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식 개그
한때 위기라던 개콘이 살아났다. 잼있는 점은 최근에 미녀개그맨이 많아졌다는 거다. 미녀와 개그는 어울리지 않는다. 웃기는 공식은 멍청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똑똑이가 꾸짖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개그는 심형래같은 멍청이 캐릭터와 엄용수같은 똑똑이 캐릭터를 대칭시키되 중간에서 전유성 같은 싱겁이 캐릭터가 균형을 잡는 식이다. 어떤 개그이든 멍똑싱 3위일체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개콘의 두근두근, 편하게 있어, 남자가 필요없는 이유, 놈놈놈은 상투적인 멍똑대칭이 깨졌다. 김병만이 멍청이짓을 하면 똑똑이 류담이 때리고, 싱겁이 노우진이 거드는 전통적인 구조가 아니다.
‘황해’만 해도 멍청이 정창민의 헛수작, 똑똑이 이수지의 꾸지람에 싱겁이 이상구의 상황정리로 가며 전통적인 포맷을 따르는데 말이다. 그러나 어떤 개그이든 대칭과 비대칭의 본질은 넘어설 수 없다.
나는 개콘 트렌드의 배후에 홍상수가 있다고 본다. 인간관계의 어색함을 파고드는 홍상수식 개그가 영화로는 재미를 못 봤지만, 코미디로 옮겨간 것이다. 생활의 발견은 실패지만 다양하게 진화했다.
‘두근두근’이나 ‘편하게 있어’ 등은 더 세게 나간 생활의 발견이다. 그러면서 미녀개그맨의 활동공간이 넓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홍상수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홍상수영화는 딱 한 편만 봐도 된다.
다른 모든 영화는 그의 전작의 복제요 자기표절이다. 왜인가? 영화는 시각효과로 승부해야 한다. 홍상수 영화에는 이렇다 할 시각효과가 없다. 홍상수영화가 불쾌한 이유는 그 넘의 선배타령 때문이다.
도대체 왜 선배라는게 있냐고? 빌어먹을. 영화 뿐 아니라 TV에서 탤런트들이 선배타령, 형님타령 하면 짜증난다. 방송에서 사적관계를 내세우면 안 된다. 선배대접 받다가 망가진 개그맨이 이경규다.
선배코드로 이윤석 갈구며 웃겨볼려고 했는데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심지어 아빠 어디가는 8살 꼬맹이들도 형동생을 따지고 있다. 그냥 동무지 무슨 형이냐고? 방송에서 민국이형 이러면 안된다.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냥 이름 부르는 거다. 하여간 홍상수 영화의 본질은 선후배관계이며 이것이 영화를 망해먹은 이유다. 근데 또 그게 없으면 영화를 못 찍는 양반이 홍상수다. 꼬인 팔자다.
대한민국은 선배가 끌어주고 후배가 밀어주는 수직사회에서 각개약진하는 수평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인간관계의 어색함이 늘어난 만큼, 어색함을 극복하는 스킬도 늘어났다. 그래서 개콘이 뜬다.
선배가 있었던 자리를 빠르게 미녀가 잠식한다. 무엇인가? 선배는 권력자다. 홍상수영화의 주인공은 권력자 선배에게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빌빌거린다. 근데 이제는 상전이 벽해되어 미녀가 권력자다.(미남도 간간이)
선배권력 이경규는 몰락하고 미녀권력 신보라가 그 빈 자리를 꿰찬 것이다. 어쨌든 선배권력 홍상수영화는 몰락하고 미녀권력 개콘은 뜬 것이다. 인간관계의 어색함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예의범절이다.
예의범절은 개수작이고 한 마디로 선배권력이다. 예의범절 좋아하네. 빌어먹을! 어쨌든 예의범절이 있고 선배권력이 있어야 후배들은 어색함을 피하여 적당히 눈치보고 자리잡는다. 이윤석도 불만없다.
앞에서 말한 멍똑싱 삼위일체 구조는 선배권력과 후배아부의 대칭구도가 축과 날개로 구조론의 시소를 이룬 것이다. 이 구조는 도둑과 경찰의 대칭구도로 흔히 변주된다. 근데 귀막힌 경찰서는 다르다.
요즘 유행하는 개콘의 트렌드는 도둑과 경찰, 선배와 후배, 강자와 약자, 뚱보와 홀쭉이, 멍청이와 똑똑이의 수직적 대칭구조를 남녀사이의 수평적 구도로 바꾼 것이다. 그 결과는? 매우 어색해졌다.
어색하면 코미디가 안 된다. 관객을 불편하게 할 뿐. 개콘 생활의 발견도 그닥 웃기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는 싱겁이캐릭터가 발전해야 곤란한 교착이 타개된다. 주로 여장남자 개그맨이 싱겁이를 한다.
뿜 엔터테인먼트에서 김준호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유도 싱겁이가 상황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달인에서 노우진은 김병만의 행동을 재연한다. 싱겁이의 패러디가 상황종결의 테크닉이다.
김기덕의 풍산개는 한반도의 넓은 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지하실의 좁은 공간에서 재현한다. 주유소 습격사건은 모든 인물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폭파한다. 시간구조를 공간구조로 전환하며 극을 끝낸다.
사건은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이를 공간에서 교착시키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 말하자면 기승전결로 가는 시간구조를 기승전병의 공간구조로 전환하는 기술이 개발된게 개콘이 뜨는 이유다.
삶의 많은 지점들에서 우리는 어색함과 부딪힌다. 어색함을 피하는 방법은 재빨리 선후배 공식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선배 뒤에 딱 숨어 있으면 저절로 정리된다. 이 얼마나 좋은가? 이경규 망했다.
어색함을 정면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개콘이 살아난 이유는 선후배의 도피로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고전적 선배권력을 미녀권력, 미남권력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어색한 장면에서 도망가지 않았다.
싱겁이캐릭터가 여장하고 패러디하는 방법으로 물타기했기 때문이다. 시간구조를 공간구조로 타파했기 때문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은 어색하다. 남대문 처마밑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디자인은 어색함을 포착하고 거기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 무량수전을 본 반응은 세가지로 나눠진다. 첫째 ‘볼 것이 없구만. 속았잖아’ 하는 솔직한 반응. 둘째 모르면서 격찬하는 억지 감탄사!
셋째 어색함에서 어떤 섬뜩함을 느끼는 반응.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는 섬뜩한 느낌을 준다. 섬뜩한 느낌을 느껴야 진짜다.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으면 보지 못한 것이다. 그대는 무엇을 보았는가?
류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속아서 ‘좋잖아!’를 연발하지만 어색하다. 그 장면이야말로 개콘에서 다루어져야 할 이상한 장면이다. 솔직히 부석사 무량수전이 뭐가 좋냐고? 좋은게 없어서 좋은거다.
나무와 나무를 조립하여 집을 만들면 많은 지점들에서 문제점이 노출된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그 문제점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어색한 구조이고 어색해서 진짜다. 남대문은 온갖 떡칠로 물탔다.
남대문 처마밑은 단단하고 웅장하고 화려하다. 늙은 아줌마의 떡칠화장과 같다. 그래서 아닌 것이다. 화장하지 않은 소녀의 민낯을 부석사 무량수전은 보여준다. 많은 고민과 쓸쓸함과 어설픔을.
기승전병에서 병은 기승전결의 시간적 전개를 공간구조로 전환하는 패러디.
P.S.
**할 말은 많지만 사실은 개콘을 많이 안 봐서 다 풀어놓기엔 버겁소. 나머지 이야기는 좀 더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