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주인은 누구인가?

역사는 우연한 사건들의 무질서한 집합이 아니라, 거대한 에너지의 소용돌이다. 강물이 때로는 깊은 소를 이루고, 때로는 거친 협곡을 이루는 것은 강물의 수량과 부근의 지형이 상호작용하는데 따른 복잡한 함수관계가 있다.

과학가는 거기서 필연성을 읽어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거기에 미학적 완전성이 숨어 있다. 반도는 반도대로, 대륙은 대륙대로, 섬은 섬대로 자기류의 완전성을 가진다. 역사가에게는 그 완전성을 읽어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과거를 기록하고 되돌아봄은 미래에 대비하고자 함이다.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용틀임하며 하나의 기승전결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아채야 한다. 과거가 질문하면 미래는 응답한다. 둘은 마주보고 있다. 대화하고 있다.

과거가 무엇을 질문했는지 알아채면 미래가 무엇을 대답할건지 알 수 있다. 다가오는 미래를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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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에서 9월 10일로 정해진 스승의 날을, 공자탄신일인 9월 28일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중국은 왜 또 생뚱맞게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보시라이가 충칭에서 ‘모택동어록 외우기 운동’을 했다는걸 보면 이해가 될 법 하다. 살아있는 우상의 폭주를 막으려면 죽은 성인이라도 불러내야 할 판이다. 그렇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역대 왕조의 시조들에게 공통된 고민은 나라이름 짓기였다. 5대 10국에 5호 16국이면 외어야 할 나라이름이 너무 많아서 중국에 태어나지 않은게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후당, 후진, 후한, 후주로 보면 나라이름이 실제 역사를 거꾸로 되짚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後자는 구분이고 국명은 당, 진, 한, 주다.

늦게 팬 장작이 위로 올라가는 법칙을 따라, 나중에 생긴 나라가 더 옛날 이름을 취한다. 중국의 역사가 주나라부터 시작되니 주에서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그래서 오대가 끝나고 송이 들어선 것이라고 하면 말 되겠다.

우리나라도 고려보다 조선이 더 옛날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왜 한사코 옛날로 되돌아가려고 할까? 족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보시라이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다. 과거를 불러내어 미래와 호응시켜 완전성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역사의 치고나가는 방향성을 제시하여, 어문 보시라이들의 돌출행동을 막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일베충의 준동을 막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식민사관은 조선을 실패한 역사로 규정하고, 그 이유를 당쟁탓으로 돌린다. 반대로 조선은 성공한 역사이며 그 이유는 당쟁 때문이다. 당쟁을 누가 만들었는가? 정도전이 만들었다. 모든 사태의 배후에 큰 그림자 정도전이 있다. 정도전이 조선의 컨셉을 정했을 때 훗날의 당쟁은 예비되어 있었다.

정도전이 정한 것을 이방원이 엎었다. 조광조가 되살렸다. 말바꾸기 전문의 중종이 뒤통수를 쳤다. 그러다가 선조 대에 퇴계와 율곡이 일어났다. 이들은 비유하여 말하자면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무엇인가? 우리는 당쟁이라고 말하지만 틀렸다. ‘성인聖人의 출현’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비로소 족보가 만들어졌다. 그렇다. 완전성은 그 족보에 있다. 역사의 방향제시다.

과거와 미래를 호응시키는 방법으로 집단의 치고나가는 방향성을 제시하려면 족보가 필요하다. 족보를 만들려면 시조가 있어야 한다. 모르겠거든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족보를 찾아볼 일이다.

흔히 군사부일체라고 하지만, 임금 입장에서는 어림없는 수작이다. 임금은 천자다. 천자는 신이다. 감히 신과 맞먹으려 든다는 말인가? 주리를 틀고 능지처참을 당할 일이다. 그런데 공자가 성인이 되었다는 말은 임금 위에 올려져 있다는 말이다. 공자는 사대부 집단의 성인이다. 사대부 족보의 꼭지점이다.

그렇다면 민중의 성인은 누구인가? 관우다. 중국에서 관우는 임금보다 지위가 높아서 아주 신이 되었다. 천자天子가 신의 아들인데 비해 관우는 신 그 자체다. 관성대제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자가 뜨면 관우도 뜬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의 쌍발생 원칙이 적용된 것이다.

졸지에 황제는 넘버 쓰리가 되어버렸다. 황제는 천자이니 신의 아들이다. 신이나 진배없다. 그런데 신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뜬금없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좀 생뚱맞겠지만 사실은 내가 신이걸랑요.’ 이건 좀 어색하다.

중국은 워낙 왕조가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오랑캐의 침략에 시달리던 송나라에 와서 중국적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유교주의 르네상스와 함께 관우신앙을 퍼뜨린 것이다. 사대부들이 문인 공자를 띄우자, 무인 관우로 대칭시켰다.

정확하게는 군사적인 재능이 없었던 송나라 휘종이 면피할 요량으로 관우를 무안왕으로 봉하여 관우신앙을 퍼뜨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랑캐의 침략을 받아 황제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마당에 별 수 없다. 이판사판이다.

