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정답이 있다. 인도로 말하면 힌두교는 가난하고 시크교는 부유하다. 왜 시크교는 부유할까? 시크교가 힌두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옳기 때문이다. 시크교는 계급차별을 하지 않는다.

마을회관에 큰 솥을 걸어놓고 누구든지 와서 먹게 한다. 시크교는 신을 섬기지 않고 대신 진리를 신앙한다. 시크교는 숭배대상인 교주가 없다. 구루가 있지만 10대구루가 구루신앙을 끊어버렸다.

신도 믿지 않고 구루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잘 산다. 채식하는 인도인과 달리 시크교는 육식을 해서 키도 크고, 전쟁도 잘한다. 영국에 용병으로 많이 갔다. 인도군 장교 중에 1/3이 시크교도다.

올바른 종교를 선택하면 잘 살고 잘못된 종교를 선택하면 가난하게 된다. 그렇다면 시크교를 믿어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시크교는 회교와 힌두교의 요소를 짬뽕해서 터번을 쓰는 문제가 있다.

인간차별하는 힌두교 보다는 확실히 낫고 분위기도 자유롭다. 분명한 것은 답이 있다는 거다. 잘못된 종교, 시스템, 전통은 분명히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종교는 모두 나쁘지 않느냐고 반론할 수 있다.

아니다. 인간은 원래 종교적 본성이 있다.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이다. 뇌가 공동체에 맞추어져 있다. 피해갈 수 없다. 가족공동체가 있지만 가족은 내가 선택한게 아니다. 국가는 공동체답지가 않다.

종교를 배척하면 국가나 다른 사이비가 그것을 대체한다. 그러므로 종교를 개혁하거나 혹은 철학과 문화의 힘으로 종교의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종교의 역기능을 가능한 한 억제하는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종교가 갈수록 나빠진다는 점이다.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 때문이다. 지금 조계종 스님들 중에서 팔만대장경을 술술 읽고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섯손가락 안이라고 한다.

대장경을 줄줄 읽어낼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고시공부 하지 스님 하겠는가?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경허와 성철이 날고 뛸 때만 해도 나라의 최고 엘리트 1퍼센트 안에서 큰스님이 나왔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조계종은 점점 이상한 사람의 집합소가 되어가고 있다. 왜? 3D업종이니까. 불교가 개판인데 기독교는 멀쩡할까? 그럴 리 없다. 변두리 개척교회는 신도가 없어서 굶는 판이다.

요즘 세상에 멀쩡한 사람이 미쳤다고 목사를 하겠나? 통장에 월급이 안 들어오는데? 종교는 갈수록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직자가 구실을 못하면 평신도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분명히 잘못되어 있다. 정답은 있다. 대승은 옳고 소승은 그르다. 모든 종교에 대승적, 통합적 요소가 있고 반대로 소승적, 차별적 요소가 있다. 가만 놔두면 점차 소승화 된다.

왜? 그래야 장사가 되니까. 저절로 그렇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승화 될 때도 있다. 이는 강한 외부충격을 받았을 때다. 신라도 통일전쟁기에 원효 등 큰 스님 나왔다.

고려가 금나라, 송나라와 솥발처럼 균형을 이루자 의천, 지눌 등 큰 스님이 나와 바람을 일으켰고, 경허와 성철 역시 일제강점기와 육이오동란을 거치며 한반도인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꿀 때 나왔다.

인도의 시크교 역시 이슬람의 침략을 받아 성립된 것이며, 나중 영국의 침략을 받자 10대구루에 의해 강력해졌다. 모든 종교와 사상은 강한 외부충격이 있으면 대승으로 보편주의로 갈아타려 한다.

반면 외부충격 없이 내부에 안주하면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에 따라 질≫입자≫힘≫운동≫량으로 전개하여 갈수록 나빠진다. 그러므로 부단한 리셋이 필요한 법이며, 재질서화가 필요한 것이다.

답은 무엇인가? 동적균형이다. 종교든, 학계든, 정계든, 언론계든, 문화계든 이게 없으면 죽는다. 판소리처럼 죽고, 트로트처럼 죽어간다. 가늘게 명맥을 이어가지만 이미 이건희 신세가 되어 있다.

◎ 종교와 사상은 외부충격을 받아 대승적 보편주의로 갈아탄다.

◎ 내부에 안주하면 반드시 차별주의, 우월주의로 퇴행한다.

자문해야 한다. 불교든, 기독교든 내부에 동적균형을 갖추고 있는가? 자정장치를 갖추고 있는가? 대부분 희미하지만 그런게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구원파가 일어난다.

보편주의냐 차별주의냐는 외부대응이냐 내부경쟁이냐다. 기독교는 내부경쟁시스템이며 이는 필자가 여러번 말한 일본군의 내부경쟁과 비슷하다. 같은 일본군 안에서 해군과 육군이 경쟁을 한다.

