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을 하려면 먼저 의사결정구조를 세팅해야 한다는 것이 의사결정학의 핵심이다.
의사결정구조는 축과 대칭의 구조로 이루어지며 외부에서 에너지를 투입하여 축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대칭을 비대칭으로 바꾸는 형태로 의사결정은 일어난다.
여기서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 사이의 방향성, 에너지의 순환을 위한 개방주의적 태도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닫힌 구조, 고립된 지역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 경우는 반칙하는 자가 이긴다. 그러므로 개방하고 에너지를 순환시켜 의사결정원리가 작동하는 형태로 세팅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의사결정은 50 대 50까지 치고들어가야 한다.
팽팽한 긴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리더가 긴장을 회피하면 부하가 보고를 하지 않게 된다. 그 경우 조직은 리더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야 하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면 규제를 풀어야 하고, 규제를 풀면 사고가 나서 조직이 망한다.
스트레스를 주되 그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구조라야 한다. 정서적 유대로 엮인 충분한 신뢰로 가능하다. 모든 사람은 배신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배신할 수 있는 상태에서 배신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처음부터 배신할 수 없도록 철저한 안전장치를 만들면 그 조직은 생장점이 죽어서 망한 조직이 된다.
상층부 브릿지는 5~7인 안팎의 홀수로 된 소수정예가 있어야 하며, 이들은 젊어야 하고 외부와 촉수가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절대적인 신뢰와 비전이 있어야 한다. 늙은 조직은 야심가들이 모이지 않아서 망한다.
5~7인은 역할분담을 해야하고, 충분한 신뢰가 있어야 하며 배신할 수도 있는 상황까지 가야 한다. 충분한 자율권을 주는 것이다. 그래야 배신과 독립을 기대하고 젊은 인재가 모여든다.
김대중은 노무현이 배신할 수 있고 그래도 괜찮다는 선까지 아슬아슬하게 가야 하고, 노무현은 유시민이 배신할 수 있다는 상황까지 가야 한다.
젊은 인재들은 김대중보다 노무현에게 모이고 노무현보다 유시민에게 모이며 그 인재들을 적극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절대 배신할 가능성이 없는 충성스런 조직은 외연이 없고 확장성이 없다.
근데 보통은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자율권을 주면 배신하고 독립해 버린다. 당연히 배신한다는 전제하에 조직을 관리해야 한다. 리더가 회사의 비전을 보여주면 배신할 수 있지만 배신하지 않는다.
내일 배신해도 되기 때문에 오늘 배신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직은 끝없는 오늘이 필요하다. 매일 새로워져야 한다. 성장을 멈추면 조직은 죽는다. 배신할 사람이 배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