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지배가 진보다
구조론은 세상을 1인칭으로 보는 것이며, 사건의 원인측에서 결과측을 보는 것이다. 원인 포지션에서는 아직 사건이 전개하지 않았으므로 대결할 상대가 없고 따라서 2인칭이고 3인칭이고 간에 될 수 없다.
이를 진보에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사회가 진보한 것’이 진보인게 아니라 ‘진보의 지배’라야 진보다. 경위야 어떻든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진보세력의 팀플레이에 의한 의사결정이 진보다.
봉건왕조라면 선비세력의 집단지성에 의한 지배가 진보이며, 결과적으로 인구가 늘고 백성의 살림이 윤택하면 진보라는 의견에 반대한다. 조조는 인구를 늘렸지만 진보가 아니며, 유비는 실패했지만 선비세력을 규합했다.
봉건왕조 시대에 백성을 이롭게 해봤자 인구가 늘면 다시 가난해진다. 임진왜란때 일본 인구는 3천만에 도달했고, 에도시대 도쿄인구 200만은 당시 기준으로 세계최대급이었다. 그러면 성공인걸까? 아니로소이다.
자칭 진보논객 중에는 박정희가 김대중, 노무현보다 더 좌파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액면으로 따지면 그런 요소가 있다. 그러나 당시의 냉전분위기와 지금의 개방된 사회를 단순비교하면 곤란하다.
진보의 지배가 진보다. 진보는 집단지성이며 팀플레이며 대승이다. 개인의 돌출적인 성취는 비스마르크의 복지제도처럼 안 쳐준다. 히틀러도 일부 진보한 결과를 끌어냈고, 이는 박정희도 마찬가지다. 안 쳐준다.
인류의 지성과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진보가 아니다. 한건주의씩 진보운동은 사기다. 밀양이든 탈핵이든 강정마을이든 한건주의씩 진보운동은 위험하다. 그런 운동들은 진보진영 전체의 손맞추기 의미가 있을 뿐이다.
진보가 무상급식 따위 한건올리기에 골몰하면 박근혜에게 아이디어를 도둑질당한다. 박근혜의 거의 모든 선거공약이 진보진영의 것을 훔친 것이다. 청계천이 대표적이다. 진보 아이디어를 보수가 실현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원래 진보는 아이디어를 내고 보수는 그것을 구현하는게 맞다는 전도된 가치관이 난무한다. 진보가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 감으로써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쌓는 것이 진짜다. 진보세력의 한건주의 각개약진은 좋지 않다.
자기 아이디어만 실현되면 박근혜가 하든 누가 하든 무방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진보는 반드시 세력화 되어야 하며, 널리 인재를 길러야 하며 진보 사관학교를 열어야 한다. 소모적인 내부경쟁은 없애야 한다.
일본군식 내부경쟁은 곤란하고 크게 팀을 이루어야 한다. 진보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김한길이든 안철수든 김진표든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인류 전체의 진보의 역량을 키워가는 방향이 아니면 안 된다.
진정한 진보는 결과에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과정이 중요하지만 과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진보는 타협할 수도 있고 양보할 수도 있고 작전상 후퇴할 수도 있다. 박근혜의 몰락을 방치할 수도 있다.
분명히 말한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과정도 중요하지 않다. 시작이 중요하다.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 김대중이 하고 노무현이 하는게 중요하다. 진보세력이 하는게 중요하다. 진보가 51이 되는게 중요하다.
진보가 지배하면 김종필과 손잡을 수도 있고, 안철수, 김한길, 김진표 부류를 용인할 수도 있다. 반드시 진보의 지배라야 한다. 팀플레이여야 하고 집단지성이어야 한다. 진보가 모든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라야 한다.
1인당 GDP가 몇만불 되는게 진보가 아니며, 노동자가 어떻게 되는게 진보가 아니며, 무상급식에 반값등록금에 무상의료가 진보가 아니며, 그 어떤 것이든 진보가 집단지성으로 그것을 의사결정하는 것이 진보다.
식물이 뇌를 얻으면 동물이 된다. 국가가 진보세력을 얻으면 뇌를 얻은 것이며 진보가 국가의 뇌를 차지하고 의사결정하는 것이 진보다. 식물인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워 그 안에서 뇌를 세팅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는 만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존엄하게 하는 것이다. 뇌를 얻을 때 존엄해진다. 식물에서 동물로 올라설 때 존엄해진다. 의사결정에 가담할 때 인간은 존엄해진다. 존엄의 쟁취가 진짜 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