같은 중대 안에서도 1소대와 2소대가 경쟁한다. 상부구조는 경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병사는 강한데 장교는 썩었고, 장군은 이미 죽어 있다. 한국교회도 비슷하다. 신도는 강한데 목사는 썩었다.

왜? 외부대응을 안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순신 시스템은 내부경쟁이 아니다. 이 부분은 일본식 실용주의와 유교 합리주의를 비교하여 설명한 바 있다. 주코프가 전권을 가지듯 유교는 전권을 준다.

임진왜란과 관련한 드라마에 보면, 일본군 장수들은 늘 모여서 회의를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회의를 하지 않는다. 주코프처럼 독재를 한다. 원래 시스템이 그런 거다. 교황이 회의해서 결정하랴?

교황을 뽑을 때 회의를 하는 거다. 마찬가지로 유교는 사람을 뽑을 때 엄선하지만, 뽑고 난 다음에는 전권을 준다. 반면 일본군은 사람을 뽑지 않는다. 그냥 아버지가 아들에게 왕자리를 물려준다.

가등청정이든 소서행장이든 아무런 경력없는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나이도 어린 놈이 뭐를 알겠는가? 경험많은 늙은 가신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대신 내부경쟁을 통해 올라가는 시스템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내부경쟁없이 그냥 발탁된다. 녹도만호나 하다가 갑자기 벼락출세 해서 전라좌수사 되었다. 역사상 보기 드문 초특급 승진이다. 유교는 엄선하여 뽑고 전권을 주는 장점이 있다.

전권을 줬다가 도로 빼앗은 것은 선조의 뻘짓이지만, 유교는 일본군에 없는 그런 장점이 있다. 대승과 소승은 근본 시스템이 다른 것이며, 어떤 역사상의 결정적인 시기에는 대승으로 갈아타야 한다.

가만 놔두면 소승이 이기고, 소승으로 가면 점점 나빠져서 지리멸렬해진다. 그 결과는? 아랍의 오늘날이다. 아랍은 원래 승려가 없고, 따라서 발탁도 없고, 임명도 없고, 전권도 없고, 각개약진이다.

아랍은 괴벨스류 인기주의 언론인들이 먹는 것이며, 최악으로 치닫는다. 아랍의 율법학자란 것들은 선동을 일삼는 언론인이다. 윤창중이나 문창극이다. 중국의 문화혁명 사인방도 언론인이 설쳤다.

호메이니나 하메네이나 승려가 아니다. 교황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탈레반처럼 그냥 학생이며 학생 중에서 명성을 떨친 율법학자다. 선출되지도 않았고 경쟁하지도 않았다.

카톨릭은 승려가 문제를 일으켰다. 승려가 문제를 일으켰으므로 승려를 없애면 된다는 생각은 해경이 문제를 일으켰으므로 해경을 없애면 된다는 박근혜 논리다. 시스템을 깨면 더 문제로 된다.

목사가 설교대결로 승부를 본다면 선동 잘하는 언론인이 먹고 윤창중이 먹고 문창극이 먹는 아랍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이들은 내부 쥐어짜기에 능하고 대신 외부충격에 약하며 한 방에 간다.

차별주의 시스템의 효용성은 벨기에가 르완다를 투치족과 후투족으로 구분하여 지배한 것과 같다. 먹히므로 차별한다. 유교가 천년동안 안먹히다가 송나라 주희가 중화와 만이로 차별하자 먹혔다.

조광조가 이를 발전시켜 선비와 서얼로 차별하자 먹혔다. 중국보다 더 유교적으로 되었다. 서구의 계급제도 역시 귀족. 기사. 농노로 차별하자 먹혔다. 인도 역시 힌두교의 차별주의로 퇴행했다.

힌두교는 일단 외국인에게 수드라를 준다. 그들은 모든 외국인을 천민취급 한다. 그러므로 망한다. 그러나 인도 내부적으로는 바로 그래서 먹힌 거다. 기독교가 내부경쟁하면 구원파가 이긴다.

한국에서도 일본인 욕하고, 중국인 욕하고, 러시아인 욕하고, 미국인 욕하고, 다문화 욕하고 전방위로 욕하면 먹힌다. 장애인 욕하고, 여성 욕하고, 노약자 욕하면 일베에 가서 당장 왕노릇 한다.

차별하면 먹히므로 차별하는 것이며 새누리당은 이 수법으로 집권했다. 종교가 이를 피해가랴? 반드시 차별한다. 차별하면 이익이고 내가 안 하면 남이 하는데 어느 바보가 차별하지 않겠는가?

