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문제

필자가 강신주를 아는 것도 아니고, 그 양반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강신주 개인에 대한 논평이 아니고, 세계의 모든 자칭 타칭 철학자들에게 공통되는 이야기다.

물리학자라면 첨단 물리학을 해야 한다. 물리학자라는 사람이 물리학에 대한 최신이론을 한 편도 발표하지 않았다면, 강단에서 300년 전의 뉴턴이나 가르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물리학자가 아닌 거다.

건축가라는 사람이 집을 한 채도 짓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건축가 아니다. 화가라는 사람이 그림을 한 폭도 그리지 않았다면? 화가 아니다. 소설가라면 소설을 써야 하고 시인이라면 시를 써야 한다.

자칭 시인이라는 사람이 이태백의 시나 외우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시인이 아니다. 가수라는 사람이 남의 노래나 부르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가수 아니다. 나훈아는 가수지만 너훈아는 가수가 아니다.

물론 너훈아 씨도 한때 음반을 냈으므로, 누가 물으면 직업을 가수라고 소개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너훈아라는 타이틀은 가수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자기 이름으로 음반을 내고 활동을 해야 가수다.

이미테이션 가수는 가수가 아니다. 수의사는 의사가 아니고, 장의사도 의사가 아니다. 철학자는 자기 이름으로 철학해야 하며 그 철학은 최신철학이어야 하고 그 대상은 인류 최고지성의 것이어야 한다.

철학자는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주는 사람이다. 그 시대는 새 시대여야 하며, 그 정의는 새 정의여야 한다. 그 대상은 최고레벨이어야 한다. 인류 대표자를 대표하는 것이어야 한다.

차를 팔아도 신차를 팔아야지 중고차 팔면 안 된다. 음식을 요리해도 새 요리를 내와야지 냉장고에서 음식 꺼내오면 안 된다. 연주를 해도 직접 건반을 두들겨야지 CD 틀어놓고 앉아있으면 곤란하다.

철학자는 어제까지 지구에 없던 새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어제도 있었고 그저께도 있던 남의 이야기를 재탕한다면 학자가 아니다. 중개상일 뿐. 대중을 상대로 강연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그건 철학자의 외도다. 철학자도 먹고 살아야 하므로 외도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도 먹고 살려고 과외교습을 한 적이 있으니깐.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과외교습은 물리학이 아니다. 그 양반의 부업이다.

목사는 자기 주장을 내놓지 않는다. 예수 주장을 전할 뿐이다. 그들은 남의 말을 옮기는 중간 전달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학자가 아니다. 학자가 아니므로 대접받지 못한다. 강신주는 철학자가 아니다.

물론 이는 필자의 입장이고 학계에서 먹어주느냐는 별도다. 우간다나 짐바브웨에서는 주술사도 의사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한의사는 의사가 아니지만 한의사를 찾은 환자들은 의사라고 여길 수 있다.

철학자가 쪽팔리게 공자나 맹자를 팔며 남의 철학 주워섬긴다면 화가가 모나리자 베껴그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만화가 밑에서 먹칠하는 사람은 만화가 아니다. 독립해서 자기 만화 그려야 만화가다.

그들은 문하생이다. 강신주는 많이 쳐줘봤자 철학생 쯤 된다. 하긴 한국 정도의 후진국이라면 철학생도 철학자라고 우길 수 있다. 못할게 뭐야? 심지어 댓통령도 대통령 행세하는 나라인데 말이다.

다만 쪽팔린 줄을 아는 지성인이라면 그렇게는 못한다는 거다. 지성인이라면 창피해서라도 내 발로 청와대에서 걸어 나온다. 하긴 이것도 사람새끼에게 해당되는 말일 뿐 쥐명박에게 기대할 일은 아니다.

사회에서 강신주가 어떻게 대접받는가는 논외로, 사리가 그렇다. 피아노 교습소 선생과 피아니스트는 다르다. 물론 피아노 학원 선생도 개인적으로 연주회 열고 피아니스트라 우기면 된다. 안될게 뭐야?

미술학원 선생은 좋은 선생이지만 화가는 아니다. 강신주는 좋은 철학선생일지 모르나 철학자 아니다. 시대의 첨단을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 지성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것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의 국가대표로 부족하고, 인류대표 선수라야 한다. 인류를 대표하여 1만년 인류사의 성과를 한 줄에 집약할 때, 그 깃발을 들고 인류의 맨 앞줄에 서야 철학자다. 그렇다면 맨 앞줄에 서는 방법은?

맨 앞에서 나대는 놈을 때리면 된다. 지금 맨 앞에서 나대는 놈이 누구인가? 돈으로는 이건희가 나대고, 종교로는 조용기가 나대고, 정치로는 박근혜가 나대고, 스포츠로는 김연아가 나댄다. 류현진도 있다.

철학자라면 이건희 싸대기를 갈기고, 제 분수를 찾아주어야 한다. 철학자라면 조용기 싸대기를 갈기고 제 위치를 알려줘야 한다. 철학자라면 박근혜 양 싸대기를 날리고 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철학자라면 김연아나 류현진이나 김기덕에 대해서도 걸맞는 평가를 해줘야 한다. 대한민국호 선장 입장에서 교통정리 해줘야 한다. 함부로 나대는 넘은 쥐어박고 평가받지 못하는 사람은 키워줘야 한다.

강신주가 가짜인 이유는 철학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한 흔적 없다. 아줌마들 상대로 찜질방 수다나 늘어놓으면서 그걸 철학이라고 우기면 쓰겠느냐고. 이런 식이면 장의사도 의사간판 들고 나온다.

미아리 철학관 할배들도 참지 않는다. 양자이론을 연구하지 않고, 뉴턴역학이나 가르치면 그게 물리학 선생이지 물리학자는 아니다. 물론 후진국이니까 듣기 좋으라고 물리학자라고 불러줄 수 있다.

어차피 이 나라는 호칭인플레가 유독 심하니까. 시간강사도 교수대접 받는 판에 말이다. 비단 철학 뿐 아니라 다른 분야라도 그렇다. 그 시대의 첨단에 서 있어야 한다. 인류의 대표선수여야 한다.

철학자는 자기 의견을 발표하면 안 된다. 인류의 대표선수로 인류의 의견을 발표해야 한다. 우주의 대표선수로 우주의 의견을 발표해야 한다. ‘저기요. 내 생각은 이렇걸랑요.’ ← 나가 죽어라 이 화상아!

독립군이라고 치자. 따르는 병사가 한 명 밖에 없어도 지휘권을 가지면 장군이다. 안중근 의사라면 혼자서 대장이다. 대장 맞다. 부하가 몇이든 대장이고 장군이다. 당신에게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따르는 부하가 백만 명이라도 결정권 없으면 장군 아니다. 박근혜 눈치보고, 이건의 눈치보고, 교황 눈치보고, 학계 눈치보면서 철학자 아니다. 철학업자지만 그냥 듣기 좋으라고 철학자라 불러주는 거.

자기 신분은 자기가 정하는 거다. 강신주는 자기 스스로 신분을 철학자로 정하지 않았다. 하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곳은 한국이니까. 어제까지는 그랬다 치고 이제부터는 한국도 달라져야 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중앙일보에 기고하는 놈이 철학자라 참칭하면 안 된다. 중앙일보가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를 중앙일보 취급을 하는 자는 중앙일보로 대접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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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4-01-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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