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영화를 안 봐서 감이 떨어졌지만.. 설국열차는 기대이상이었다. 중요한건 구조론의 관점이다. 하여간 영화를 재미로 본다거나, 감동타령, 교훈타령, 주제타령 하는 자와는 말도 하지 마라. 뇌 썩는다.
바보냐?
설국열차는 닫힌계의 설정 자체가 매우 구조론적이다. 구조론에서 강조하는 축과 대칭도 나온다. 영화 안에 구조론 강의가 통째로 들어 있다. 봉준호가 구조론을 안배웠을텐데, 신통하게 구조론을 적용했다.
물론 아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중요한건 공식이다.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괴물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괴물은 대략 구조론과 안 맞다. 보편성이 없다. 괴물은 다른 나라에 안 먹힌다. 원래 괴수영화는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가만 앉아서 공짜먹는 영화가 진짜다.
구조론은 간단히, 영화든 만화든 일정한 공식이 있고, 공식대로 만들면 무조건 대박보장한다는 거다. 그림은 선이 굵으면 되고, 영화는 뒤뚱대면 된다. 이 공식을 가장 잘 드러낸건 처키와 좀비다. 확실히 공짜 먹었다.
중요한건 보편성. 왜 처키시리즈는 무려 6편까지 나왔고, 좀비시리즈는 끝도 없이 계속되느냐다.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다. 처키와 좀비는 공통적으로 잘 걷지를 못한다. 거기에 영화의 어떤 본질이 숨어있다.
뒤뚱거리기다. ‘나홀로집에’는 평론가들에게가장 심한 악평을 받는 영화인데 왜 흥행될까? 멍청한 도둑들이 뒤뚱대기 때문이다. 뒤뚱대기만 하면 무조건 대박난다. 뒤뚱계의 원조는 누구인가? 찰리 채플린이다.
채플린 전기영화에 나오지만, 찰리 채플린은 원래 극장에서 술취한 주정뱅이 연기로 뜬 사람이다. 작은 키에 헐랑한 바지에 펭귄걸음이다. 모던 타임즈에서 양손에 연장을 들고 아줌마를 쫓아갈 때가 가장 웃겼다.
뒤뚱대서 재미본 사람이 또 펭귄 심형래다. 또 뒤뚱대서 재미 본 영화가 슈렉이다. 성룡의 취권은 말할 것도 없고. 와호장룡도 마찬가지다. 지붕 위에서의 피아노줄 액션은 중력을 무시하는 뒤뚱액션이었다.
휘청이는 대나무 위에서 폼잡는 주윤발도 그렇고. 뒤뚱대서 성공한 영화가 ET, 결정적으로 문워크의 마이클잭슨. 심지어 가수도 뒤뚱대면 뜬다. 뒤뚱으로 재미본 영화의 목록을 나열하면 한 천편은 나올 것이다.
뒤뚱액션이 없어도 잘 살펴보면 어떤 뒤뚱의 요소가 숨어 있다. 킹콩을 예로 들 수 있다. 킹콩이 살짝 움직여도 미녀의 옷이 확 벗겨진다. 거기에 어떤 아찔함이 있다는 거다. 이쯤되면 필자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아챌 법 하다.
어떤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지점을 클로즈업 하는 거다. 하이눈의대결장면처럼, ‘A면 B다’..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 내가 뽑으면 상대도 뽑는다. 그런 식의 어떤 둘이 서로 연동되어 움직이는 것이 뒤뚱대기다.
필자가 30년 전에 구상한 시놉.. 구조론은 일단 닫힌계이므로, 바다 위의 배 안에서 일어나는 액션.. 구조론은 소거법이므로 마이너스를 행하여 한 명씩 제거된다. 인물이 감소할수록 대칭은 명징하고 뒤뚱은 심해진다.
배라는 공간은 특수하다. 갑판 속에서 뭐가 툭 튀어나올 수도 있고, 밧줄을 타고 공중에서 내리꽂을 수도 있다. 공간의 뒤뚱댐.. 결정타는 파도에 흔들리는 배.. 갚판 위의 사람은 파도 때문에 뒤뚱댈 수 밖에 없다.