종교는 원래 그런 것이므로 걍 냅둬야 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아니다. 유교는 차별해서 먹혔다. 그래서? 조선은 망했다. 차별하면 먹힌다고 차별하면 아랍처럼 망하고, 잉카처럼 망해 간다.

내부적으로는 먹히지만 외부세력에게는 깨진다. 공산주의도 내부적으로 먹히지만 자본주의에 깨진다. 김일성의 독재도 내부적으로 먹히지만 외부세력에 당한다. 먹힌다고 정당화 되는건 아니다.

내부에서 100퍼센트 찬성해도 잘못된건 잘못된 거다. 100퍼센트 김일성을 지지했다 해도 잘못된 거다. 이집트에서 민주적으로 투표했더니 다수가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했다면? 잘못된 거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민주적으로 투표했더니 다수가 탈레반을 지지했다면? 그것도 잘못된 거다. 태국에서 민주선거로 탁신을 선출했다면? 역시 잘못된 거다. 다수의 선택이 언제나 옳은건 아니다.

잘못된 가르침은 대개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며, 내부에서는 강하고 외부충격에는 약하다. 내부적으로는 노동자와 학생들에게 눈알 부라리고 일본에는 설설 기는 문창극처럼 말이다.

집에서는 엄한 가장이 되고 밖에 가면 노예가 되어 설설 긴다. 기독교는 분명 카톨릭의 보편주의에서 개신교의 차별주의로 퇴행한 것이며, 개신교는 성경에서 그러한 차별의 근거를 얻었다.

유태인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했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노예트라우마에 걸려있다. 차별주의에 써먹을 소스는 성경에 무궁무진하다. 회교는 무슬림과 이교도를 차별하고 여성을 차별한다.

◎ 대승은 외부대응

◎ 소승은 내부차별

대승은 보편주의, 소승은 차별주의다. 3위1체에 핵심이 있다. 3위1체는 기독교에만 있는게 아니다. 힌두교에도 있다. 브라흐만, 시바, 비쉬누가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한다.

기독교의 3위 1체 역시 과거, 현재, 미래다. 성부는 과거로부터 이어온 종교의 전통이다. 성자는 현재의 드러난 문제해결이며 대개 재림예수가 해결하는 걸로 되어 있다. 성령은 상호작용이다.

성부가 학교라면 성자는 그 학교에서 문제가 된 특정학생이다. 성령은 둘의 상호작용이다. 성부는 과거에 종결된게 아니라 과거로부터 쭉 이어가는 정통성이다. 어떤 조직이든 이게 없을 수 없다.

성자는 문제해결이다. 문제는 언제든 생겨나게 되어 있고 해결되어야만 한다. 성령은 부단한 업그레이드이다. 문제가 발견되면 시스템을 갈아엎는다. 부단히 시스템을 갈아엎는 구조라야 한다.

필자가 강조하는 바는 이것이 비단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종교, 모든 철학, 모든 사상의 공통적인 문제라는 거다. 업그레이드 개념이 없으면 회교처럼 망하거나, 힌두교처럼 망한다.

종교는 흥해도 나라는 망한다. 이렇게 말하면 특정종교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지만 사실이다. 누군가 말해줘야 한다. 만약 부족민이 식인을 한다면? 잘못된건 잘못된 거다. 할례의식도 잘못이다.

단지 그 잘못이 외부에서 개입할만한 잘못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균형감각의 문제가 된다. 기독교를 비판하자는건 아니다. 카톨릭이 썩어서 기독교가 나온 것이다. 불교는 지금 존재감조차 없다.

필자가 지적하는 것은 대승의 외부대응과 소승의 내부차별이 있으며, 대승의 외부대응은 수백년에 한번쯤 큰 충격이 있을 때 나타나고, 소승의 내부차별은 방치하면 결국 나쁜 자가 이긴다는 거다.

구원파 중에서도 더 차별하여 깊은 산 중에 소규모 공동체를 만들고 다른 모든 인류를 차별하는 악랄한 집단이 번성하게 된다. 소수파라는데서 더 강력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를 바꾸라는게 아니다. 이러한 본질을 알고 대응하라는 거다. 가만 두면 내부에서 차별하는 나쁜 넘이 이기지만, 그 집단은 외부에 깨지므로 사멸하며, 인도처럼 고립된 곳에는 번성한다.

기독교는 차별하지 않는다? 신도와 비신도, 신도와 이교도, 천국과 지옥, 구원과 비구원, 원죄와 대속이 이미 차별이다. 차별이야말로 기독교의 힘이다. 물론 불교도 차별하고 유교도 차별한다.

작게 보면 구원파 문제고, 크게 보면 기독교 문제이며, 더 크게 보면 종교 문제이고, 더 크게 보면 모든 정치사상, 철학, 조직집단에 공통된 근본적인 딜레마다. 외부대응의 보편주의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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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im

2014-06-1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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