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략정치의 말로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일을 하느냐, 일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클린턴과 부시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진보가 일해서 돈벌때, 보수는 편하게 남의 것을 뺏는다. 내것을 늘리나 상대것을 줄이나 결과는 같으니까.

박근혜의 모략정치는 진작에 예견되었다. 예전에 칼럼에 썼지만 강희제는 하루 4시간을 자며 하루 최대 500건의 문서를 처리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하루에 30개의 보고서를 읽었다. 박근혜는? 많아야 0개다.

“짐은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는데 오직 오삼계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에만 하루에 500건의 업무를 처리하느라 자정을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른 군사작전 때는 하루 400건에 달하는 상주문을 처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하루에 50건 정도의 상주문을 처리하는데 이 정도면 읽기에도 수월하고, 상주문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 주는 것도 힘들지 않다.”(강희자전)

그런 강정제도 옹정제를 당하지 못한다. 일중독자였던 옹정제는 하루에 강희제 일주일치 일을 해치웠다고 한다.

필자가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의아하게 생각한 일 중에 하나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 것이었다. 어떤 책을 읽는게 아니라, 모든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이야기 들어가야 한다.

필자도 책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나, 애초에 태도가 틀려먹었다. 필자는 책을 읽다가 중간에 놓은 책은 두 번 다시 잡지 않았고, 읽을 책은 서점에 서서 다 읽은 다음에야 매대에 놓았다. 그러다가 허리가 안좋아졌다.

글은 읽어본 사람이 읽는 것이다. 박근혜나 김영삼이나 부시나 이명박에게 그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일은 보고서 읽기다. 박근혜나 김영삼이나 부시나 이명박에게는 무리다. 모략은 가능하겠으나.

필자가 사람들과 대화해 보고 알아챈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책을 서른페이지나 쉰 페이지를 읽더라는 거다. 나라면 궁금해서라도 그렇게는 못한다.

필자가 미드를 보지 않는 이유는, 한국드라마도 마찬가지지만, 미드를 보기 시작하면 당일에 끝까지 다봐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편씩 본다?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책 한 권을 일주일씩 읽는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책을 다 읽고 놓느냐 아니면 며칠씩 읽느냐가 아닐까 싶다.

전두환 시절 이야기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방문을 하는데 기자가 보니까 무슨 읽다가 놓아둔 책이 있었는데 그것이 목민심서였던가 뭐였던가 하더라는 말이다. 피식 웃을 밖에.

“이보게 책을 읽다가 놓아두면, 그것은 책읽는 것이 아니라네. 책갈피 쓰는 사람은 책읽는 사람이 아니라네.” 하긴 필자도 젊었을 때나 좀 읽었지 요즘은 아니다. 그러나 읽다가 덮은 책은 기분 나빠서 다시 못 본다.

지난번 칼럼에 썼던 루이 14세의 시스템 정치를 다른 왕들은 왜 따라하지 않을까?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루이 14세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옷입는 일조차 대단한 행사였다.

귀족들이 줄지어 도열한 채로 각자 양말과 조끼와 셔츠 따위를 들고 대기하다가 ‘영광이로소이다’를 외치며, 임금 옷입는 행사와, 임금 기도하는 행사와, 임금 밥먹는 행사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건 매우 피곤한 일이다.

심지어 의자가 화장실 변기를 겸하는 구조로 되어서, 똥 싸면서 집무를 보았다. 루이 14세는 엉터리 의사에게 속아서 치아를 다 뽑아버렸는데다, 의사의 권고로 설사약을 먹어서 하루종일 설사를 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편하게 지내려면 진시황처럼 담장을 높이 쌓고, 자신의 위치를 감추고, 업무를 재상에게 대리하게 하고, 궁녀나 찾아다니면 된다. 그렇게 하면? 불안해진다. 신하들이 무슨 역적모의를 꾸미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조선의 역대 왕들 중에서 훌륭한 왕들은 모두 정력적으로 일했다. 끊임없이 신하들과 대화를 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신하들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임금이 명재상에게 업무를 맡긴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황희정승은 세종만큼 일하지 않았고, 체재공보다 정조가 더 많이 일했다.

임금이 일하지 않으면 신하를 만나지 않게 된다. 임금이 신하를 부르지 않으면 신하는 불안해져서 역모를 꾸민다. 임금 역시 불안해져서 역모사건을 일으킨다. 모략정치로 가는 것이다.

일하기 싫은 왕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모략을 꾸밀 수 밖에 없다. 왕조실록에서 역모사건이 일어난 빈도를 조사해서 그 임금이 일을 했는지 아니면 놀았는지 알 수 있다. 임금이 노는 정도에 비례하여 역모가 일어난다. 임금이 일하지 않고 놀았는데도 역모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보나마나 그 임금은 독살당했다.

젊었을 때 정력적으로 일하다가도, 말년이 되면 모략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드니까 편해지고 싶은 것이다. 임금이 문득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고 선언한다. 신하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세자에게 보고서를 올리는 즉시 목이 달아난다. 이건 태종 이방원의 수법이다.

상대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해 계속 테스트를 하고, 스트레스를 가하고 긴장을 유지한다. 이때는 신하들도 살기 위하여 모략으로 대응한다. 결국 모두가 거짓말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역모사건은 고문을 해서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위에서 다 결정되어 있다며, 가족의 목숨을 가지고 흥정을 하는 것이다. 너의 죽음은 결정되었고, 임금이 원하는 답변을 해주면 가족은 살려준다는 식의 협상이다.

임금이 죽이고자 하는 신하의 연루를 발설하라는 거다. 이런 짓을 계속해야 국가가 유지된다. 외적이 쳐들어오지 않으니 내적을 발명한다. 만약 석달동안 간첩이 잡히지 않거나, 6개월동안 역모사건이 없으면 안팎이 두루 불안해진다.

상호작용을 늘려야 한다. 방법은 역모사건의 연출이다. 이석기의 전쟁위기 조장이나, 박근혜의 내란음모 조작이나 같다. 목적은 일하지 않는 왕의 존재감 연출이다. 요즘 공무원들은 위에서 공문이 내려오지 않아 한가해졌다고 한다. 청와대가 모략에 빠져 있으니까 공무원들은 할 일이 없다.

바른 정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하여 집단지능을 형성해가는 것이다. 대개 위기는 바깥에서 온다. 새로운 상품이 쏟아지거나, 새로운 문화가 전파되거나, 외적이 침략하거나다. 위기에 대한 대응을 통해 집단은 긴장을 유지하고 상호작용을 늘려간다. 국가는 창의적으로 변한다. 나쁜 정치는 모략으로 그러한 상호작용을 대신한다. 제 환공의 말로가 된다.

우리는 무엇을 목도하고 있는가? 이석기의 모략을 폭로하는 국정원의 모략이다. 국정원의 모략을 파헤치는 검찰을 탄압하는 박근혜의 모략이다. 눈에 보이는 모략은 보이지 않는 ‘일하지 않음’의 증거다. 대통령 일은보고서 읽기다. 하루에 30개의 보고서를 읽을 능력이 안 되는 자가 위정자가 되어 있으면 이런 사태가 난다.

왕이 일하지 않은 증거는 역모사건의 숫자를 헤아려서 알 수 있고, 대통령이 일하지 않는 증거는 모략사건의 숫자로짚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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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3-09-1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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