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구조로 되어 있다. 구조로 보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2가 1이 되는 것이 구조다. 2는 밟아야 할 절차다. 절차없이 결론을 내리면 일단 아닌 것이다. 언어라면 주어와 동사 2로 의미를 이룬다.

문장은 전제와 진술 2로 맥락을 이룬다. 2는 의사결정과정이다. 무엇이든 그것을 결정하는 절차를 밟지 않고 결정했다고 하면 보나마나 거짓이다. 무엇이든 어떤 결정과정을 거쳐서 인간에게 도달한다.

세종대왕은 자음과 모음 2로 1을 이루는 문자를 만들었다. 한글을 제외한 모든 문자는 1로 1을 나타낸다. 한자든 영어든 일본어든 한 개의 글자로 한 개의 음이나 뜻을 표시한다. 구조적이지 않다.

색깔도 빛과 색의 2로 색깔을 이룬다. 빛은 무슨 색이든 될 수 있다. 나뭇잎은 초록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의 붉은빛을 흡수하고 쓸모없는 초록을 버린다. 그러므로 나뭇잎의 진짜 색깔은 붉은 색이다.

왜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까? 엽록소가 죽으면서 나뭇잎의 진짜 색이 드러난 것이다. 소리는 하나이나 치는 북채와 떠는 북가죽의 2로 하나의 소리를 이룬다. 언어는 성대와 혀의 2로 소리를 이룬다.

성대는 모음이고 혀는 자음이다. 사람은 어머니와 아버지 2로 자식 1을 이룬다. 예외는 없다. 왜?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결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며 절차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구조는 질, 입자, 힘, 운동, 량 다섯이 있다. 2≫1의 전개를 5회 반복한다. 부모 2가 자식 1이 되고, 자식이 또 결혼하여 2≫1을 반복한다. 질 하나가 쪼개지면 입자 2가 되므로 2가 1 1로 바뀐다.

중핵은 복제다. 입자는 질을 복제하고, 힘은 입자를 복제하고, 운동은 힘을 복제하고, 양은 운동을 복제한다. 한 단계 복제될 때마다 영역이 축소된다.

질은 사건으로 존재한다. 사건은 시간이 걸린다. 풍선에 바람을 분다면 입력이다. 바람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간다. 의사결정이 밖에서 일어난다. 문제는 출구가 없다는 거. 입력부가 곧 출력부다.

입력과 출력이 일어나려면 어떻든 일정한 시간이 걸려야 한다. 입구 하나를 입력과 출력이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건이다. 입자는 의사결정이 내부의 축에서 일어난다. 엄마가 아기를 낳는다.

들어간 데로 나온다. 입력부와 출력부가 같다. 이때 엄마가 결정한다. 밖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엄마가 아기를 유산하면 그것이 아기의 의사이겠는가? 이 구조를 드라마로 옮겨볼 수 있다.

◎ 질은 사건 – 선과 악, 아와 피아 사이의 상호작용.

◎ 입자는 캐릭터 – 상호작용하는 양측을 합친 복합적인 캐릭터.

◎ 힘은 변신 - 복합적인 성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대표한다.

◎ 운동은 보여주기 - 액션, 멜로, 코믹, 호러, 음악 등 시간때우기.

◎ 량은 승부 - 각 에피소드들의 결말. 감동, 교훈 등 소득.

입자는 캐릭터다. 힘은 변신이다. 운동은 보여주기다. 량은 승부다. 중요한 점은 입자가 질을 복제한다는 점이다. 사건은 선과 악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캐릭터는 선과 악을 겸비해야 한다.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로 나눈다면 어떨까? 인물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 춘향전이라면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로 완전히 나누어져 있다. 누가 결정했는가? 아무도 의사결정을 하지 않았다.

춘향도 몽룡도 결정한 것이 없다. 춘향이 절개를 지켰다지만 춘향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성춘향과 변학도의 충돌이라는 사건이 전부 결정한 것이다. 자유의지는 없다.

몽룡이 어사출도를 놓았다지만 어사는 원래 직업이 그런 거다. 방자의 행동은 원래 방자의 행동이다. 각자 자기 배역을 연기할 뿐 독립적 의사결정을 한 것이 없다. 햄릿은 적어도 결정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고 고민한 끝에 뭔가 해낸 것이다. 그러나 변학도는 고민하지 않았다. 춘향도 고민하지 않았다. 몽룡도 고민하지 않았다. 방자도 고민하지 않았다. 실패다.

햄릿은 그것을 고민했기 때문에 가치가 있지만, 원래 고민하는 성격이라서 고민했다면 실패다. 진정한 걸작이면 인물이 변신해야 하며 그 변신과정을 남득시켜야 한다. 더 큰 승부로 올라서기다.

입자의 의미가 인물의 독립적 의사결정에 있을진대 춘향전의 인물은 결정한 것이 없다. 결정하려면 질의 성질인 선과 악, 아와 피아의 대립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하는 모순된 성격이어야 한다.

인물이 선하면서 악해야 한다. 김기덕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힘은 변신이다. 캐릭터는 복합적인 성격이어야 하며,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졌다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변신이다.

그냥 변신하는건 이상하고 원래 두 성격이 인물 안에 있어야 한다. 원래 멍청하던 사람이 혁명과정에서 갑자기 깨달아 영웅이 된다는 식의 계몽주의 소설은 최악이다. 그건 꾸며낸 가짜다.

전봉준은 평범한 농부였는데 지배계급의 착취현장을 목격하고 분노하여 문득 성격이 변했다는 식은 최악이다. 생각이 바뀌어서 변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운명이 바뀌어서 변하는 것이다.

운동은 코믹, 액션, 멜로의 보여주기로 시간을 때우는 것이고 량은 결론이다. 선이 악을 이기든, 강이 약을 이기든, 시스템이 개인을 이기든, 집단이 독재자를 이기든 어떤 결과물을 감동 혹은 교훈의 형태로 관객에게 침투시킨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전개는 다음 단계가 앞선 단계를 복제하면서 점점 범위를 축소시키는데 있다. 질은 사건인데 입자는 그 사건이 인물 안에 있는 것이다. 힘은 변신하는 지점 안에 있다.

운동은 보여주기 안에 있고 량은 하나의 장면 안에 있다. 그러면서 작아진다. 나무로 치면 전체의 큰 패턴을 줄기와 가지와 잎이 잘게 나누어서 반복하는 것이다. 계속 2에서 1로 간다.

인생이 하나의 사건이라면 그 인생의 성패를 대표하는 성취가 입자다. 힉스의 인생이 하나의 사건이면 노벨상 수상이 그 인생을 대표하는 성취다. 힉스입자 발견이 그 사람을 변신시켰다.

전체 사건 안에 그 전체를 대표하는 입자가 있고 그 입자 안에 그 입자를 대표하는 어떤 변신이 있다. 그 변신과정에 어떤 액션이나 멜로의 보여주기가 있다. 그 보여주기 안에 승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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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3-10-1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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