이 구조로 영화 만들면 대박난다. 근데 배 좀 타봐야 안다. 배가 어떻게 흔들리고, 배 위에서 사람의 동작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강조하는 바는 필자가 30년전부터 일관되게 한 이야기라는 거.
골프공이 홀컵을 살짝 핥고 들어갈 때, 농구공이 림을 한바퀴 빙그르르 동고 들어갈 때. 짜릿함을 느낀다. 어떤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극적인 지점에서 인간은 긴장한다. 이는 물리학이므로 토달 수 없다.
뒤둥댈 때, 선이 굵을 때 그런 효과가 난다. 연동된다. 하나의 동작에 다른 동작이 연동되어 움직인다. 구조론의 일의성이다. 뒤뚱대는 것은 불완전한 것이며 그러한 불완전성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완전성을 깨닫게 된다.
이쯤해 두고 설국열차로 돌아가보자. 지난 목요일 팟캐스트 녹음때 일단 천만은 찍고 시작할거라고 말했다. 오늘 관람후 소감은 확실히 기대이상이라는 거다. 지난 수요일 구조론 게시판에 쓴 내용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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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의 진실은?
닫힌세계, 제한된 공간, 상당히 구조론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 큐브나 쏘우. 일본만화에 잘 나오는 밀실살인이라든가. 구조론의 공식은 닫힌계에서 하나씩 제거할 때 최후에 무엇이 남는가입니다.
우선순위 개념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되는 거죠. 개인적으로 봉준호라서 별로 기대 안합니다. 봉이 구조론을 배웠을 리가 없잖아요.
일단 설정은 디스토피아 혁명선동인데 매트릭스나 인셉션 코스로 가다가 망가질란지 아니면, 폰부스같이 시작만 있고 내용은 없든지, 아니면 타란티노 장고나, 김지운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 같은 짜깁기로 가든지. 괴물처럼 최악의 유치한 정치코미디로 갈지.
어디서 보니까 ‘지옥의 묵시록’이 언급되던데 그러려면 인간 캐릭터에 치중해야 합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장대한 인간폭로. 양들의 침묵과 같은 거. 인간탐구서. 비범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가능하오. 득도한 천재들의 광기에 찬 독특한 정신세계.
어떨거 같소?
A급.. 극단상황에서의 인간군상 묘사..
미친놈, 괴상한 놈, 광기. 천재들만 가능. 주인공이 맛간놈이어야 함.
(지옥의 묵시록, 양들의 침묵, 대부)
B급.. 디스토피아의 세계 묘사
매트릭스, 인셉션. 독창적인 상상력 발휘. 깨달음을 설파.
C급.. 구조론적 반전 함정 묘사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영화. 큐브, 식스센스, 쏘우, 밀실살인과 같은 관객과의 아이큐대결. 기차 안에 이상한 비밀장치가 있어야 함. 숨은 공간 창출하기.
D급.. 유쾌상쾌통쾌 패러디의 향연
타란티노 스타일, 올드보이 망치씬을 계속하는 거임.
계속 망치를 휘두르며 앞칸으로 가보셔. 올올올올드드드드보보보보이이이잉.
E급.. 정치풍자, 혁명선동영화.
괴물스타일. 꼬리칸와 앞칸의 인간차별 비난. 졸렬한 영화. 자기 안의 증오 배설.
F급.. 워터월드
캐빈 코스터너의 뻘짓. 미친녀석. 그냥 돈 쓸라고 만든 영화.
결국 액션없는 액션영화를 찍음.
의견들 말해보시오.
주인공이 의식있는 계몽주의 청년-유치하기 짝이 없는-으로 설정된거 같은데 그딴 식이면 일단 A급은 글렀소.
A급으로 가려면 주인공의 뇌를 제거해야 하오.
또라이만 광기에 찬 또라이 천재를 제압할 수 있다는 공식 때문.
위대하신 돈키호테 선생이 와주셔야 이야기 성립..
B급은 시나리오가 좋아야 하는데 이건 뭐 그닥.
열차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은 원래 저예산 B급영화라서 반전을 노려야지 이건 아님.
C급은 저예산으로 아이디어 하나 믿고 만드는 건데
이건 이미 고예산이라 해당안됨.
D급은 액션영화인데 이미 포스터보니 액션영화가 아닌거 같음.