신은 원래부터 있어야 한다. 5호 16국에 5대 10국으로 난립한 마당에 임금이 문득 나타나서 ‘뜬금없지만 제가 신인데요.’ 하면 이상하다. 그래서 공자를 신으로 삼아 성인이라고 부른다. 임금은 공자 뒤에 숨어 슬그머니 따라붙는다. ‘나두요.’ 근데 민중은 공자를 모르므로 관우로 균형을 맞춘다. 공자에 관우에 천자로 3위일체가 안성맞춤이다.

무엇인가? 고려만 해도 무신정치가 횡행해서 임금의 권위가 없었다. 변방에서 새로 개국한 조선왕이 신을 자처하려니 중국황제가 신경쓰인다. 대책이 있어야 한다. 중국이 공자와 관우와 천자로 균형을 맞추듯이, 우리도 퇴계와 율곡과 선조임금으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구조론의 축과 날개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성인을 굳이 켸켸묵은 역사책에서 찾을 필요가 있나? 살아있는 성인이면 어떠리? 정여립이다. 그렇다. 조선의 성인족보를 보자면 정도전, 조광조, 이퇴계, 이율곡, 정여립, 송시열 이렇게 된다. 실제로 이 양반들이 다 성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면의 에너지 흐름이 있다는 말이다. 역사의 질문과 응답이 있다는 말이다. 구조 안에 미학적 완전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도전은 조선의 컨셉을 규정한 사람이다. 물론 이방원에 의해 없었던 일로 되었지만, 한 번 만들어진 시스템은 기어코 되살아난다. 사림이 없으면 환관과 외척인데 이건 나라 말아먹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연산군이 개판을 치자 반정을 일으킨 중종이 혹시 ‘성인할 넘 없나’ 하고 주변을 살피다가, 멀뚱한 조광조에게 ‘야! 너 성인해볼래?’ 하고 시킨 거다.

조광조는 자신이 성인된 줄로 알고 오버하다가 죽었다. 성인이 없으니 나라가 아주 개판이 되어 임꺽정 도당이 들고 일어났다. 선조 대에 다시 성인발굴 운동을 대대적으로 개시하니 퇴계와 율곡이 나왔다.

◎ 창안 정도전.. 물적 측면에서 시스템의 설계자.
◎ 부흥 조광조.. 잃어버린 정도전의 꿈을 되살려낸 사람.
◎ 번역 이퇴계.. 심적 측면에서 중국 시스템을 도입한 사람.
◎ 발명 이율곡.. 심적 측면에서 조선 시스템을 창안한 사람.
◎ 이단 정여립..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꾀한 사람.
◎ 교주 송시열.. 시스템의 종교화를 시도한 사람.

중국사에서 사림이 의미있는 역할을 한 일은 없다. 워낙 전란이 잦았기 때문이다. 뭐 좀 해보려 하면 오랑캐가 쳐들어와서 짓밟아버리기 때문이다. 남조시대와 송나라때 약간의 빛은 있었다. 조선에서는 확실히 사림이 의미있는 역할을 했다. 사림의 족보, 성인의 족보를 인정해야 뉴라이트 교과서에 절대로 없는 조선의 진짜 역사가 되살아난다.

조선왕조 500년은 하나의 컨셉을 가지고 기승전결을 이루며, 밑바닥 에너지의 용틀임에 의하여 줄기차게 내달려온 것이다. 처음 질문을 던진 사람은 삼봉 정도전이고 그러한 역사의 질문에 나름대로 응답한 사람이 조광조와 퇴계와 율곡과 정여립과 송시열이다. 우리가 이 그림을 알아야 한다.

역사를 평가하는 기준은 개인의 업적을 뒤지는 것이기 쉽다. 그런 식의 파편화된 관점으로는 역사의 큰 줄기를 보지 못한다. 역사의 필연성을 헤아리지 못한다. 박정희도 공적은 있다는 식의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일본처럼 어문 길로 들어서면 한때 반짝 하다가 오랜 침체를 맞게 된다.

대한민국은 곧 죽어도 김구 선생의 컨셉으로 간다. 이승만이나 박정희나 전두환은 설사 공적이 있다해도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의 컨셉과 맞지 않으므로 안 쳐주는 거다. 우리 헌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 기승전결로 봐야 한다.

조선의 컨셉은 정도전에서 나왔고, 조광조가 이를 천하에 밝혔으며, 퇴계가 성인개념을 도입해서 거기에 살을 채웠다. 뼈대에 살이 붙어서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퇴계의 성인은 중국성인이었기에 율곡이 이를 조선화 시켰다. 한 편으로는 송시열이 자기를 높이기 위해 율곡을 이용했다.

정여립은 죽은 성인이 아니라 살아있는 성인 컨셉을 던졌다. 말하자면 보시라이가 출현한 것이다. 나라가 성인무드로 가자 선조는 스스로 요순임금을 자처하며 성인으로 행세했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임금성인으로 추앙받았다.

