 ‘도가도 비상도’는 진리를 언어로 표현하여 나타낼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노자의 자기언어다. 훌륭한 표현이다. 진리의 정수를 드러낸 것이다. 다른 사람이 노자의 표현 뒤에 숨으면 비겁하다.

이름을 부여함은 구조론의 시소에 태워 대칭시킨다는 것이다. 상도는 질이고 질은 대칭되지 않는다. 명명된 비상도는 입자다. 입자는 대칭된다. 이름없는 질은 존재의 처음이고 이름있는 입자는 만유의 어머니다.

道可道非常道 명명된 도는 상도가 아니다.
名可名非常名 명명된 이름은 상명이 아니다.
無名天地之始 상명은 존재의 처음이다.
有名萬物之母 유명은 만물의 어머니다.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없음에서 탄생하고 있음에서 전개한다.
此兩者同出 而異名 同謂之玄 둘은 이름이 다를 뿐 본질이 같으니 현묘하다.
玄之又玄 衆妙之門 현묘한 것은 낳음의 자궁이다.

이러한 전개는 구조론의 질(상도, 상명, 무명), 입자(비상도, 비상명, 유명)의 전개와 같다. 질은 존재의 처음이고 입자는 만물의 어머니다. 질에서 이룩되고 입자에서 전개된다. 둘은 신묘한 낳음의 자궁을 이룬다.

질은 자동차를 제조하는 것이요 입자는 자동차를 운행하는 것이다. 질은 be요 입자는 is다. be는 벌어진 사건의 존재요 is는 가리켜진 사물의 존재다. be는 존(存)이고 is는 재(在)다. 존과 재가 합쳐서 존재다.

사물은 가리킬 수 있으므로 명명된다. 이름이 있다. 사건은 가리킬 수 없으므로 이름이 없다.깨달음은 자기 언어의 획득이며 노자처럼 표현해야 한다. 노자가 도덕경에 무슨 말을 적어놨는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노자는 진리를 가리킨 것이며 진리는 노자의 도덕경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 있다. 진리는 뉴턴에 있고 아인슈타인에 있고 양자역학에 있고 표준모형에 있다. 표준모형은 입자의 자궁이다. 낳음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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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든 그것은 그대 앞에서 그대와 대칭을 이루고 맞서 입자꼴을 이루고 있습니다. 깨달음은 그대와 그대 앞에서 그대와 맞선 그것과 둘이 합쳐서 하나의 탄생의 문을 이루고 있으며 그대의 모든 행위가 그 자궁에서 탄생되어 일어남을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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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3-04-0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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