E급은 괴물 2인데, 국내용은 되나 해외시장을 노리려면 헐리우드 공식을 버릴 수 없어. 500억 퍼붓고 이런짓 곤란.
F급.. 작심하고 말아먹기엔 또 500억이 넘 저예산.
영화를 만들려면 일단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오.
보스들은 원래 변덕스런 자들이오.
빅 브라더를 해부했느냐가 중요.
그냥 보스 나쁜놈 죽일놈 이런 초딩짓하면 그냥. 패줘버려야 혀.
기차의 주인은 어쨌든 살아있는 신이라는게 문제의 본질
신의 고독을 봉이 이해했을리가 없잖소.
가당찮은 도전.
이 영화는 신에 대한 영화여야 하오.
누구나 직관으로 1초만에 느낄거.
좋은 평도 많던데 종잡을 수 없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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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와서 느낀 점으로 말하면, 이 영화는 신에 관한 영화가 맞다.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적나라한 인간 군상을 묘사하는 A급 영화가 맞다. 천재의 광기를 통해 인간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는 영화가 맞다.
A급 영화는 주인공이 또라이인데 송강호 또라이 맞다.(송강호의 비중이 약한건 아쉬움.) 과연 돈 키호테 선생이 와주셨다. 주인공이 맛간놈 맞다.(커티스는 진짜 주인공이 아니다. 이건 나의 견해.)
그 사람들은 열차 안에 갇혀 있지만, 사실 우리는 지구 안에 갇혀 있다. 기차를 탄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고, 그러므로 기차를 제작한 사람은 신이다.
물론 완벽하진 않다. 윌포드는 약했다. 중요한건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다. 이 영화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린다. 흥행은 못했지만 영화를 보는 감독의 시선이 옳다. 근데 제목이 에러다.
‘지구를 버려라’가 맞다. 설국열차도 마찬가지.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고, 하여간 열차를 버려라. 왜 우리는 지구를 버려야 하는가? 안다는 평론가들이 지구를 버리기로 합의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이 영화는 확실히 뒤뚱대는 영화다. 우선 열차라는 닫힌공간이 뒤뚱대는 공간이다. 뒤뚱댄다는 것은 연동된다는 것이다. 벌레가 꿈틀거리듯이 열차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꿈틀댄다. 좀비가 뒤뚱대듯, 처키가 걸어가듯열차가 뒤뚱댄다. 선이 굵은 영화다. 열차는 통째로 굵고 긴 하나의 선이다.
스포일러 때문에.. 깊은 이야기를 못하겠다. 하여간 미스터고는 안봤지만.. 흥행이 저조하다고 하니.. 기대에 못미친 듯 하다. 고릴라 털 CG 잘했다고 자랑하는건 미친 짓이다. 그딴거 뭐하러 신경써?
아바타가 CG 잘해서 떴나? 천만에. 아바타의 공간이 뒤뚱대는 무중력공간이었기 때문에 뜬 거다. 바위가 공중에 떠 있다. 마이클잭슨의 문워크처럼, 지붕위에서 뒤뚱대는 와호장룡처럼. 중력이 없는 기이한 공간에서 뒤뚱댔기 때문에 뜬 거다. 그게 본질.
둘리가 CG로 처리된 실사판 둘리 나오면 영화 대박난다. 둘리 걸음걸이가 뒤뚱대기 때문이다. 또치나 도우너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잼없다. 오직 둘리 뿐.
필자가 헐리우드 영화.. 특히 ‘무슨 맨’ 나오는 영화..를 비판하는 이유는 악당이 주인공보다 더 멋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찌질이 주인공의 뒤늦은 활약보다 악당의 고뇌에 더 관심이 간다. 천재악당의 광기.. 그들은 초인이다. (헐리우드 맨영화 주인공이 찌질이인 이유는 관객들이 찌질하기 때문. 감정이입 하라고.)
설국열차에서, 약했지만 송강호가 악당보다 더 또라이였다. 진정한 또라이를 보고 싶다. 또라이는 뒤뚱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초인이기 때문이다.
P.S.
덧붙이자면 미스터고에는 악당 고릴라가 나온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대칭행동. 망하는 공식. 근데 설국열차는 대칭으로 가다가 비대칭으로 끝납니다. 더 말하면 스포일러지만. 이건 고수만이 할 수 있는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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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석 5회가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