임금성인과 선비성인의 공존은 불가능하다. 정여립이 죽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시진핑이 보시라이를 치는 것은 또한 당연지사. 정여립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정도전이 처음 컨셉을 던졌을 때 필연적으로 정여립은 나타나게 되어 있다. 띄운 컨셉이 선비들에게 영감을 주고 이에 추종자가 몰려드는 것이다.

청나라가 지구상에서 문명을 없애버리자, 조선이 지구에 남은 최후의 문명국가로 되었다. 조선인의 기준으로는 그렇다. 이에 구심점 역할을 할 성인이 필요하다 해서 스스로 성인행세를 한 사람이 송시열이다. ‘성인이 필요해.’ ‘없잖아.’ ‘내가 해보께.’효종이 죽고 모든 것은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났다. 송시열이 성인이면 임금보다 높냐? 이 질문은 송시열을 죽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시스템의 관점으로 보는가이다. 맥락으로 보는가이다. 공자가 성인으로 떠받들여지는 이유는 공자말씀이 지당한 말씀이어서가 아니라, 사림의 족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족보를 쓰려면 당연히 시조가 있어야 한다. 알에서 나오거나 금궤에서 나오거나 뭐 이런게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자다. 공자가 처음 학문의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명의 등불이 켜진 것이며, 말하자면 제법 알에서 짠~~~! 하고 나온 느낌이 된다. 공자가 뜨면 균형을 맞추도록 관우도 떠준다. 중국의 관우신앙은 우리의 상상이상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의하면 아무리 궁벽한 촌락이라도 관제묘는 반드시 있었다고 한다.

공자와 관우가 만들어내는 아우라 안에서 황제가 기능하는 것이다. 맨날 오랑캐에게 줘터지는 우스운 황제니까 말이다. 쪽 팔려서 말이다. 중국사 5천년 중에 한족의 집권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거의 오랑캐가 먹었다.

조선사를 이해한다 함은 조선의 독립적인 컨셉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것은 송나라가 오랑캐에 짓밟히며 남쪽으로 도망쳤을 때, 주자가 문명과 야만의 개념을 정립하여, 선비집단의 공론에 의한 정치시스템을 제안하고, 이를 중국적 정체성으로 규정한데 따른 것이고, 이 개념을 조선에 토착화시킨 사람이 퇴계다.

조선에 맞는 이상국가를 만들고자 한 사람이 정도전이다. 만약 이방원이 없었고 정도전의 요동정벌이 성공했다면 정도전과 이성계는 공자와 관우 역할을 나누어 맡았을 것이다. 효종의 북벌이 실패하자 성인은 필요없게 되었다. 송시열이 죽고 이후로는 성인 비슷한 것도 출현하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책은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컨셉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본에 없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식민사관을 비판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자세히 살펴보면 정확하게 식민사관에 중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컨셉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식민사관의 극복은 불가능하다. 조선의 컨셉을 알아채지 못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한 백범의 컨셉을 알아챌 수는 없는 일이다. 해방이후 한국사는 백범의 질문에 응답하는 역사다. 장준하와 김대중과 노무현이 응답했고 우리는 또 그 응답을 이어갈 것이다.

무엇인가? 정도전, 조광조, 퇴계, 율곡, 정여립, 송시열은 각각의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컨셉을 공유하고 이를 전개시켜 커다란 족보를 이룬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가지 사건의 맥락 안에 있다. 기승전결로 이어가며 커다란 그림을 그려낸다. 그대가 그 그림을 보았는가이다.

조선의 그림을 본 사람만이 대한민국의 그림을 알아챌 수 있다. 오늘날 서구정신을 규정하는 밑바탕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라는 컨셉이다. 성경은 창세에서 말세까지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그림이다. 헬레니즘은 아프로디테의 석상과 같은 미학적 완전성의 컨셉이다. 영감의 원천이 되며 이심전심의 소통을 낳는다.

오늘날 일본인들이 입고 다니는 옷은 당나라때 중국옷이다. 그들은 중국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직도 중국글자를 쓴다. 거기서 일본의 한계는 결정되었다. 조선인은 중국인 되기를 거부하고 조선만의 디자인을 만들어낸 것이 우리의 한복이다. 원래 없었고 조선시대에 새로 만들어낸 디자인이다.

그게 그냥 되는게 아니고 반드시 족보가 있어야 된다. 중국과 차별화 하고 오랑캐에 저항하자는 정신이 우리에게 있었기에 된다. 그러한 역사의 성취를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 왜? 우리가 앞으로 밥먹고 살려면 제조업만으로 부족하고 디자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거기서 밥이 나오기 때문이다.

제조업 시대는 갔습니다. 앞으로는 생각으로 밥먹고 살아야 합니다. 혼자 생각으로 안 되고 팀을 꾸려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들었던 드림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생각연구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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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3-09-1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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